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주차장에 도착해서 잘 다듬어진 508개의 계단을 올라, 이곳을 방문한 고려말 장수 이성계가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천왕문에 다다랐습니다. 천왕문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둘러보니 암마이봉을 오를 수 있는 길과 탑사로 가는 길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탑사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마이봉은 마치 자갈을 시멘트에 섞어 부어놓은 듯한 역암층 구조를 가졌고, 바위가 겨울철에 얼다 풀리고 비바람에 깎여 떨어지면서 풍화혈이 여러 곳에 생겼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생성과정을 살펴보면, 중생대 백악기에 호수였던 자리에 자갈들이 물길에 따라 휩쓸려 싸이고 모래와 점토가 섞여 오랜 세월 동안에 바위로 굳어져 역암이 되고,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이 역암층이 지표면으로 상승하였던 것입니다. 처음 진안 분지는 평평한 공원이었으나 풍화작용으로 약한 곳은 침식되고 강한 곳은 남아서 지금과 같은 뾰족한 봉우리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에 대한 전설이 서린 은수사와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청실 배나무
계단이 끝날 무렵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은수사 절이 자리를 잡고 있고, 절 옆에는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된 청실 배나무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춘향이 집에서 첫날밤을 치를 때, 월매가 내 온 주안상에 올라와 있는 '청술레'라는 과일이 바로 청실배입니다. 돌배들 중 특히 맛이 좋은 청실배가 개량 배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 청실 배나무는 수령이 65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도 굵은 배를 맺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650년 된 배나무에서 열린 청실배의 맛은 어떨까? 호기심에 배 하나를 주워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한 배즙이 배어 나왔습니다.
입장권을 끊고 몇 걸음을 더 가자 거센 강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80여 개의 돌탑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의 가장 이름다운 사찰이라는 평가를 받은 마이산 탑사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대학생 시절에 보았던 예전의 고즈넉한 모습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관광지 개발로 절터를 넓히고 부속건물이 증축된 모습이 도리어 황량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계단을 딛고 천왕문에 오르니 암마이봉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습니다. 가팔라서 등반이 금지된 숫마이봉에 비해 완만한 암마이봉은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등반이 허용됩니다. 예로부터 마이산은 기가 세고 천하의 명당터로 알려졌습니다. 동학혁명 때는 거사를 위해 민중의 대표가 모였던 장소였고, 국가의 중요 행사를 앞둔 시점에는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는 마이산의 정기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등에 땀이 맺히고 이마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가팔랐지만, 천왕문에서는 암마이봉까지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거리라서 누구가 오를 수 있습니다.
암마이봉에서 바라본 숫마이봉과 화엄굴
정상을 향해 가는 길옆 전망대에서는 숫마이봉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고, 숫마이봉 50m 중턱에 뚫려 있는 자연동굴 화엄굴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부부가 이곳을 찾아와서 기도한 끝에 득남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숫마이봉에서 뿜어진다는 강한 기와 그 속에서 솟는 석간수를 마시면 입신양명한다는 얘기도 전해오는 곳입니다. 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