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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28. 2020

더 플랫폼의 부조리

인간사회의 계급구조

5월에 영화를 봤다.

오랜만이었다. 지난 2월 초 마지막으로 봤으니 3개월 만이다. 매주 한 두 편의 영화를 보아 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스스로 발길을 끊었다. 인적이 적으니 운영자도 흥미로운 영화를 걸지도 않는다. 그러니 극장은 더 적막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영화를 안 봤더니 영혼이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더 플랫폼'. 영화평이 높아 마스크로 무장하고 극장에 갔다. 입구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자동발매기에서 극장표를 출력하고 나니 직원 하나가 나와서 영화관으로 안내했다. 극장 4관에는 나 포함하여 단 4명. 위층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영화보기에 몰두했다.


수직 구조의 감옥은 하루에 한 번씩 음식이 공급된다. 수용자 모두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음식을 차려 최초 0층에 공급된다. 음식을 먹고 아래 1층으로 음식상이 전달되고, 1층에서 먹고 2층으로 전해지고, 아래로 계속 전달된다. 위층 수용자에게는 진수성찬이다. 입맛대로 진기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 위층 수용자에게는 적당한 양을 깨끗이 먹고 아래층 수용자와 음식을 나누려는 배려는 일체 없다. 식사 후 음식을 짓이기고 침을 뱉는다. 오줌을 갈기기도 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음식량이 줄어들고 지저분해지고 찌꺼기만 남다가 결국 빈 접시뿐. 음식은 흔적조차 없어진다. 그 아래층부터는 음식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물로 배를 채우고, 급기야는 함께 수용한 자를 살해하여 인육을 취하는기도. 더러는 그 절망감에 자살을 감행한다.


수용자는 한 층에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다. 매달 배정되는 층이 달라진다. 어느 층에 배정될지 모른다. 무작위 재배치로 인해 수용자의 신분이 반전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운 좋게 위층에 배정되면 진수성찬을 마음껏 즐기고, 아래층에 배정되면 굶는다. 여러 층을 경험하지만, 위층에 배정되면 아래층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래층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오직 현재 배정받은 층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거나 겨우 배를 채우거나, 굶어 죽는다. 또는 자살한다.

한 수용자는 6m 천장에 줄을 매달아 배정된 층에서의 탈출을 꾀한다. 수용자가 위층에 닿을 때쯤 손을 내밀어 위층 수용자의 도움을 구하지만, 얻는 것은 똥덩이뿐이다. 위층 수용자가 올라오는 수용자를 향해 똥을 싼다. 상승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 수용자는 자진적 동참을 시도한다. 하루 먹을 만큼만 먹고 아래층으로 내려 보낸다. 아래층 사람들에게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무시당한다. 자발적 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에서 주인공은 위층의 음식 독식을 막고 아래층에 전달하기 위해 물리적 힘을 발휘한다. 반대자가 많은 가운데 음식을 강제 분배한다. 하지만 아래층은 끝없이 이어지고 음식은 떨어진다. 최하층에서는 처참한 비극뿐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영화는 계급 간 불평등과 계급 내 연대의식이 팽배한 인간의 서열화와 이기심을 다루었다. 서로 배려하면 모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러나 인간 세계의 계급적 구조는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개인적 양심과 도덕조차 마비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욕망과 계급 간 갈등이 풍요와 가난을 탄생시켰다. 넘쳐나는 풍요의 계층은 중노동에 시달리는 서민을, 가난한 국가를,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는 난민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외면한다. 영화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과 기적의 상징으로 어린아이를 최 위층으로 보내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만,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계층적 구조의 이기심을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풍요로운 미국의 넘쳐나는 음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데, 일부 아프리칸은 굶어 죽는다. 공평한 분배나 자비로운 도움은 없다. 아~ 정말 인간의 세계는 몽매한가?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우울한 영화이다. 현상만 보여줄 뿐이다.


결국 나는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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