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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Feb 26. 2023

초등학교 동기생들과 떠난  여행

규슈 첫날

'내일은 구향 2리끼리 한번 모여서 마시자.',

'아너메와 구향 2리만 빼고 우리끼리 모이자.'라는 말이 오가고

때때리, 나무다리, 옹기골, 오순물, 사아메, 가골, 아너메,

성내산,  돗질, 사오개, 모개나무골, 사창마, 징그래미...

예전 우리들이 살았던 함창의 옛 지명에 따라 편이 갈리고

읍내에 살던 친구와 읍외에 살던 친구들이 나뉘었다.


여전히 고향 함창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 대전, 대구, 부산에 흩어져 있는  친구를 모아 단체 여행을 떠나왔다.

오랫만에, 혹은 수십년만에 만난 친구들은

후쿠시마 첫날밤에 그리운 이름들을 되뇌며 어릴 적 추억들을 고스란히 불러냈다.


각자의 삶과 무상한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는 없지만 예전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고,

만나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의 이름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작은 명희, 큰 명희라고 불리던 친구의 키가 역전되어 있고

머리에 우람한 덩치를 한 친구가 예전에 꼬마였던 재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랐다.

고3 몇 개월동안에 24cm나 컸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시사이드 모모치 지역이다.

소프트 뱅크의 재일교포 손정의 소유의 야후오크 돔 체육관과

8천 장의 반투명 유리로 뒤덮인 높이 234m의 후쿠오카 타워가 우뚝 서 있었다.

해변 마리존에는 유럽 성당을 닮은 건물이 서있는데 예식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는 지인을 하나라도 더 초청해서 지난날 뿌린 부조금을 되찾으려는 우리나라 결혼식과는 달리

가까운 친척과 정말 친한 친구 등 2,30여 명만 초청해 간소한 결혼식을 하는 일본에서는

3만 엔 가까운 축의금을 내고, 혼주는 그보다 더 많은 답례금으로 사례를 한다.

우리가 갔던 날에도 검은 정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후쿠오카 타워, 마리존 예식장과 손정의  소유의 돔 체육관


점심 식사를 위해 3대를 이은 맛집이라는 곳에 들렸다.

소문답게 사람들이 빽빽이 붐볐고, 가이드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먼저 어묵, 새우와 야채튀김 몇 조각이 나와서 주는 대로 먹었다.

어묵은 차고 튀김은 식어서 고유의 바싹함과 신선한 맛을 잃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시큰둥 기다리고 있으니 가락국수가 나왔다.

32cm 큰 그릇에 숙주나물과 대파를 얹은 우동의 국물은 짜고

우동은 쫄깃함이 없이 퉁퉁 불어 있고 가락이  뚝뚝 어졌다.

순간 식당 주인의 무례함에 작은 분노가 치솟았다.

먼저 나누어준 어묵과 튀김, 우동과 노란 단무지가 세트로 한 쟁반에 담아서 내놓아야 했다.

어묵과 튀김을 우동그릇에 넣어 섞어야 어묵과 튀김이 육수의 짠맛을 적당히 흡수해서

시원한 국물과 어묵 튀김 우동가락이 어우러져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손님을 존중하고 식사예의와 절차를 아랑곳 하지않은 

일본 3대를 이어온 주인의 자존심을 상실한 의이없는 식당에 실망했다.


술을 빚던 양조장 기구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술 반말은 들어갈 것같은 엄청나게 큰 사케 댓병
일본 인형들과 게다짝 슬리퍼


에도시대 전통가옥이 보존된 히타지역의 300년 된 사케 군초 양조장 시설을 둘러보고

우키하 마을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이나리 신사를 올라가 보았다.

우리들에게  일본의 신사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의 신주

모아두고 신으로 숭배하는 곳이라는 선입관이 있어 거북스러운 곳이지만,

섬나라 일본의 수많은 신들을 모시고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신사들이 많다.

힘없는 일반 서민의 서러움과 고충을 해결하려는 안타까운 토속신앙의 산실로

우리의 성황당, 절간의 산신각이나 기도처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나리는 곡식 신과 여우 신을 모시고 한  해의 풍요를 비는 신사였다.


우야키 호텔 전경, 호텔 뒤로 흐르는 계곡물. 그리고 저녁식사로 내놓은  카이세키 한 상


날이 저물고 아마가세 우키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온천을 끼고 다다미방과 침대방이 나란히 있는 호젓한 전통식 호텔이었다.

저녁 식사로 와규를 더한 카이세키식으로 정갈히 차린 1인 세트가 보기에 좋았다.

전체 요리, 회, 와규구이, 돼지고기 샤브, 작은 생선구이, 푸딩과 후식을 차례로 먹었다.

정성스러운 음식에 적당히 배부른 상태라 만족스러운 저녁 한 끼였다.


호텔 창문. 지진 발생시 깨어진 유리가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내에 망사형 철사를 삽입시켰다.


첫날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낸 후

온천물에 몸을 담가 새벽부터 설쳐 피곤한 몸을 나른히 녹이며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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