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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16. 2020

능소화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원이 아버지께

일요일 모임을 마치고 반투 가족과 와이엇 형제를 태우고 막 교회 문을 나서려 할 찰나였다. 교회 담벼락 따라 길게 널려진 능소화 능쿨 가지의 밑동이 싹둑 잘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이 싸늘해지고 알지 못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가?      


고급스럽고 기품이 있는 능소화는 예전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고 불렸다. 10여 년 전 교회의 담벼락 밑에 능소화를 심었다. 능소화는 매년 여름부터 초가을, 교회의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분홍빛 자태를 뽐내었다. 매주 안식일마다 교회 입구에서 만발한 능소화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가벼운 즐거움의 비명을 질렀다.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들었다. 온갖 시름으로 억눌린 마음을 녹여 주는 역할에 감사했다. 그런데 오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발견한 것이다. 꽃이 피고 지고, 개화기간 내내 싱싱하게 피는 꽃을 즐기는 대가는 치르면 되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끊임없이 청소해야 하는 부담은 전체 회원이 나누어 가지면 된다. 그런데 그것이 귀찮다고 싹둑 자라 내야 했을까?


어쩌면 능소화라는 꽃 자체가 본래부터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조두진의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라는 소설에는 능소화에 담긴 이별 이야기 한 부분이 있다. "바람이 불어 봄꽃이 피고 진 다음, 다른 꽃들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 능소화는 붉고 큰 꽃망울을 터뜨려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산짐승과 들짐승들이 당신 눈을 가리더라도 금방 눈에 띌 큰 꽃을 피울 것입니다. 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 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이,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주세요.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붉고 큰 능소화를 보고서야 편안한 안식처인 교회에 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 여름날 아침 교회에서 더 이상 만발한 능소화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찌 세상의 근심과 삶의 무게를 털어 낼 수 있을까? 시린 가슴을 안고 고개를 숙여 옛 능소화 피던 담벼락을 외면하겠지. 그 순간 마음에는 또 다른 슬픔 조각들이 켜켜이 쌓이겠지.


나는 그 꽃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 능소화에 관련된 실제 이별  이야기 한 토막 추가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택지조성을 위해 능소화 넝쿨로 덮인 분묘를 이장하던 중 한 남자의 미라와 여러 개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미라는 바로 조선 명종 때 사람 고성 이 씨 이응태의 것으로, 관에서는 미라와 함께 죽은 자의 형 몽태가 부채에 쓴 한시, 만시(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 등 한문 아홉 장, 한글과 한문 병용 석 장, 죽은 이의 아내가 한글로 쓴 편지와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가 나왔다. 함께 발견된 여러 장의 편지 중 유독 "원이 아버지께"라고 쓴 아내의 편지 한 장이 유난히 이목을 끌었다.

"원이 아버지께"로 시작되는  그 편지는 사연을 적을 자리가 모자라 편지지를 돌려 가장자리까지 빼곡하게 적었다. 내용은 병으로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아내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편지 내용을 현대 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원이 아버지께 ♨♨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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