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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y 21. 2020

부산근교 아홉산을 가다

부산 인근 철마에  소재한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아홉산에 다녀왔다.      

긴 세월 동안 정성스럽게 가꾸어 온 한 집안의 수고가 있어 아홉산의 산림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다. 2004년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받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홉산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림은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뭇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바뀌었다.


아홉산 숲에는 다양한 수종의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울진 금강송 군락에 비할 수 있는 수령이 400년이 넘는 아름드리 116그루 적송 보호수가 건강하고 청청한 모습으로 하늘을 바치고 있다. 작고 꼬불꼬불 뒤틀린 소나무에 익숙한 우리는 아홉산 금강송을 보고 나서야, 크고 높게 자라는 늠름한 우리나라 고유 소나무의 기상을 깨닫게 된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얼마나 강건하고 우람한지 알게 된다. 금강송의 크고 올곧은 기상이 우리의 모습이다.


약 만평의 넓은 산에 높이 10m ~ 30m,  지름 20cm까지 자라는 맹종죽이 빽빽이 들어 차 있다. 모죽이라고도 불리는 맹종죽은 씨앗을 심고 5년 동안이나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고 한다. 죽었을 것이고 생각이 될 5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죽순이 돋아나 주 성장기인 4월이 되면 하루에 80cm씩 자라기 시작해서 30m까지 자란다. 5년간 숨죽이고 아래로 아래로만 뿌리를 뻗어 내실을 다지다가 당당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패와 고생을 거듭하더라도 분명 성공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로 차분히 내실을 다져 나간다면 폭발적인 성장의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러니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거북이의 등을 닮았다 하여 구갑죽이라 불리는 이 대나무는 1950년대 말 중국에서 뿌리 몇 그루를 이식받은 것으로 최근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기까지 이 곳에서만 자랐다고 한다

30m가 넘는 대나무가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은 중간중간에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실패와 고난은 우리의 인생 중간중간에 마디를 형성하는 것으로, 꺾이지 않는 강인한 근육을 강화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모죽의  밑둥치에서 뻗어 내린 수많은 잔뿌리를 보라. 하늘 높이 자라기 위해 끊임없이 자양분을 섭취하는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홉산 입구에 산주 일가가 살고 있는 '고사리조차 보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60년 된 한옥 '관미헌'이 자리 잡고 있다. 단아한 목조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철마면 중리마을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관미헌 주위에서 잊지 말고 오죽, 구갑죽, 은행나무 등을 찾아보자.


꼭꼭 숨어 있던 아홉산을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황금송 군락은 울진의 황금송 군락을 대신하고, 대나무 숲은 단양 죽림원을 떠 올리게 한다. 심호흡을 하며 피톤치드를 들어마시게 하는 편백숲, 참나무 군락, 진달래 군락, 차나무 재배지, 삼나무 조림지... 부산 근교에 사색을 하며 평화롭고 온전한 산림을 거닐 수 있는 아홉산이 있다. 참으로 큰 행운이다.


오늘 하루, 바람에 서걱대는 댓잎소리가 마음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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