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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29. 2021

삿포로를 가다

옛 일본 방문기, 첫 번째

추운 겨울이라 어디 따뜻한 곳을 잠시 다녀올까 하다가, 부산에서 보기 힘든 눈 덮인 풍경과 털게 등 푸짐한 색다른 해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삿포로를 덜컥 예약했다.

 

삿포로가 주도인 북해도는 남한 크기만 한 땅에 인구 650만 명을 광활한 섬이다. 북해도는 자체 문화를 가진 독립국이었으나 극히 최근 1867년에 일본으로 편입이 되었다. 땅이 넓은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관광객들은 3, 4일이면 섬을 다 둘러볼 줄 알고 가볍게 관광을 시작하게 되는데 천만에다. 겨우 겉모습과 온통 눈만 보다가 짧은 관광을 마치고 만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섬이니 작을 것이라는 생각과 북해도 킹크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택했다.


겨울 북해도의 천지는 눈으로 덮여 이었다. 평생 볼 눈을 다 본 것 같았다. 거리와 집과 산들은 눈으로 덮였고, 차들은 얼어붙은 도로를 쌩쌩 잘도 달렸다. 집과 도로에 쌓인 눈을 사람 키보다 높게 길가로 쌓아놓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넘어지지 않고 잘도 걷는다.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라고 알려진 오타루에는 영화 속 주인공이 걸었던 곳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배를 이용하여 물류를 싣고 나르던 소규모 운하, 옛 물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유리 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유럽풍 상점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상점마다 관광객이 넘쳐났다.


태엽을 감으면 작은 상자 속 빗 모양의 금속조각이 원반의 돌기를 튕겨서 음악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오르골 전시장을 방문했다. 보석함, 증기 시계, 유리 천사, 초밥 모양, 앞발로 사람을 부르는 시늉을 하는 고양이 장식물인 마네키네코, 봉제인형 등 참으로 다양한 오르골이 판매되고 있었다. 오타루 오르골당은 일본 최대 규모로 3,400종류의 오르골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맛보기로 건네는 다양한 주전부리들을 주워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빠짐없이 맛보았는데 특별히 끌리는 것은 없었다. 다만 치즈 케이크가 맛있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미역국이 되는 해조류가 기억에 남는다. 오타루는 100여 년 전의 운하를 밑천으로 그냥 관광객을 끌어 모우는 짧은 특산물 거리 정도로 느껴졌다.


삿포로로 돌아오는 길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눈이 많이 오는 북유럽에서는 지붕을 가파르게 만들어서 지붕에 쌓인 눈이 쉽게 밑으로 미끄러지도록 장치했는데, 삿포로에서는 눈에 덮인 주택들은 지붕이 없고 평평한 옥상으로 만들어져 이었다. 이곳은 옥상에 눈이 쌓이면 어떻게 치울까? 옥상에는 아무런 물건도 얹어 있지 않았다. 옥상을 전혀 활용하지 않는 모습들이 낯설게 비쳤다.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북해도 구 도청 건물은 붉은 벽돌이라는 뜻의 '아까랭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홋카이도 개척시대의 상징적  존재로 현재는 유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둘러보았다. 3, 4천 년 전에 사용되었던 정교한 낚싯바늘, 도자기와 토우들을 살펴보았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문화를 살아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각 시대마다 정교한 문화가 피어났고, 다음 세대에게 다른 문화로 넘겨주었을 뿐이었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밤이 되자 도시는 조명 빛으로 환상적인 경치를 연출했다. 흩날리는 함박눈과 나무를 감싼 다양한 색채로 빛나는 조명은 몽한적인 세상을 빚어냈다. 나는 한동안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일본 고기 뷔페로 저녁식사를 했다. 히노끼 찜기로 기름기를 뺀 고기가 맛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옆 누군가 잠시 세워 둔 차 위에도 함박눈이 내린다. 차는 온통 눈으로 덮여있어 일반 사물인지 차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호텔에서 잠시 나와서 물과 카스테라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도 온통 눈으로 덮였다. 이곳 눈은 밀가루처럼 입자가 가늘고 수분을 적게 포함하고 있어 미끄러지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고 뽀드득뽀드득 잘도 걸을 수 있어 좋다.



호텔에 딸린 욕실은 규모는 크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외부인에게도 개방되어 있어서 추운 날씨의 이곳 주민들이 언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해 준다. 따뜻한 목욕문화를 체험하기에는 충분했다. 온수탕, 사우나와 야외 온천탕 모두 깨끗하고 상쾌했다.


피로를 풀고 오늘 밤 푹 잠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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