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볶음면을 끓여 먹었다. 미국도 한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 한국 음식 재료가 없는 것이 없다. 지난번에 오리엔트 마켓에서 사 온 파김치는 맛이 좋았는데, 친구 어머니는 미국 파가 물러서 맛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자라고 생산된 것이 맛있고 좋다는 고향의 맛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계셨다.
친구 어머니는 30여 년 전 40대 초에 이민오셔서 가발 장사로 돈을 벌어 부동산을 매입하고, 억척같이 일해서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신 분이시다. 당시 가발 장사로 월 8천 불을 벌었고, 1년에 집 한 채씩 사서 10여 채의 집과 주유소를 소유하셨다고 했다. 당시는 집 한 채 5만 불에 불과했다. 지금은 많이 올랐고, 백만 불 하는 집에 사신다. 삼백만 불을 호가하는 나대지와 1층에 가게 3개와 2층에 주택 4개로 구성된 건물을 소유하고 계시다. 나와 친구는 1층에서 커피점과 위스키 바를 운영하며 2층 주택에 사는 둘째 아들 집에서 묵었다.
친구 어머니 집과 정원에서 자라는 파파야, 고추, 들깨
성공 스토리를 가진 분답게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시다. 그 경험과 확신을 자녀에게 심어주시려는, 그래서 자식들과 작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정원에 아보카도, 애플망고와 파파야 나무를 심었다. 과일을 돈 주고 사 먹지 않고 직접 길러 따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 났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다. 지금은 철이 지나서 애플망고는 따서 냉동실에 쟁겨놓았고, 파파야가 주렁주렁 달렸다. 고추와 들깨 나무를 심어 매일 고추와 깻잎을 따서 고추는 양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깻잎은 전을 부쳐 자식들에게도 나누어 주신다. 덕분에 제철에 따서 냉동실에 쟁겨놓은 애플 망고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잘 익은 망고를 보관한 것이라 진짜 꿀같이 달콤했다. 3년 전 6월에 왔을 때는 망고 철이라 잘 익어 즙이 흐르는 애플망고를 원 없이 먹었다. 내가 망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셔서 이번에도 볼 때마다 망고를 권하셨다.
2주 동안 잘 먹고 잘 쉬고 폐만 끼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첫째 아들을 잘 살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라고 당부하시면서 뭐라도 선물을 드리고 싶지만 못 샀다 하시면서 현금 100불을 주셨다.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감사히 받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회계사를 만났다.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개인적 투자는 어렵지만 법인 간 투자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한인들은 수많은 미국 현지 법과 재정에 관련된 일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고문 변호사와 회계사를 두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번에 만난 회계사의 사무실에는 의자 몇 개와 컴퓨터, 모니터만 달랑있고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아주 단출한 사무실에서 회계지식만으로 많은 한인들을 돕고 돈을 벌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상담하던 한인 한분과는 인사를 했는데 친구 어머니를 성공하신 분으로 잘 알고 있었다.
렌터카는 일일 단위로 정산한다. 마이애미 도착한 날 오후 3시에 렌트를 했으니 적어도 3시 반이전에는 돌려주어야 한다. 시간을 초과하면 하루치 요금을 추가 지급해야한다. 회계사 만나는 일이 지체되어, Highway에서 막힘이 없는 Express path를 달려 3시 40분 조금 늦게 도착했다. 다행히 OK.
7시 반에 출발하니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했다. 공항 라운지를 찾아 음식물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최근 공항 라운지의 형편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는데, 지금은 몇 가지 간단한 음식과 과일뿐이다.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Priority Pass 카드가 없다면 29불을 내야 한다. 조금 비싸다. 현금 주고 들어 올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장점이 있어 이번 여행에서 갈 때, 올 때 각 두 번씩 사용했다. 나는 플래티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어서 연간 12번 무료 서비스가 가능하다.
프랑스에어 공항 라운지
샌프란시스코에 밤 11시 반에 도착했다. 인천 가는 비행기가 10시 반에 출발하니 11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한다. 낮에 35도씩 올라가는 마이애미에 있다가 다음 비행기로 바꾸어 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는데 추웠다. 17도이다. 공항 내 다리를 뻗어 쉴 수 있는 자리를 찾아냈지만, 짧은 티셔츠 차림으로는 추위를 버티기 어려웠다. 누워있어도 너무 추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두 시간 멀뚱멀뚱 버티다가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일어나 공항 안을 어슬렁거렸다. 다른 여러 사람들도 다음 비행기를 가다리기 위해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다들 두꺼운 옷을 입고, 담요를 준비해서 덮어쓰고 있었다. 잠에 빠진 모습들이 부럽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내부
이른 새벽이라 청소부들이 말끔히 청소를 해서 쓰레기나 비닐봉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비닐로 몸을 감싸면 체온이라도 빼앗기지 않을 텐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거렸다. 추워서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한 곳에 감색 담요 하나가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담요이었다. 이것이 무슨 홍재란 말인가? 모든 것이 깔끔히 정리되고 청소가 되어서 티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담요라니! 누군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고 했던가? 작은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덕분에 두세 시간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나도 내가 베푼 작은 행위가 다른 이 에게는 기적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