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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재영
Mar 03. 2023
구마모토 성과 디자이후 텐만구 방문
규슈 여행, 삼 일차
세키아 호텔에서는 축소지향의 일본식 구조와 다른
침대방과 다다미 방이 나란히 붙은 넓은 방이 제공되었다.
특급 호텔답게
뷔페 메뉴도 다양했다.
저녁은
좋아하는 연어 외에도 말고기 육회와 대게로 배를 채우고
아침 식사는 늘 그랬듯이 야채, 베이컨, 계란
스크렘
블을 든든하게 먹었다.
소박한 야외 온천탕이 있던 지난번 호텔과는 달리
세키아 호텔에는 대형 대중 실내 목욕탕과 반듯한 야외 온천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피부가 미끈해진 듯하다.
나른해지도록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몸을 젖시고 있는
온천수가 자연스럽게 마를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야 되는데
짧은 시간 온천을 즐기고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는 것이 아쉬웠다.
호텔 뒤 야외 정원
밤늦도록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늦은 시간과 이른 새벽 시간을 이용하여 여행소감을 정리하느라
호텔 뒤 아기자기하다는 산책코스를 돌며
맑고
상쾌한
공기로 폐를 순환시키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오전에 들린 곳은 일본의 유명한 3대 성으로 알려진 구마모토 성이다.
1601년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을 시작하여 1607년에 완성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장 가등청정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감정이 사나워진다.
난폭하며 무식하고 욕심이 많은 그는
조총을 사용하여
조선을
무자비하게
유린하였다
.
의
병
곽재우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오랫동안
울산 왜성에 갇혀
굶주리다가
죽기 직전의
풍신수길이
돌아오라는 명에 따라
수많은 울산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들
조선의 포로들을
투입하여
구마모토성을 축성했으니
조선
의
한이 담긴
성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단순한 관광지로서의 의미를 넘어선
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때 조선을 유린한 가등청정으로, 키가 작아 엄청난 높이의 투구를 사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정권을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과 화친을
요구하여
일본을 방문한 사명대사가 오죽했으면 가토와 마주한 자리에서
'그대의 나라에서 귀한 보물이 무엇인가?' 묻자
사명대사는 가토를 가리키며 '그대의 목
'
이라고 대답한 일화가 남아 있을까
?
2016년 4월 14일 규슈
구마모토
현에
진도 6.5도의 강진이
발생했다
.
이때
성의 일부가 훼손되었다.
2021년부터 복원된 구마모토 성
일부가 공개되었고
2023년 지금까지도 복원작업은 진행 중이다.
아소 화산재의 연약한 지반 위에 축성하기 위해 아
래쪽 넓게 퍼지고
위쪽은 수직으로 쌓아
올린
석축의 높이는 16m 석축 위에 로 32m 천수각을 세웠다.
임진란 때 조선과의 전투경험을 살려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제반 장치와
만일을 대비하여 식량으로 대치할 수 있는 토란줄기, 조롱박, 은행나무 등을 심었다.
천수각 앞에는 1601년 가등청정이 성을 축조할 때 심었다가 불에 타서 죽고
1877년 죽은 나무에서 돋은 가지가 자랐다는 거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천수각의 모형과 내부 구조. 층마다 여러개의 방을 넣고 적의 침입을 대비해 군사를 배치했다고 한다.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천수각
(망루)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에는 임진란 때 일본이 조선을 유린한 행로를 드러낸 지도가 있었다.
1
5
9
2년 4월 14일. 소서행장은 1만 8천 명의 병력을 1군으로 이끌고 조선을 침입하여
부산-밀양-대구-상주를 조령 방면으로 진출했다.
이어 가등청정은 4월 19일, 2만 2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하여
경주-영천-신령-군위-문경을 거쳐 서울로 입성한 선봉대장이었다.
박물관에 진열된 갑옷으로 미루어 볼 때 가등청정은 몸집이 왜소하고 키가 작았다.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이었든지 그의 투구는 높이가 수십
센티미터
나 된다.
불국사를 불태웠고, 경복궁을 불태운 것이 가토 휘하의 부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등청정은 조총을 앞세워 조선의 땅을 유린하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에 전쟁의 화마에 시달린 조선의 백성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임진왜란때 왜군의 칩입로. 가등청정은 함경도 북단에서 명나라까지 침공하기도 했다.
코로나의 완화로 하늘 문이 열리고
엔화 가치가 떨어져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많아지고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비행시간이 40분에 불과한 가까운 이웃나라라고 할지라도
과거
두 차례 칩입의 역사를 외면하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오만한
행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점심 식사로 초밥을 먹고
919년에 창건되어 일본의 중요문화제로 선정된
다
자이후 텐만구로 이동했다.
텐만구 경내 안내도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 본관 건물
일본의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인이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산사로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여든다고 한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500년이나 되었다는 녹나무와
뿌리를 함께 나눈 수백 년 된 부부 녹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아름드리 고목나무들이 연못과 조화를 이루며 잘 보전되어 있다.
일본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1,500년된 녹나무
뿌리를 나눈 부부나무(연리목, 천연기념물로 지정) 등 수 백년된 고목이 여전히 푸른 기세를 발하고 있다.
이곳은 수 백년동안 변함없이 서민들이 복을 빌고 평화를 찾고, 따뜻한 봄날 만개한 매화를 즐기는 곳이다.
텐만
구의 입구에는 소의 동상이 있다.
미치자네 시신을 우마차에 싣고 교토로 옮기려는데
소가 엎드려 꼼짝하지 않아 그 자리를 묏자리로 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소 동상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지고
허리를 만지면
아픈 허리가 낫는다는 전설을 따라
소의 동상을 접견하려는 일본인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머리를 좋게하고 아픈 곳을 낫게 한다는 신통력이 있는 소 동상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다자
이후
텐만
구는 매화의 명소로
유명하다.
매년
봄,
가장 먼저
6천여 그루의 매화가
피어나
수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곳으로도
이름났다.
내 눈에는 특히 홍매화가 눈에 띄었다.
여러 나무가 어울려 피어난 것도 좋지만
매화 한 그루 단독으로 몸을 고고히 비틀고
빨간 꽃을 흐드러지게 피어내거나
가지마다 잔뜩 피운 붉은 꽃이 무거운 양
가지를 축 늘어뜨린
것도
좋았다.
아주 매혹적이라 내 마음이 설렜다.
이렇게 짧은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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