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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05. 2020

천계산 풍경구에서 노닐다

중국 태항산, 두 번째 이야기

허난 성의 면적은 중국 면적의 1.6%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1억 명이나 된다. 성도는 정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원이 바로 허난 성이다. 조조가 중원을 차지하면 전국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유는 허난 성에는 대규모의 평원이 있는 곡창지대라서 전쟁 시 보급품 공급에 문제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역사상 열세 개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정했고 200여 명의 왕이 배출된 곳이다. 연 강수량이 600m 정도 된다. 논농사 짓기에는 비가 적은 편이라 주로 이모작 밀농사와 간간이 옥수수 농사를 하고 있는 탓에 이곳의 주식은 빵과 국수이다.

허난 성 신향에서 새벽밥을 먹고 남태항산맥으로 출발했다. 대표적 협곡인 회룡 관광지가 시작되는 천계산에서 눈과 마음으로 즐기는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붉은 직벽들이 꾸며내는 협곡 풍경을 감상했다. 이곳은 도교문화를 깨닫는 신성한 성지이다.


천계산 입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파른 도로를 꼬불꼬불 올라가다 도중에 공사로 길이 막혀 차에서 내려야 했다. 한 30분을 걸어 올라갔는데 차도인데도 어찌나 가파른지 숨이 막히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버스 아니면 어떻게 이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사회주의라 시민들 저항 없이 산길을 고 더러 케이블카도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어림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명산지를 쉽게 오르고 눈이 호강한다는 소문이 외국까지 퍼져 관광객이 넘쳐나고, 관광 가이드들의 주머니를 불룩하게 만들어 주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가 80위안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조선족 가이드는 길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대가로 무려 5배를 부른다. 80달러에 관광객을 퍼 날랐다. 뻔히 알지만 가이드 없이는 관광할 수 없는 구조라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천계산 상부는 수 십 미터  직벽으로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 9명이 맨손과 곡괭이로 암벽을 뚫어 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을 내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해 냈다.

버스로 올라갈 수 있는 곳도 한계가 있다. 천계산 상부에는 수 십 미터 붉은 직벽이 산 아래와 위쪽을 가르고 있어 도보로도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했다. 이때 짠하고 나타난 이들이 아랫마을에 살고 있던 장용석을 비롯한 9명의 용사이다. 맨손과 곡괭이로 암벽을 뚫어 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을 냈다고 한다. 장용석은 국가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나라에서 주는 보상으로 아랫마을에서 지금도 잘살고 있다고 한다.

천계산 정상은 둥근 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방에 구름이 내려앉은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홍암 절벽 회룡 대협곡과 대자연에 도전하는 회룡 절벽 도로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올 4월에 개통했다는 200m 유리잔도가 산전체를 감상하는데 일조했다.

유리잔도 아래 천 길 낭떠러지가 아득하다.


복을 기원하고 도를 구한다는 천하제일의 철제 지붕 노야정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고서도 450m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후덜 거릴 때쯤에 팻말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곳에는 '피곤하시죠? 그것이 바로 인생이에요'라고 적혀 있다.

가파른 노야봉을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팻말. "피곤하시죠? 그것이 바로 인생이에요"

해발 1,572m 정상에는 관우를 모신 노야정이 있다. 전설에는 도교 창시자인 노자가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 최초의 도교 발생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와 사진을 몇 장을 더 찍었다.


다음으로 옮긴 곳은 산서와 하남 2성의 분계산으로 총면적은 40km인 왕망령 절경구이다. 전설에 의하면 전한 시기에 왕망이 유수를 쫒아 진을 쳤다고 해서 왕망령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태항을 옹위하는 산세가 장관이다. 이곳이 옛날에는 바다 밑이었다고 한다. 정상 한편에는 한 때 바다였던 곳이 융기되어 형성된 올망졸망한 괴암들이 바닥에 펼쳐 있다.


절경구 서남 아래에는 2km에 이르는 절애구가 있다. 산 위에 사는 주민들 3대가 30년에 거쳐 암반을 뚫어 길을 내서 아랫마을과 최단거리로 이어준다.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산을 뚫어 연결하려 했을까?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대륙 사람들의 기질답게 원대한 꿈을 꾸며 첫 곡괭이질을 시작해서 2km 암굴을 뚫었다. 굴은 소형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크기로 뭇 관광객을 산아래로 실어 나른다. 마을 주민인 기사는 무전기로 서로 연락하며 폭이 넓은 곳에서 차를 멈춰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차를 몰았다. 차량 20대가 이들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다.

암반을 뚫어 길을 내고, 조명 대신 큰 환기통을 만들어 빛이 들러 오게 만들었다.


만선산 홍암 적벽 대협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주왕산을 오르는 길과 유사하다. 땀을 흘릴 정도로 오르다 보면 흑룡담 폭포를 만나게 된다. 아래에서 고개를 바싹 위로 쳐올라다 봐야 겨우 하늘이 보인다.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된 암벽에 아슬아슬하게 설치된 삭도를 따라 올라가야 폭포가 한눈에 보인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찍어야 하늘과 폭포 전경을 담을 수 있다.


어스름한 저녁에 만선산 깊은 계곡에서 발걸음을 조심하며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장대비를 만났다. 태항산에서는 맑은 날씨를 만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오늘 하루 쾌청한 가운데 모든 트래킹을 마칠 무렵에 비를 만났다. 큰 다행이었다.


샤부샤부로 저녁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임주로 향했다. 샤워 후 노독을 풀기 위해 호텔 인근 마사지 샾에 갔더니 90분에 40불을 달라고 했다. 돌아와서 호텔에서 운영하는 전문 마사지 샾을 선택했다. 호텔 5층 전체를 샾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깨끗한 방에서 수많은 계단 오르기로 지친 육신의 피로를 풀었다. 이곳의 전문인 발 마사지는 특히 시원했다. 중국 마사지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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