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식당에서 주 요리에 곁들어 입맛을 돋우기 위해 나온 소량의 음식이 몹시도 반가울 때가 있다. 먹고 있노라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향수를 불러내고, 어릴 때 놀던 옛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회사 앞 식당에서 보리밥과 함께 나온 다슬기국이 그랬다. 익숙한 맛이었다. 쌉쌀한 국물에 탱글탱글한 속살이 더해진 깊은 맛이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신 맛이 생각나게 했다. 어릴 때 즐겨 먹었던 음식은 평생 잊지 못하는 법이다.
최근에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입맛이 없다 하시며 영 드시는 것을 줄이셨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입맛을 돌게 하기 위해, 고향에 들러 어머니께 돼지국밥, 묵밥이나 송어회를 권한다. 외식으로 조금이라도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식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날도 퓨전 식당에서 어머니께서 입맛을 다신 후 문경 진남교를 지날 때, 오랜 가뭄으로 강바닥을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누이집에 도착한 어머니께서 골뱅이 국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벌떡 일어나 골뱅이를 잡아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밖은 여전히 햇볕이 쨍쨍한 3시 30분이었다.
(*) 경상도에서는 민물에 사는 다슬기를 '고디' 또는 '골뱅이'라고 부른다.
진남교를 지나 고속도로 다리 밑에 차를 댔다. 저편 땡볕에서 한 아주머니가 머리를 박고 골뱅이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늘을 찾아 다리 밑으로 갔다. 오랜 가뭄으로 군데군데 강바닥이 드러났다. 평소라면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강 중심에 이르렀다. 강물이 엉덩이쯤에서 찰랑거렸다. 맨눈으로 찰랑이는 물결 아래 돌 색깔과 비슷한 골뱅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오래 집중하면 찾을 수 있으나 계속되면 눈이 아른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나는 아쿠아 슈즈를 신고 사각형 수경으로 무장했다. 한 손으로 양파망을 들고 수경으로 물속을 들어다 보면 골뱅이가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맑고 투명한 이 강은 산지라고 부를 만큼 골뱅이가 많다. 해마다 여름이면 강기슭에서 골뱅이 잡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봄 가뭄에 강물이 줄어들고, 지난 몇 년간 큰 물이 지나가지 않았는지 물속 바위에는 잔뜩 청태가 끼였다. 미끈거리는 바위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강 중심에 이르렀는데도 큰 골뱅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 골뱅이가 자랄 틈을 주지 않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골뱅이를 잡아내기 때문이리라. 대신 양이 많았다. 눈에 보이는 골뱅이는 하나 둘이지만 손을 넣어 바위 밑을 훑으면 여러 마리가 바위에 붙어 있었다. 강바닥 좁은 바위틈에서는 작은 돌들이 한 주먹씩 잡히는데, 물 밖으로 손을 올려보니 모두 골뱅이이었다. 크지는 않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고만고만한 골뱅이를 양파망에 쓸어 넣었다. 제법 큰 바위를 손으로 집고 위치를 옮기려 할 때, 골뱅이 한두 개가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왔다. 집어 들어 확인하니 골뱅이이었다. 골뱅이가 햇빛이 잘 드는 바위 위를 덮고 있는 청태 속에 숨어서 물속까지 내려 꽂히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때를 먹고사는 골뱅이가 먹이의 일종인 청태 속에 숨어 쉬면서 배고프면 청태를 뜯어먹을 수 있으니, 음식들 속에 숨어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바위 밑을 훑어보고, 바위 위 청태 속을 더듬어서 골뱅이 한 주먹씩 양파망에 넣어 담았다. 다리 밑 그늘에서부터 찾기 시작해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서 보이는 데로 골뱅이를 주웠다. 물살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바위를 훑을 때마다 골뱅이가 손 안에서 벗어나 물살과 같이 춤추며 떠내려 갔다. 때로는 청태가 덮인 바위에 미끄러져 뒤로 벌렁 넘어지기도 하고, 물이 깊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것은 포기하기도 하면서 오직 골뱅이 줍는데 집중했다. 허리가 아파 가끔씩 몸을 일으켜 허리를 펴고 접었을 뿐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점차 날이 저물어 가고 허리를 펴는 횟수가 늘어났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살랑거렸다. 물밖 온도가 내려가 허리를 펴는 동안에는 추위를 느꼈다. 물속이 더 따뜻했다. 물속에 잠긴 양파망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꺼내니 더 묵직하다. 제법 많이 잡았다. 내가 지금까지 잡아 왔던 골뱅이 중 최고의 양이 될 것 같다. 한 주먹만 더 잡고 일어나자고 하면서도 손에 집히는 골뱅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몇 번인가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일어났다. 물밖 바위틈에 숨겨둔 차키를 찾아 차를 몰고 누나 집으로 달려갔다. 3시 반부터 7시 반까지 4시간 동안 골뱅이 잡는데만 집중했다. 허리는 아프고 추워서 몸은 떨리지만 온전히 즐긴 시간이었다.
누이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샤워로 차가워진 몸을 덥혔다. 늦은 식사 후 어머니, 누나와 내가 둘러앉아 바늘을 사용하여 삶은 골뱅이를 깠다. 바위를 훑어서 잡은 골뱅이인지라 크기가 작은놈들도 상당히 끼어 있었다. 살아있다면 작은놈들은 누이집 앞 도랑에 살려줄 텐데...... 삶아 버렸고 애써 잡은 것이라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모두 까기로 했다. 골뱅이를 까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 11시 반까지 까다가 4분의 1 정도 남았을 때, 나머지는 어머니가 가져가셔서 골뱅이 국 끓려 먹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머니께서도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집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는 어머니에게는 골뱅이 까기가 좋은 소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한 갑이 넘은 누이는 아흔 살 되신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가며 골뱅이 국을 끓였다. 아흔 해를 살아오신 어머니의 골뱅이 국 끓이는 tip은 살을 발라낸 골뱅이 껍질에 물을 붓고 다시 한번 삶는 것이다. 첫 번째 생 골뱅이를 삶은 물은 푸른 빛깔로 보기는 좋지만 골뱅이의 맛이 부족하다. 어머니의 조언대로 골뱅이 껍질을 삶은 물은 빛깔은 연하고 조금 탓한 듯 보이지만 구수한 맛이 나고 골뱅이 고유의 쌉쌀한 맛이 진하게 우러났다. 초벌로 끓인 물과 껍질을 삶은 물을 합쳐 된장을 조금 풀고, 대파 부추 근대를 넣고 끓이다가 골뱅이를 넣고 다시 팔팔 끓였다. 국을 잘 먹지 않는 나도 한 그릇 깨끗이 비웠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내가 먹어 본 국중에서 가장 많은 골뱅이가 들어간 골뱅이 국이었다. 한 숟가락에 10마리 이상의 골뱅이가 들어간 것 같다. 그만큼 많이 잡았다는 얘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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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 국은 문경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인터넷에는 잘 나오지 않는 골뱅이 맛집을 소개합니다. 강가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 생골뱅이와 육수, 엑기스를 파는 이 식당의 명함 뒷장에는 08:00 pm ~ 02:00 am 은 골뱅이를 잡은 시간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식사 전에는 깐 골뱅이를 사서 집에서 당신이 직접 골뱅이 국을 끓여 먹겠다는 어머니께서 이 집 골뱅이 국을 드신 후 깐 골뱅이 대신 국을 한 그릇 사가셨기 때문입니다. 입맛이 없다시며 먹는 것을 줄이신 어머니께서 이 집 골뱅이 국은 한 그릇 다 드셨습니다.
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칭찬에 인색한 내가 몇 번이나 주인아저씨에게 맛있다고 칭송했습니다. 옆 동네 맛없는 식당에는 사람이 많은데, 왜 이 식당에는 손님이 적느냐 묻는 말에 주인장은 아는 사람은 다 찾아온다. 연예인도 찾아온다며 자부심 가득한 말을 남겼습니다. 정말 내가 먹어 본 골뱅이 국 중 최고입니다. 가격도 착하고 진한 국물에 골뱅이는 어찌 많이 들어 있는지, 특을 주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통으로 주문해도 양도 넉넉해서 맛있게 드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