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에 있는 이성당은 현존하는 국내의 가장 오래된 빵집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보내는 전초기지였던 군산에 한 일본인이 아들의 군 복무를 피해 조선으로 피신해 온 해가 1906년입니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빵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을 상대로 이즈모야라는 빵집을 열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인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이즈모야가 사라진 자리에 이석우씨가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번성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성당이라는 빵집을 연 것을 시작으로 4대째 이어져 현재까지 제과정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길게는 110여 년, 광복 후로도 70년을 흘씬 넘긴 이성당은 대전의 성심당과 안동의 맘모스 제과와 더불어 전국 3대 빵집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군산 이성당 본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쯤이었습니다. 제과점 영업으로 치면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빵을 사고, 계산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명성만 들었을 뿐 어떤 빵이 맛있는지 몰라 선택을 망설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특정 빵을 수 십 개씩 접시에 담아 가는 것을 보고, 이 집의 대표 빵이 단팥빵과 야채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가지 빵을 포함하여 종류대로 골라 담았습니다. 빵값은 다소 비싼 축에 들었습니다. 빵값을 치르고 이성당을 나와서 이웃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주문하고 사온 빵을 종류대로 맛보았습니다. 밀가루가 아닌 쌀로만 만든다는 이성당 빵들의 맛은 특별나지 않았고, 여느 빵집의 맛과 비슷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 창밖으로는 양손으로 여러 개의 이성당 빵집 노란 봉투를 들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제과점 앞에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신기했습니다.
무엇이 특별한가? 사람들은 이성당의 빵맛보다는 100여 년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 의해 빵을 사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 즉 Story telling의 힘이 이성당의 지점이 전국에 열리고 유명 백화점들의 정식 매장으로 입점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유명해지고 싶으면 확실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Story telling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선물로 산 이성당 단팥빵과 야채빵을 자녀들에게 전해 주면서 '백 년된 제과점에서 사 온 빵이다'라는 얘기를 덧붙이게 될 것이고, 나의 자녀들이 군산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호기심에 이성당에 들리겠지요. 이렇게 이성당은 다음 백 년의 역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군산 유명 짬뽕집 복성루에도 들렸습니다. 허름한 집이었는데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나이 든 분들도 줄을 많이 서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 분들도 오시나 보다는 생각에 특별한 맛을 기대했습니다. 식당 내에 6개쯤 되는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좁은 방 두 개가 이어져 있었고, 안쪽 방에는 아이와 젊은 부부,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분들이 땀을 흘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진한 붉은 국물을 가진 짬뽕 외에 해물이 섞여 있는 걸쭉한 맑은 국수가 쟁반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물짜장과 짬뽕을 주문했습니다. 물짜장은 울면에 해물을 조금 더 넣은 평범한 맛이었습니다. 짬뽕은 돼지기름으로 고춧가루를 볶은 듯 진한 국물 위에 기름이 떠 있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은 것외 맛은 그저 그랬습니다. 맛에 비해 짬뽕 1만 원, 물짜장 1.1만 원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유명 짬뽕집은 하나 둘 있기 마련입니다. 대구 3대 짬뽕집이니 부산 3대 짬뽕집이니... 부산 3대 짬뽕집이라는 동래 온천장 동운 반점은 국물이 유난히 붉고 기름지고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갔을 뿐 별다른 맛이 없습니다. 부산 3대 짬뽕 중 하나라는 하단 복성 반점의 짬뽕은 백종원의 3대 천왕에도 나왔다고 하지만 맛은 그저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니 이름난 짬뽕집의 국물은 진하고 유난히 붉다는 특징이 있는데, 백종원의 홍콩반점의 짬뽕도 유사합니다. 여러 지역 인기 있다는 짬뽕을 둘러보고 먹어 본 백종원이 밴체 마킹해서 진한 국물에 돼지기름을 써서 느끼한 맛이 감도는 홍콩반점 짬뽕을 탄생시킨 것 같습니다. 그도 천재가 아닌 이상 어찌 그렇게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 여러 나라와 유럽 뒷골목을 맛 기행하며 돌아다닌 경험을 살려 여러 메뉴를 개발했을 겁니다. 우리도 새로운 것, 특별한 삶과 맛만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과 즐거워 보이는 것을 보고 만들고 흉내 내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기억에 남는 짬뽕은 경남 사천가는 길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으로 들어가는 사거리에 있는 2층 중국집에서 먹어 본 매운맛의 짬뽕입니다. 입을 호호 불어가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대전에서 친구가 차로 데려가서 위치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만 동네 골목길 안에 있는 중국집으로 바지락이 많이 들어간 짬뽕입니다. 국물이 시원했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성당 빵과 복성루의 짬뽕으로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있었던 일제의 수탈과 저항의 역사가 담긴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1899년 5월 1일 군산이 개항되었습니다. 일제는 호남평야의 세곡을 모아 자국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고, 침략전쟁을 위한 병참기지화 및 식민지 수탈 거점의 수단으로 군산을 폭력적 왜곡적인 방법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속에서 조선인은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당시 일본인의 임금 1/2, 1/3을 품삯으로 받으며 일해야 했습니다. 무차별적인 수탈에 울분을 참지 못한 조선인은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고, 마침내 3.1 운동, 소작쟁의, 정미소 파업 등 농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과 임금차별에 맞서 연대파업을 전개하였습니다.
아픈 역사 속에서 수탈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는 군산의 여행은 마냥 즐겁지마는 않습니다. 더불어 과거의 수탈, 역사의 왜곡과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우호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군과 연합훈련을 하는 최근 정부의 굴욕적인 대일관계 비전에 대한 국민적 반발에 대하여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처질의 얘기가 군산에 머무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