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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19. 2020

보홀의 일상적인 생활을 엿보다

필리핀 보홀, 마지막 이야기

5시 40분쯤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멀뚱멀뚱거리다가 동네 한 바퀴로 둘러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2분만 걸어 나가면 큰길이 나오고, 길 따라 걸어가다 만난 것은 묘지다. 식민지적에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마을 옆에 죽은 자를 모셔둔다. 자주 찾아가서 그리움을 달래고 위로도 받는 곳이다. 무덤으로 번듯한 집을 짓고 그 가운데 조상을 모시고 있다.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 크고 견고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비타를 모신 레콜레따 묘지에 비견할 만하다. 부자들만이 누리는 사치일 수도 있다. 많은 필리피노는 판자나 대나무로 그저 바람을 피할  정도의 작은 집에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러한 빈자에 비해 부자들의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은 300평보다 큰 경우도 있다. 무덤 너머까지 빈부의 격차를 보이니 실로 안타깝다.

무덤이 빌리지 내 좋은 집들처럼 생겼다. 그 한가운데 정원까지 갖춘 호화 무덤도 있었다.
가난한 필리핀 가족이 사는 집이 무덤보다 못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큰 광장이 나오고, 그 옆에 스페인식 멋진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4층 높이 정도이니 규모가 상당했다. 화요일인데도 예배를 보는지 종이 울렸다. 편리하게도 망루에 올라가지 않고 종각에서 줄을 길게 느려뜨려 마당에서 줄을 당겨 종을 치고 있었다. 경건성이 떨어지고 가볍게 느껴졌다. 너무 성의 없지 않나? 성당 안에서는 신부님이 따갈로어로 예배를 주관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참가해 보기로 했다. 일어섰다가 앉고를 여러 번 반복하였고, 중간중간 노래가 이어졌다. 음악이 종교의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계단을 올라가서 경건하게 종을 울려야지 너무 대충대충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닌가? 성의가 없어 보인다.


성당 내부는 유럽의 큰 성당처럼은 아니지만 성화로 천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라틴어로 1에서 10까지 숫자가 쓰여 있었다. 십계명을 상징하겠지. 이곳에도 남자보다는 여신도가 많았다. 신도들은 작고 체구가 아담한데 비해 함께 예배 보는 수녀님들은 한결같이 덩치가 크다. 안경 쓴 수녀님이 절반이나 되었다. 안경 쓴 필리피노는 잘 보이지 않는데... 예배가 끝나고 연단에 올라가서 마리아상에 입혀 놓은 금박 옷에 손을 대어보고, 성 프란체스코의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봤다. 밖에 나오자 두 개의 목판에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십계명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라틴숫자만 봐도 십계명이라는 것을 알겠다. 친절하게도 성당 밖에 그 내용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길가에는 살리살리라고 부르는 구멍가게를 열어 한 푼이라도 벌어 보겠다는 집들이 많다. 제법 반듯한 집에서도 밥과 반찬을 진열해서 아침을 파는 집도 보인다. 새벽에 잡은 잡은 잔멸치와 한 뼘도 되지 않는 정어리 새끼를 파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필리피노 중에는 동료들이 마실 음료수를 배달해 파는 직장인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는 욕구들이 대단하다. 도로 옆에는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나무와 야자열매 껍질 말린 것을 연료로 사용하는 집들이 많다.

조그마한 구멍가게 살리살리.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은 거의 작은 것들 뿐이다. 작은 배에 어구가 빈약해서 그럴 것이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의 가장들은 취미로 투계를 키워서 새벽이 되면 장탉들의 횃치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장탉들은 주인을 닮아서 덩치는 왜소하지만 기개와 외관은 수려하다. 주인은 장탉들에게 개별 횃대를 만들어 주어 장탉들마다 자신이 최고임을 뽐내게 한다. 그래야 투계장에서 기가 죽지 않고 사력을 다해 싸우게 되는 것이다.
수컷들의 특성을 잘 살린 예인데, 남자 인간 세계도 다르지 않다. 수컷들은 언제나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자리보전을 위해 피 터지게 싸울 준비를 한다. 노화되면 정상에서 물러나 이름 없이 사라진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자신의 힘이 세졌다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위를 치받아 보는 것이 수컷들의 속성이다. 그래서 수컷 세계에는 진정한 평화란 없는 법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친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장탉들마다 자신들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고 횃대가 있어서, 그 구역에서 그 장탉이 스스로 왕으로 인식한다.

오래전에 민도르 섬에서 투계를 볼 기회가 있었다. 닭들은 투쟁력도 뛰어나지만 닭발에 날카로운 칼을 차고 있어 싸움이 오래가지 못한다. 싸움의 승자가 칼 맞아 죽은 닭을 즉석에서 볶음이나 튀김으로  먹어 치운다. 큰돈을 걸고 투계에 열광한다.


호텔 바로 옆에 교회 간판이 보여 찾아갔더니 예쁘게 정원을 가꾸던 노부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보홀 팡라오 섬에 있는 유일한 교회로 회원의 집 일부를 빌려 4, 50여 명의 회원이 예배를  보고 있단다. 하와이에서 살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에 돌아왔고, 남편은 여전히 BYU에서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면서 나그네를 지극히 환대했다. 가족과 함께 꼭 다시 와 달라는 말이 간곡하다.


가톨릭이 대부분인 이 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나, 표정이 밝고 선한 모습에서 평화로운 삶을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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