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사람과 부딪치고 의견이 충돌하고, 실속 없는 자존심 대결이 긴장감을 조성할 때가 있다. 더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이 던진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점점 몸 이곳저곳에 푸른 멍이 들고, 마음속에 덩어리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살기 위해서는 마음속 덩어리를 풀어 버려야 한다. 가만히 두면 속병이 생긴다. 해소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폭식을 하거나 술을 징하게 먹는다.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유증과 뒷담화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나 건전한 사회적 활동으로 평소 스트레스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나거나 낚시를 가는 편이다.
물때를 맞추어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 2시 40분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집합장소에서 각자의 짐을 카니발 하나에 옮겨 싣고, 동료 셋과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장흥 토요시장에 다 달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이른 새벽부터 재래시장을 여는 손길이 바쁘게 보였다. 새벽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문을 연 식당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신선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소머리 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인근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는지, 한우 직판장과 한우삼합(한우, 키조개, 표고버섯)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장흥을 지나 마량에서부터 여러 섬을 잇는 다리를 지나 당목항에서 차를 배에 실었다. 차를 탄 체 섬으로 이동했다. 차는 이곳까지만. 최종 목적지 섬을 갈 수 있는 여객선은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삼촌과 누이 가족만 산다는 섬으로 동료가 전화를 걸어 개인 배로 픽업을 요청했다.
250마력의 소형 보트가 빠르게 질주하여 도착한 섬은 고적했다. 방파제 끝자락에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간조 시기의 물 흐름에 따라 낚싯대를 펴고 밑밥을 투척했다. 입질조차 없다. 한참을 지나도 미끼로 사용한 새우가 낚싯바늘에 생생하게 달려있다. 새우가 차게 느껴졌다. 아직 수온이 낮아 물고기의 활성도가 낮은 모양이다. 5월 중순의 뜨거운 햇살이 내려 꽂히는 방파제 시멘트 바닥에 앉아 낚싯대 초리대만 바로 보고 있었다. 빈 낚싯대만 드리우고 조류를 따라 무심히 내 눈길도 흘렀다. 3시가 되어서 이 섬이 고향인 동료가 장화와 날카로운 고리가 꽂힌 대나무 장대를 준비해 왔다. 우리가 도착할 때는 작은 점으로 보였던 바위섬이 간조가 되자 본 섬과 연결이 되었다. 물이 밀려나자 바닷길이 열린 것이다.
물이 빠진 바위에는 배말 삿갓조개와 거북손이 붙어 있었다. 얇게 고인 물 웅덩이를 살피며 해삼의 흔적을 찾았다. 아른거리는 물속의 물체가 눈에 익숙해지자 여러 물속 생명체가 눈에 띄었다. 초보자에게 해삼 똥이 보이면 근처에 해삼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플랑크톤과 해양 사체를 모래와 함께 빨아드려 영영분을 흡수한 뒤 줄 세우듯 토해놓은 모래더미 근처를 뒤져 해삼을 줏었다. 군데군데 바다의 달팽이라고 불리는 군소 여러 마리가 해초 밑에 뭉쳐 있었다. 이곳이 고향인 동료는 대나무 장대를 이용하여 해삼과 군소를 연신 찍어 올렸다. 해삼과 군소를 양동이 반 통씩 잡았다. 그날 저녁 2,30cm 크기의 군소를 삶았더니 4cm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독특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좋다며 동료 하나가 맛있게 먹었다. 일부 경상 해안가에서는 군소를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왼쪽 위에서부터 삿갓조개, 해삼, 군소, 거북손
열린 바닷길을 따라 더 멀리 나갔다. 미역 줄기가 물 위로 몸의 일부를 드러내고, 수초가 물결에 따라 춤을 추었다. 뿌연 물살이 출렁거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속에서 아른거리는 주먹만 한 달팽이 형체를 보았다. 허리를 굽혀 집어 들었다. 뿔소라다. 순간 감격. 이 정도 크기의 뿔소라를 잡아본 적이 있었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속을 째려보았다. 휴대폰이 들어있는 바지 주머니가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뿔소라를 건져 올렸다. 눈에 불을 켜고 소라를 잡다가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맞추어 철수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바위에 걸터앉자 쉬면서, 돌로 뿔소라를 내려쳐 깨고 속살을 뜯어먹었다. 방금 잡았으니 싱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독오독 식감이 뛰어났다. 자연산 뿔소라의 맛은 전복과 비슷했다.
잡아 온 뿔소라를 망에 넣고 줄에 묶어 바닷속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물이 더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물이 빠진 바위 위에 그물을 펼쳤다. 밤새 물이 들어오면 무거운 추가 달린 그물 한쪽에 바닥에 깔리고, 가벼운 스티로폼이 달린 그물 한쪽이 물 위로 뜨게 된다. 밀물에 따라 들어오는 물고기가 그물코에 걸릴 것이고, 우리는 내일 새벽 물이 빠진 이곳에서 그물을 걷어 물고기를 따 낼 것이다. 낚시로 잡지 못한 물고기를 보충하리라. 그물을 치고 나니 물이 들어오면서 수위가 높아지고 물 흐름이 바뀌었다. 대상어종인 볼락에 맞게 낚시채비를 바꾸고 자리를 옮겨 낚싯대를 드리웠다. 멀리 해가 떨어지면서 낙조가 사방을 붉게 물들여놓았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낚시로 잡은 볼락 몇 마리를 회 치고, 뿔소라와 군소를 삶았다. 식감과 맛이 뛰어난 볼락 회와 쫄깃한 군소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삶은 소라를 마음껏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귀해서 횟집에서 얇게 쓴 소라를 몇 점 집어 먹거나, 전복과 같이 작게 저민 소라를 넣어 죽을 쑤어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흔한 꼬막을 까먹듯 상당한 마릿수의 뿔소라를 먹었다. 돌돌 돌려가면서 뿔소라의 속살을 뽑아내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뿔소라임을 증명하는 나선형 지문이 속살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뿔소라 외부 형태가 이미 나선형이고, 속살을 보호하기 위한 뚜껑도 명백한 나선형 형상을 띄는데, 굳이 속살에까지 나선형 지문을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
수년간의 거친 파도와 바닷속 생태가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진 것이라면, 변화무쌍한 질풍노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속살에는 어떤 지문이 박혀 있을까? 우리 삶의 흔적은 어떤 형상으로 남을까? 적어도 인간은 살면서 저절로 지문이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자신의 독특한 무늬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지만 생각하는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