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말한다. 아이티 민간신앙인 부두교 전설에서 유래했다. 좀비를 만드는 주체는 부두교의 사제인 ‘호운간’ 혹은 주술사인 ‘보커’다. 부두교의 좀비는 지성이 없는 존재로 주술에 의해 조종당하는 존재였다. 대중 영화 속에서는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좀비가 생기고, 사람들이 좀비에게 물려 좀비로 변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시브룩가 처음으로 1929년 그의 저서 ‘마술의 섬’에서 아이티 부두교와 좀비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보커가 약물로 사람을 가사 상태로 빠트린 뒤 명령에 복종하는 좀비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 후 1932년에 미국의 감독 빅터 핼퍼린이 ‘화이트 좀비’를 제작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대중문화 속 좀비에 대한 현대적 개념은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에서 로메로는 부두교 좀비에 흡혈귀 특성을 가미한 새로운 좀비를 만들어 냈다. 좀비들을 주술사의 명령에 따르는 노예가 아닌 인간을 해치는 초자연적 존재로 변했다. 영화에서는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해 죽은 자들이 살아나 살아있는 인간을 공격하며 심지어는 먹기도 한다. 이후 ‘시체들의 새벽’, ‘좀비 2’, ‘새벽의 저주’ 같은 유사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대중적 흥행에 성공했다. 좀비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좀비들은 이전과 달리 매우 빨라졌으며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묘사되었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는 좀비 자체보다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 군상의 모습으로 좀비를 등장시켰다. 만화책을 원작으로 2010년에 워킹 데드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현재는 시리즈 10이 제작되어 방영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최초의 좀비 영화는 1980년 강범구 감독에 의해 제작된 ‘괴시’이다. 이 영화에서는 초음파가 신경세포를 건드려 움직이게 된 시체가 주인공의 일행을 급습한다. 그 당시 관객들에겐 섹스와 공포, 잔인함이 버물려진 괴이한 영화로 인식되어 대중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 영화 이후 한국의 영화에서는 오랫동안 좀비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가, 2016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의 성공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1,150만 관객이 부산행을 봤고, 필리핀 작은 도시 일로일로시에 사는 친구 네바도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 여기에 드라마 ‘킹덤’이 제작되어 넷플릭스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좀비물의 세계적 강국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킹덤은 웨스테로스 대륙 7개 국가의 통치권인 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를 그린 드라마 ‘왕좌의 게임’보다 재미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부산행의 속편 ‘반도’의 개봉을 기대하는 중에 좀비 영화 ‘살아있다’가 먼저 공개되었다. 개봉 첫날에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10여 명의 관객뿐인 극장의 한 모퉁이에 앉아 영화를 봤다. 이 작품의 원안은 미국 각본가 맷 네일러의 시나리오이다. 국내 영화사가 영화 시나리오 판권을 사 왔고, 미국과 한국이 각각 동시에 개별적인 영화 제작을 진행했다. 한국이 아이디어를 추가하면서 새롭게 각색 작업을 한 다음 영화를 촬영하고 먼저 개봉하였다.
영화 속에서는 오직 유아인과 박신혜 두 배우만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의 집 바깥세상은 좀비가 사람을 물어뜯고, 좀비가 확산하는 아비규환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버지의 마지막 휴대폰 문자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부에 따라 주인공 준우는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시간이 흘러 먹는 것이 떨어져 가고, 물과 전기가 끊기는 피폐한 상황을 간신히 버텨간다. 그러나 고립 20일이 지나지만 준우의 얼굴은 빛이 난다. 수염 하나 나지 않은 깔끔한 얼굴이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혼자 고립된 생존자 유빈도 맑고 예쁜 얼굴을 유지한다. 준우와 유빈은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 같지 않다. 아파트를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때의 유빈은 설악산에 등산을 가는 것처럼 해맑다. 몰려드는 좀비를 헤쳐나가는 유빈은 여전사처럼 괴력을 발휘한다. 좀비로 변한 아내에게 주인공을 먹이로 제공하려는 인물의 등장은 다른 좀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진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옥상으로 올라가서 좀비들에게 몰릴 때 헬리콥터가 등장해서 주인공을 구출하는 장면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만화적 요소로서 관객들을 어이없도록 만든다. 드론을 활용하는 장면 같은 잔재미들이 곳곳에 있지만 영화 전체의 스토리는 너무도 평이하고 진부하다. 결국 몇 년간 대중의 눈에서 사라진 유아인을 등장시키고 상대자로 박신혜를 기용함으로써, 두 배우에 대한 젊은이들의 팬텀에 기대는 안이한 영화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극장에 가기 전 영화 예매 사이트에서 관객들의 영화 평가가 10점 만점에 5.3점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나도 꼭 그만큼의 점수를 매긴다.
부산행 속편 ‘반도’가 7월에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부산행’에서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역동적이고 처절한 좀비 영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