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0불에 예약하고 골프장에 갔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골프장은 전날 내린 비로 잔디가 많이 젖어 있었다. 부분 부분 침수된 홀과 물이 찬 모래 벙크가 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드라이브가 잘 못 맞았으면 아니 내가 잘 못 쳤으면 공 하나 더 치면 되고, 짐을 줄이려고 골프 신발을 준비 안 해서 크록스 신발을 신고 쳐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롭다. 그냥 자유롭게 운동한다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된다. 캐나다 구스와 이름 모르는 여러 새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여러 색깔의 큰 도마뱀과 카멜레온이 잔디밭 위를 어슬렁거리는 곳에서 몇 시간 잘 놀았다. 이런 것이 온전한 골프 놀이 아닌가?
가볍게 피자나 핫도그로 점심을 때우려고 코스코에 갔다. 둘러보니 랍스터 테일과 킹크랩이 박스 채로 팔고 있었다. 국내에서 파는 2 ~ 3kg 크기의 크랩은 비교가안된다. 다리 하나에 오백 그램이 넘는 킹크랩의 다리만 분류하여 팔았다. 크랩은 다리가 핵심이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킹크랩 다리 두 개 1.4kg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쪄서 녹인 치즈에 찍어 먹었다. 살집이 크서 조각으로 나누어 입안 가득 넣어 먹었다. 67불 주고 산 킹크랩만으로 두 명이 배를 채웠다. 싼값에 맛있게 잘 먹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주방에서 한 분이 식사를 하고 있어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은퇴한 프랑스 남자로 마이애미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고향인 프랑스 니스를 떠나 이곳에서 월 1,300불이나 주고 방하나를 빌려 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미국 시민권 소유자로 개인 차를 사용하여 자유롭게 호출하는 승객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는 우버 일을 한단다. 미국에서는 우버수입만으로도 월세를 내고 생활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중년 남자가 일 년 중 몇 개월간 살기 좋은 마이애미에 와서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즐겁게 사는 것도 노후를 즐기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저녁에는 한인 변호사를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맥주를 주문했고, 월요일에는 무료로 제공한다는 나초가 큰 접시에 가득 담아서 나왔다. 나초 위에 치즈, 야채, 삶은 콩, 크림, 녹색 소스 등 다양한 토핑이 가득 뿌려져 나왔다. 간식으로도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맛도 좋았다. 원래는 플로리다주 한국계 국토청장과 함께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국토청장은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입각할 때 장관 후보자로 하마평에 오른 성공한 재미교포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들어보니 대학 때 미국 유학 와서 미국 공무원이 되어 현 직위에 올랐다고 했다. 변호사와 얘기 중에 한인 지인 한분이 이번 바이든 정부의 장관 1 보좌로 임명되었고, 한인들과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관 1 보좌이면 한국의 차관급이다.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한인 교포사회도 미국의 상류층에 편입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국토청장 대신 투자처를 찾고 있다는 미국인 2명이 함께 자리를 해서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은 맥주는 안 마시고 위스키 한잔에 얼음물을 부어 마셨다. 흡연이 금지되었는데도 한 손으로는 굵은 시가를 들고 있었다. 쿠바 출신이라는 것을 바로 드러냈다. 12년 전에 마이애미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고차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데, 최근 부동산 가격 급상승으로 사업 부지를 매각하려고 구매자를 찾는다고 했다. 한인 변호사는 이민과 부동산 투자 자문을 담당하고 있어서 몇 해전에 만난 친구들이라고 소개했고, 우리의 투자 유치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요즈음 남미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으로 부자들이 다른 나라에 투자처를 찾고 있단다. 이들을 남미의 투자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지금 남미는 개판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국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쿠바는 미국과 가까워서 미국의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잘 알고 익숙해져서,부패한 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 수 있지 않느냐?라고질문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불가능하다고 했다. 죽거나 사라지거나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고 한다.
쿠바 출신 둘 중하나는 아버지가 일본 대사관에 근무하였고,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두 번에 거쳐 5년간 일본에살아서 일본어 7~80%는 알아듣는다고 했다. 홍콩에서는 근무한 적이 있고 한국에는 와본 적 없으나 비교적 우리나라를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한국 영화 수리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기 높은 한국판 멕시코 나르코스 드라마 같다고 칭찬했다. 엘살바도르의 이웃나라인 수리남에서 한인들이 마약왕이 되는 이야기로 혼란한 남미의 일면을 잘 그려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을 출발한 이후에 개봉된 따끈따끈한 한국 영화와 한국 자동차 등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일어선 쿠바인들은 자기가 먹은 것과 지불하는 미국인 또는 한인 교포와 달리 음식 값을 전부 내고 갔다. 쿠바는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전편에서 언급한 대로 한인 변호사는 부자이다. 마이애미 시내 중심에 큰 상가를 가졌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전 건물을 허물고 30층 건물을 세우려고 설계까지 끝냈는데 코로나로 연기되었다고 할 정도로 거부인지는 몰랐다. 이외에도 여러 물건과 아직 확인해 보지 않은 물건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단히 성공한 경우이다. 물론 자신이 아니고 그의 부친이 보석상을 해서 일구어 놓은 부이다. 이제 부친은 돌아가지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당신들의 성공 스토리와 다른 자식들의 일처리 방식을마음 들어하지 않아 부딪히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는 어디 가나 그 극성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그 극성과 부지런함으로 미국에서 거대한 부를 일굴고, 자식을 변호사로 만들었지 않는가? 그는 현재 플로리다 상원의원을 지망하고 있다.
잘 있어라? 잘 가라!라는 인사를 나누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라 고속도로는 차량이 적어 최대속도 65마일을 상회하는 80마일 이상을 밟고 빠르게 달렸다. 미국은 Highway에서도 1, 2차를 Express path로 구분하여 요금을 받는다. 원한다면 돈을 내고 막힘없는 빠른 차길로 가라는 황금만능의 사고방식이 적용된 사례이다. 지난번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을 때, 놀이기구 하나 타려면 1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했다. 여기에도 Express path가 있어서 150여 불을 내면 기다리지 않고 기구를 탈 수 있도록 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