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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Oct 20. 2022

뱀사골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뱀사골 계곡은

울울창창 숲으로 덮여있고 수량이 풍부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이름난 곳이지만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전국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신혼 초 아내와 와서 하룻밤 민박을 했던 뱀사골에 도착하니 지난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코로나가 잦아들고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으로

움츠려 들었던 몸과 마음을 추슬려 이른 가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입장권을 끊고 국립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계곡 옆에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고

뱀사골 계곡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계곡을 따라 나무데크로 만든 트레킹 코스 시작 길이 나왔습니다.

뱀사골 신선대라는 이름을 붙인 탐방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신선대 입구 안내판을 통해 배사골의 어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1,300여 년 전  계곡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에서는 매년 백중날에 스님 한 분을 뽑아 신선대 바위에서 기도하게 하였답니다. 다음 날이 되면 매년 스님이 사라지는데, 사람들은 그 스님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여 백중날 뽑힌 스님 옷에 독을 묻혔는데, 다음 날 가 보니 신선대 바위 위에는 커다란 이무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라진 스님들은 모두 이무기 재물이 되었던 것이죠. 그 후 이 계곡의 이름은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뜻의 뱀사골이 되었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재물이 되었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계곡 입구의 마을을 절반의 신선이라는 뜻인 반선이라고 불렀답니다. 전설같이 허황된 이야기이지만 뱀사골이라고 불리고 지금도 반선이라는 마을이 있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에메랄드 계곡물속에는 송사리 떼가 무리를 지어 노닐고, 사람들은 그 물속에 깊게 잠겨 세상의 묵은 떼를 벗어내고 싶어 한다.  


그날 뱀사골 계곡은 철이 일러 현란하게 물들어 있지는 않지만

수줍게 붉은 화장을 하기 시작한 단풍이 정겨웠고

계곡의 하얀 암반 위를 흐르는 물소리가 동행하면서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습니다.

예전 멧돼지가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는

깊은 옥색 물빛이 아름다운 돗소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에메랄드빛 푸른 옥색 물속으로 몸을 깊게 담그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걷는 것이라 기분은 상쾌했지만

이마에 땀이 흐르고 등에 땀이 차자 그만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무렵

새로운 이정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천년 동안 한 자리에서 구름도 누워서 지나간다는 와운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마을의 번영과 사람들의 복을 지켜주는 마을 수호신의 역할해 온

와운마을 천년송이 저 너머에 있다는 간판을 보았습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기약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거부하기 위해

할머니 송과 할아버지 송이 나란히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마침내 천년송을 만났습니다.

천년 기념품 제424호로 지정되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천년송 아래 앉아 땀을 식히고 기념사진을 찍고

더러는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서 먹으며 다시 자유로워진 야외활동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 소나무와 닮은 천년송은

당당하고 여전히 푸른 기상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동네 뒷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나무중 우뚝 솟은 하나로 보였습니다만

마을의 수호신 역할은 당당히 해 내고 있었습니다.

뱀사골에는 천년송이 있다는 Story Telling만으로도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와운마을을 찾아오게 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덕분에 천년송이 TV에서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와운마을을 방문합니다.

천년송으로 인해 와운마을은 카페가 생기고 식당이 열리고 민박집이 들어섰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에 생계의 수단을 허락한 천년송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나 일에서 성공을 원한다면 반드시 Story Telling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천년송을 보고 돌아오는 와운마을 입구 커다란 바위 위에서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맞대며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부부송이나 남매송이라고 불러도 좋겠고 친구송이라고 칭해도 좋겠습니다.

메마르고 열악한 바위 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격려하면서 선의의 생존 경쟁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어려운 세상에 살아가면서 진정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친구 하나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나는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정성을 다해 다가간 적이 있나요?


이번 뱀사골 여행은 코로나의 압박에서 벗어난 온전한 자유와

Story Telling의 필요성과 사람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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