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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04. 2024

회문과 어구전철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9)

유아기는 어휘 습득이 놀라울 정도로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어휘습득에 있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점입니다. 이른바 매튜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어휘습득에서도 일어납니다. 즉 어휘를 많이 아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많이 더 쉽게 어휘를 늘려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특히 어린 시기에는 어휘를 늘리는데 신경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어카드로 단어를 익힐 게 아니라 말놀이로 어휘력을 늘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단어를 활용한 말놀이, 쉽지 않습니다.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말놀이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규칙입니다. 말놀이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재개그, 말장난,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언어유희에서는, 규칙을 깨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놀이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규칙을 잘 알아야 규칙을 깨는 것도 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말놀이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아이들과 말놀이를 할 때에는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정해진 규칙만 고집할 게 아니라 때로는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음 법칙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철자를 소리 나는 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앞 글자의 종성을 뒷 글자의 초성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받침이 있다는 걸 아예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규칙을 수정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본격적인 말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이들과 말놀이를 하다가. 다음 내용과 마주치면 바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나 부모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아이들도 잘 알게 된, 회문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회 방영분의 한 장면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로 시작하는 대사, 잘 아시죠! 아이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발음인 단어 또는 문장을 회문(回文, palindrome)이라고 합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등이 그 예입니다. 문장으로도 가능합니다. ‘다시 합시다’, ‘아 좋다 좋아’ 등은 거꾸로 읽어도 같은 발음입니다. 소주 도매상이라면 ‘소주 만 병만 주소’ (제가 어렸을 때 들은, 오래된 문장이라 죄송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떠오르는 회문을 모두 적은 거라, 유아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도 있습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동별, 역삼역, 아시아, 트로트, 기름기, 기본기, 마그마, 별의별, 부익부, 오디오, 인기인, 일요일, 일주일, 전초전, 호불호, 합집합, 다시 합시다, 아 좋다 좋아      


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같은 글자를 합쳐서 만든 의성어와 의태어도 있습니다. 같은 글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도 당연히 같은 발음이 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깔깔, 깜깜, 껄껄, 꼭꼭, 땡땡, 똑똑, 멍멍, 빵빵, 살살, 솔솔, 술술, 심심, 쌩쌩, 쏙쏙, 쑥쑥, 왈왈, 점점, 졸졸, 종종, 짹짹, 쨍쨍, 총총, 캄캄, 콩콩, 쾅쾅, 쿨쿨, 쿵쿵, 텅텅, 톡톡, 하하, 호호, 활활, 훌훌, 훨훨, 휘휘, 휭휭     


다음은 어구전철(애너그램, anagram)입니다. 어구전철은 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낱글자의 순서를 바꾸어도 의미가 통하는 단어가 되는 경우입니다. 명칭은 어려워 보이지만 예를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의 ‘박’ 자와 ‘수’ 자 순서를 바꾸면 ‘수박’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은 어구전철이 아닙니다. 순서를 바꿔서 만든 ‘음처’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왕’이 ‘왕국’으로, ‘굴비’는 ‘비굴’이 되는 건, 어구전철의 또 다른 예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역시, 떠오르는 어구전철을 모두 적은 거라, 유아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도 있습니다.)     


감상, 개미, 건강, 과일, 국왕, 굴비, 기사, 기차, 대중, 도보, 모양, 모자, 물건, 미음, 박수, 사전, 선수, 성인, 소금, 소중, 수분, 습관, 습기, 신발, 아기, 어부, 연주, 원시, 의사, 이사, 일생, 자주, 장남, 장미, 전보, 전화, 제복, 주사, 참새, 치마, 평화, 포기, 필수, 해독, 가나, 순조, 문전박대, 감자국, 남해, 해남, 군주, 비누, 교수, 요소, 이해, 사서, 사건, 용사, 학문, 구불

        

영화, ‘애놀라 홈즈’의 한 장면 (두 장면?)


영화, ‘애놀라 홈즈’의 주인공은 “Ellie House Man”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가 “Lime House Lane”이라는 도로명을 찾아냅니다. 한편 영화,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도, “O, draconian devil!”에 숨겨진 “Leonardo da Vinci”를 찾아냅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의 한 장면

   

영어의 경우, (당연히 어렵긴 하지만 우리말보다는) 쉽게 어구전철 수수께끼를 만들거나 풀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도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분리하여 어구전철 놀이를 하는 게 가능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 “널 사랑해 끈다.”라고 어구전철 수수께끼를 내고 “너를 생각한다(헌옷수거함).”라는 답을 맞히는 것이 가능하긴 합니다. (물론 어구전철에서는 답이 하나만 있진 않습니다.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어보다는 만들거나 풀기가 훨씬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낱글자의 순서를 바꾸는 예만 들었습니다.

     

회문과 어구전철에 대해 살펴보긴 했습니다만, 개별 놀이로 진행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말놀이를 할 때 회문과 어구전철의 예가 나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소개했습니다.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2006년, 론 하워드 감독)

애놀라 홈즈 (Enola Holmes, 2020년,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드라마 수, 목 16부작, 2022.6.29~8.18) (1회 2022.6.29. 방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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