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연철 Feb 22. 2024

이렇게 다치면 아플까요? 안 아플까요?

이야기에 경험을 담는 건 어떤가요? (3)

다음 사진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연구에서 사용한 사진입니다.


<출처: Jackson et al., 2005: 773쪽>


피험자에게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사진을 볼 때 감정이입을 잘하는지 알아보는 연구였습니다. 논문에서 캡처한 사진이라 화질이 조금 떨어지긴 합니다만, 왼쪽은 감각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그렇지 않은 사진입니다.


이런 경험은 많으실 것 같습니다. 문틈에 손가락, 발가락을 끼인 경험, 칼에 베인 경험... 많으시죠! 감정이입을 잘하시는 분은 사진만 보고도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경험한다는 건... 정말 겪어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 뻔한 말인 데다, 동어반복이라고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감정이입에 있어서, 감정공유에 있어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문틈에 손가락, 발가락을 끼인 경험이 없다면, 위 사진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 있고,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이 많아야 공감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공감을 잘하는 아이로 기르고 싶다면 ‘유의미한’ 경험을 쌓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경험’에는 항상 감각이 관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 직장, 교실을 떠올리면 어떤 소리가 들리시나요? 어떤 냄새가 나나요? 상상하실 수 있죠! 우리 기억에는 항상 오감각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경험에는! 당연히 항상 감각적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사고’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히 감각을 중심으로 꾸려집니다. 듀이 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최상의 사고적 비상으로 도달한 적이 있거나, 어떤 예리한 통찰로 꿰뚫어 본 적이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감각의 중심이자 핵심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Dewey, 2003: 59쪽).


내친김에 듀이 님 이야기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감각적인 직접 경험은 본래-즉, 추상적으로-‘관념적’, ‘정신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의미와 가치를 자기 안에 흡수하지만, 이 흡수력은 무한하다. (Dewey, 2003: 58쪽).


그런데 그 ‘감각적 직접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 감각적 정보는, 결코 객관적인 정보가 아닙니다. 감각기관에서 수용하는 오감각의 정보는 모두 동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력된 정보가 아무리 객관적이고 동일한 정보라 하더라도, 우리들은 같은 정보에 대해 저마라 다른 해석을 합니다.


특정 장소나 특정 상황에서의 후각적, 시각적, 청각적 정보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냄새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역질 나는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청국장 냄새가 그렇죠! 저에게는 그리운 냄새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각적 정보에 대한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적힌 경험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오감각은 몸이 아니라 문화로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체이플 힐이라는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가기 전에 그곳에 살던 선배에게 어떤 옷을 준비해 가면 좋을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리털 점퍼를 꼭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알았다고 하고 나서 그곳 기온을 찾아보니까 겨울에도 영상 3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오리털 점퍼는 왜 가져오라고 하지?’


첫해는 점퍼를 입지 않아도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해부터는 점퍼를 입지 않으면 정말 추웠습니다. 모두 점퍼를 입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온은 항상 영상이었습니다. 오감은 몸으로 느끼는 것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습과 문화에 의해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Dewey, J. (2003). 경험으로서의 예술. (이재언 역). 서울: 책세상.

Jackson, P. L., Meltzoff, A. N., & Decety, J.(2005) How do we perceive the pain of others? A window into the neural processes involved in empathy. NeuroImage, 24(3), 771–779.


이전 15화 어제는 KTX, 오늘은 SRT, 내일은 IT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