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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29. 2020

하이난, 송성가무쇼

중국 하이난, 두 번째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 어제 사둔 망고 하나를 뚝딱 잘라먹었다. 이곳에서 원 없이 먹고 갈  작정으로 망고를 한 아름 샀다. 하루 세네 개는 먹어서 망고 갈증을 없애기로 했다. 한국에서 망고 생각나지 않도록.


여느  때처럼  필리피노 친구와 중국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  뒤부터 오후까지 아무 일정 없이 팻캐스트를 듣다가, 잠을 자다가, 군밤을 까먹다가, 한가로이 호텔 베란다로 나가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기도 하다가, 다시 침대에 벌렁 눕기를 반복했다. 정말 온전한 휴식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고, 하얀 요트는 바다를 가르며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시내로 나가 파인애플 몰 4층에 있는 식당에서 샤부샤부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온갖 소스가 있지만 그중 칠리소스가 야채와 흑돼지 삼겹살, 어묵 샤부샤부에 가장 잘 어울렸다. 땀을 빨빨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 중에  도심지  중앙에 대형 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천 개의 객실을 가진 최고급 호텔 건물을 나무 모양으로 건축한 것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빌딩 숲을 나무 숲으로 순화한 발상이 기발하다.



점심식사시간이 많이 걸려 5시에 보기로 한 삼아천고정을 8 시대로 늦추어 보기로 했더니 한결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택시 기사를 통해 구입한 티켓으로 먼저 동물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릴 적에 봤던 원숭이, 구관조, 공작새, 악어거북, 뱀, 얼룩말... 오랜만에 실물을 가까이 접했다.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TV 동물의 세계를 통해 동물의 생김새나 특성을 클로즈업해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동물원 식구들이 전혀 생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자유로워야 할 동물의 권리를 고려해야겠지만 인간 삶의 정서적 함양을 위해서 동식물원 유지가 필요하다. 기린의 얼룩무늬들이 점을 찍듯이 일괄적으로 원형인  줄 알았다. 이번에 각 조각마다 독특한 문향을 가진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수 천명이 송성가무쇼를 보러 오는지라 무료한 대기시간을 메꿔 줄 야외무대, 프레이드, 온갖 식당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시작 시간이 남아 귀신의 집을 들어가 봤다.


4천6백 석 공연장의 절반 이상을 관객이 자리를 메꾸자 본격적인 송성가무쇼가 시작되었다. 삼아천고정, 삼아 지역에 얽힌 애틋한 사랑 얘기와 기원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전체적 스토리 전개가 매끄롭지 않다. 아무래도 수백 명의 공연자, 스토리  탤링, 놀라운 화면 전개와 다양한 색의 전개로 중국 내 많은 가무쇼를 연출한 거장 장예모의 작품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출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래오래 작품의 짙한 장면들을 잊지 못하게 한다. 송성가무쇼는 레이저 쇼, 인어공주, 무대의 폭포, 서커스, 해양스포츠, 바닷속 물고기 등 무대와 관객을 모두 아우르는 연출로 다양하게 공연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기억에 담아둘 장면들은 없었다. 음식으로 치면 뷔페와 같았다. 많이는 먹었는데 특별히 맛있었던 요리가 있었든가?


공연이 마치기 직전 재빨리 빠져나와 제일 야시장을 달려갔다. 자갈치와 같은 수산시장, 풍부한 먹거리,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다고 들었다. 늦은 밤이라 어디에 있는지 몰라 길거리 야시장을 둘러보았다. 조개를 갈라 동그란 가짜 진주를 꺼내 반지와 목걸이를 만들어 주는 간이 마차, 노랗고 투명한 인조 호박을 파는 마차 등 고만고만한 마차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배가 출출했다. 밤이 깊어 간단히 때울 양으로 근처 작은 중식당에 들렸다. 현지인이 먹는 국수로 저녁을 대신했다. 돼지고기, 새우, 땅콩, 내장, 향채 등이 고명으로 올랐다. 국수는 불어서 입안에서 뚝뚝 쉽게 끊겼다. 반찬 하나 없는 국수를 오랜만에 먹었다. 20년 전 2, 3위엔 하던 국수값이 15위엔으로 껑충 올랐다.


밝은 낮에 다시 오리라 기약하면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끈적이는 땀을 씻어내고, 하루를 정리하려는데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왔다. 정리를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기록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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