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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17. 2020

보홀 데이투어

필리핀 보홀, 두 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먹는  것을 나눠 먹으면 쉽게 친해진다. 세부에서 보홀까지 배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데, 자리는 좁고 창문은 흐려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옆에 앉은 젊은 필리피노에게 사탕 몇 알을 나누어 주었더니 눈치만 살피던 그가 용기를 내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고 졸기도 하다가 마침내 보홀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 앞에서 가이드를 만나 빨간색 택시를 빌려 타고 리복 강으로 출발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줄기에 큰 배를 띄워 관광객을 싣는다. 선상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배는 리복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에코 아일랜드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어 섬 정부에서 환경보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단다. 자연을 훼손하거나 공기를 오염시킬 시설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리복 강물은 너무도 푸르고 공기는 깨끗해서 사람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배안에는 나이 든 가수가 각 나라에서 온 손님을 환영하며 여러 나라의 노래를 불렀다. 한국인인 나와 가이드를 위해서 '사랑해'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기착지에서는 원주민이 율동과 노래로 관광객을 홀리고, 나는 게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따갈로어로는 타르시아라고 불리는 안경원숭이는 성체가 되어도 쥐만 한 크기에 불과하다. 어울리지 않는 큰 눈과 쥐꼬리같이 매끈한 긴 꼬리를 가졌다. 눈은 크지만 눈알을 돌리지 못해서 고개를 360도까지 돌린단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잠만 잔다. 낮에 잠자는 안경원숭이를 보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몰려온다. 보존구역에 들어서면 400마리뿐인 귀한 존재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숨을 죽여야 한다. 그저 사진 몇 컷 찍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야간에는 이 원숭이 행동이 민첩해서 5m 높이를 자유롭게 옮겨 가면서 귀뚜라미 등 곤충을 잡아 먹는다고 한다. 보기와 달리 육식성이다. SF 영화 스타워즈의 주인공인 지혜의 요다와 그렘린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델이 바로 안경원숭이다.


인근에 나비공원이 있어 들렸더니 정작 나비는 몇 마리 안 보였다. 안내를 하는 필리핀 총각의 설명이 맛깔났다. 공원 한쪽에 생강나무와 우리 가정에서 흔히 키우는 나무 한그루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나무가 이렇게도 크게 자랄 수 있는가? 빨간 생강나무 꽃은 생전 처음 봤다.

빨간 생강나무 꽃


바다가 융기되고 세월이 흘러 석회암이 녹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형성과정은 유사하나 베트남 하롱베이나 중국 계림과는 달리 수십 미터 둥근 오름같이 생겼다. 이 곳을 키세스 초콜릿을 흩어놓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초콜릿 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20미터로 제일 높은 언덕에 전망대를 세워져 중턱까지는 차가 올라가고 나머지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수가 214개나 된다. 연인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밸런타인데이 2월 14일을 연상케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몇 해전에 대형 지진이 지축을 흔들어 이곳도 큰 타격을 입었단다. 새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다섯 계단이 더해져서 이젠 219 계단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연인들이 많이 찾아든다.

바다가 융기한 후 석회암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계림과 초콜릿 힐. 모양새가 너무도 다르다.


하루 관광을 마치고 호텔을 찾아가 야외 수영장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더운 몸을 식혔다. 야외 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wifi에 의존해 하루를 정리하고 킹사이즈  침대 두 개가 놓인 지나치게 큰 방으로 잠을 청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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