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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재영
Mar 29. 2023
옛 기억이 새로운 박물관, 불국사와 역사의 흔적들
경주 나들이
친구 하나가 장난을 치며 달려다가 박물관 뒷 유리문을 뚫고 나왔던 것과
불국사 여관방 정문 출입 통제로 창문을 뚫고 나가 사온 소주를 마시다 선생에게 발각되어
단체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생생한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에 봄나들이 갔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들린 경주 박물관에는 예전보다 볼거리들이 더 풍부해졌다.
그동안 더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고 역사 해설이 사실화되고 더 정교해진 모양이다.
먼저 무료로 박물관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
누구든 원할 때 언제든지 와서 감상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다.
수천 년 전에 만든 정교한 유물을 눈으로 직접 볼 때 우리 민족의 뛰어난 기술에 감탄하고
뛰어난 유물에 담긴 기록과 이야기를 가슴에 새길 때 우수한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 꽃무늬와 연꽃, 비천상이 새겨진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 종으로 알려진, 박물관 앞 뜰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은
금이 가서
보존을 위해
더 이상의 타종이 불가하다.
대신 매 20분마다 녹음된 종소리가 울린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지 귀 기울였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국에서 종 제작에 아기를 희생물로 바쳤다는 전설은 사실일까?
현대적 종 성분 분석에서 인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구전해 오는 전설이지만, 어릴 적 에밀레 종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섬뜻했다.
이번 방문 때 성덕대왕 신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높이 3.66m, 입지름 2.27m, 무게 18.9톤 초대형 종이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이 있고,
종을 메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종의 상하에는 넓은 띠가 둘러 있고 그 안에
꽃무늬와 아홉 개의
연꽃이
새겨져 있고
몸통에는 두 쌍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었다.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단검이 신라의 황금보검과 비슷하다.
박물관 안에서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을
찾아보았다.
검의 형태가 신라의 양식을 따르지 않았고 신라에서 생산되지 않은 보석으로
보검을 장식한 것이 확인되었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카자흐스탄 보르보예 지역에서 비슷하게 생긴 단검의 일부가 발견되었고
중국 신장 위구르의 키질석굴 천장의 벽화에도 비슷한 단검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신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까지 교역의 범위를 넓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족들은 금으로 장식하고 경주 전역에서는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신라 부흥기의 부유함과 아시아 전역까지 미쳤을 국력이 확인되었다.
금은세공, 토기 등에서 신가의 손기술과 예술의 다양성 확인할 수 있는 있다. 기마인물형 뿔잔 토기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고대 무사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지닌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터에서 기동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말도 역시 철갑을 두르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말 탄 병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귀한 유산이
부서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것에 감사했다.
얼굴무늬 기와 수막새에 담긴 신라인의 천년 미소
포석정을 찾아갔다.
포석정은 높은 신분의 인물들이 모여 제사를 모셨거나
물에 몸을 씻어 부정을 없애는 행사를 치르는 특별한 의식과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시를 짓고 노는 유희를 즐겼던 곳으로 유추되지만
신라의 경애왕이 최후를 맞이한 비극의 기록이 남은 곳이기도 하다.
신라말 경애왕은 견훤의 공격에 대비해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왕건이 보낸 군사가 도착하기 전에 견훤은 왕경(경주)을 쳐들어 왔다.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인 경애왕은 적의 침입을 알지 못했고
결국 견훤 군 진영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한가롭게 먹고 즐기다가 위기의 발생을 알지 못한 비극적인 기록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살아가는 동안 이를 경계하며 늘 깨어있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풍요로운 신라의 유유자적하는 여유와 비운의 사건을 담고 있는 포석정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불국사를 찾아갔다.
신라 때 창건되어 여러 번 중건이 거듭되고 1970년대까지 보수되어 온 불국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찍은 사진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보아온 달력의 한 장이 되고
10원짜리 동전에 새겨 있는 정교한 다보탑은 한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유산이다.
석가탑과 다보탑
김대성이 창건했다는 불국사와 석굴암에는 많은 전설과 애환이 서려 있다.
석가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고 불국사의 연못에 탑의 그립자가 비친다고 해서
그곳에서 기다리던 아사녀가 석가탐의 그림자가 비치치 않아서 마침내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이라고도 불리고
1966년 10월에 이 탑을 보수하다가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지금은 돌사자 한 마리만 남았다.
정교하고 기이한 형태의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서러움이 전해진다.
1925년 일본인이 탑을 완전 해체 보수하면서 탑 속에 보관된 사리함과 유물들을 탈취해 갔다.
그리고 기단에 놓여 있던 네 마리 돌사자 중 세 마리는 약탈해 가고 현재는 한 마리가 남아있다.
이를 찾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 왔으나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개인 정원이나 절에 놓여 있을 돌사자가 다보탑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전통적인 조선시대 마을 배치, 정원과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양동마을
경주 인근 양동마을도 들렀다.
경주시 강동면 설창산에 둘러 싸여 있는 양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의 건축, 조경과 자연과의 친화성이 잘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조선시대 성리학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 등 많은 학자와 명장,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면서
6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평화스러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이웃 간에 오갔을 훈훈한 인정과 평안이
따뜻하게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차를 몰아 감은사 터와 문무대왕 해중릉을 찾아갔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을 했고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사를 지냈다.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을 기리기 위해 인근에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수로를
파서
동해
대왕암과
감은사
금당
까지
직결시키고
그 위에 감은사를 세웠다.
그리고 읍천리 해변에 발달해 있는 주상절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애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것이나
수평으로 누워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읍천리 주상절리는 부채꼴 모양을 지니고 있어 특이하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부채꼴 주상절리가 특이하다.
이곳뿐 아니라 광주 무등산 정상, 포항 달전리, 울산 산화동 등에서 주상절리가 발견된다.
문득 화산활동 흔적이 없는 해변이나 산 위에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화산 활동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막연하지만 옛날 옛날 지구가 생성될 때를 상상해 보았다.
태초에 거대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지구 표면이 식기 시작하면서
화산이 폭발하고 고온의 마그마가 분출되고 용암이 쌓여 산을 이루었다.
한반도 내 지구 속 마그마가 지표면을 뚫고 나와 용암 등이 쌓여 만들어진 산체는
울릉도, 제주도와 백두산과 같이 분화구가 선명한 화산들과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대량으로 분출되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산으로 보이는 평강읍 오리산, 광주 무등산, 대구 비슬산, 부산 장산 등과
평강-철원 일대와 개마공원 등을 거대한 용암대지를 이루었다.
그리고 수만 년의 시간이 흘러 환산재가 옥토로 바뀌고 용암대지위에 흙이 덮이고
그 위에 숲이 발달하고 물길이 생긴 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리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화산 활동의 흔적은 감추어지고 일부지역 지표면에 화산의 흔적이 남은 것이고
용암이 식어 기둥모양으로 굳은 것이 주상절리가 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옛 신라의 빼어난 역사와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변화와 새로운 발견들을 이어왔을 뿐
인간은 계속 발전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신라의 왕관과 귀고리에서 보이는 뛰어난 세공기술을 현대의 금세공사들의 손기술이 뛰어넘지 못하고
다보탑 속에 보관되었던 부처의 가르침을 여전히 연구하고 따르고 있다.
결코 교만하지 말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정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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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고, 풍족한 삶을 위해 경험과 추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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