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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11. 2020

몽골인 마음의 고향

다시 몽골, 두 번째 이야기

울란바토르를 조금만 벗어나면 광활한 대지를 만날 수 있다.


전체 몽골인의 60%가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다. 유목민인 몽골인은 이 도시에 살면서 심신이 지칠 때 자연을 찾아 나선다. Second House인 여름 집이나 인근 캠프로 차를 몰고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신다. 놀이거리도 나무도 거의 없는 야외 캠프에서 게르 한 동을 빌려 잠을 자거나 앙상한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무념무상으로 자연 중에 앉아 있는다. 그러면 천천히 원기를  되찾고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가 북돋아진다고 한다. 말을 타고 목축을 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몽골인 원래의 기질이 현대의 도시 몽골인을 야외로 불러내는 모양이다.


하루를 울란바토르에서 보내고, 아침 일찍 도시를 벗어나 몽골의 자연을 찾아 나섰다.      

몇 해 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아셈에 모인 세계 정상들을 위해 만들어진  칭기즈칸 캠프
고대 몽골어로 쓰인 캠프 슬로건. 읽어 본다면 왼쪽은  징기스, 중간은 하가노, 오른쪽은 후래이. 즉 징기스의 캠프라는 뜻이다.

몇 해 전에 열린 아셈 동남아 정상 회의를 위해 조성된 칭기즈칸 캠프에 들렸다. 캠프 내 여기저기에 슬로건이 적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캠프 그림 위에 적힌 상형문자는 고대 몽골어이다. 행사 등에서 사용되는 상징어로 일반인도 떠듬떠듬 읽을 수 있다. 현재 몽골어는 러시아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는데 발음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말들이 마른풀을 뜯고 있다. 광야에서 살던  사슴, 살쾡이와 늑대는 사냥꾼에게 잡혀 게르 내부를 장식하는 데 사용된다.
몽골 돈 500투그릭 지폐 뒷면의 그림. 게르를 통째로 마차에 태워 수십 마리 소를 끌어 옮긴다.  이동식 주택인 게르도 부와 권력이 보태어지면 이동 방식이 달라진다.
유난히도 큰 게르 내부 구조. 큰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숙박용으로 임대되는 게르는 크기 따라 가격이 다르다. 내부구조는 단순하다. 난로와 침대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게르 한가운데에 설치된 난로는 유일한 난방장치이다. 겨울에는 충분한 장작 확보와 불 관리가 중요하다.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불 끄진 새벽에 일어나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게르 내부는 늑대와 살쾡이 가죽이 장식되어 있다. 게르 주인의 사냥실력과 용맹을 나타내는 듯하다.


왁자지껄 소음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게르 안으로 들어왔다. 시끄럽다. 말이 많은 민족인 모양이다. 소음을 피해 게르를 나왔더니 철제 테이블에 엄청 큰 양 한 마리가 얹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가만히 진행과정을  지켜보았다. 인간의 친구와 동료였던 양이 죽임을 당하고 고기를 인간에게 헌사하는 순간. 경건한 순간이다. 인간과 양이 마지막으로 교감하는 신성한 시간이므로 가볍게 사진을 찍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가죽을 벗기지 않고 토치 불로 양털을 태워 날리기를 반복한다. 뽀얀 가죽이 나오면 그때 통째로 삶아 낸다. 가장 맛있게 요리하는 방식이란다. 귀한 손님이 오면 이러한 방식으로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해서 낸다고 한다.


몽골식 만두 호쇼르(한국식으로 작게 만든 만두를 찐 것은 부쯔, 튀긴 것은 덤프링), 브르츠 테 비츠 슐, 수태차

캠프 내 시설물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점심식사를 위해 몽골 음식 몇 가지를 주문했다. 몽골식 만두 호쇼르. 크기가 큰 접시 반만 해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휴대폰보다 두 배 이상이나 큰 만두피에 다진 고기만을 다져 넣어 튀겼다. 누린 맛을 소금에 절인 양배추로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가이드에게 집에서는 고기 외에 야채와 두부를 함께 넘어 만들어 보면 더 맛있을 것이라고 한국식 만두를 권해 보았다. 말린 고기에 물을 붓고 밀가루 피로 그릇 위를 덮어 큰 냄비에 넣어 중탕으로 끓인 브르츠(말린 고기를) 테(넣고) 비츠(밀가루로 덮은) 슐(국). 힘들고 지쳤을 때 어머니가 자주 끓여 주는 영양 국이라고 한다. 마치 서양의 치킨 수프와 같은 음식이다. 누린내가 많이 나서 먹기가 고역이었다. 수태차는 녹차에 우유를 붓고 끓이다가 말기름을 넣고 다시 끓여 만든다. 몽골인이나 관광객들이 가장 흔히 마시는 차로서 둥둥 떠있는 기름이 눈에 거슬린다. 맛은 역겹지 않아서 쉽게 마셔진다. 그리고 트으꺼(무릎 덮게) 니 슐, 우리나라의 도가니탕과 비슷한 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큰 야크 가죽 하나가 틀에 펼쳐져 있어 다가갔다. 가죽을 말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살을 쏘는 과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거칠고 황량한 놀이 꺼리라고는 하나 없는 야외 캠핑장에 잠시 머물렀다. 아득한 펼쳐지는 광야를 바라다봤다. 멀리 보이는 자작나무까지 걸었다. 울란바토르 도심에서 삼킨 매연이 담긴 가뿐 숨을 내뱉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기가 너무도 깨끗하고 신선하다. 폐와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햇살로 인해 마음과 생각이 맑아지고, 광활하게 확대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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