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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27. 2024

코딱지 파보셨나요?

이야기에 경험을 담는 건 어떤가요? (8)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겪음은 경험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간접경험도 느낌의 정도가 심하면 직접 경험보다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은 경험은 공감의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똑 부러진 립스틱,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난 팩트, 깨져버린 아이섀도.


그래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그러니 망가진 화장품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꼭 공감해야만 한다면,  제 물건 가운데 하나가 손상되었던 기억을 억지로 대입해야만 합니다. 경험이 없다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공감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런 건 어떠신가요? 누워서 핸드폰 보다가 팔이 저려서 엎드려 핸드폰 보다가, 갑자기 팔꿈치가 아파서 다시 옆으로 누워 핸드폰 해보기! 이런 경험은 다들 있으시죠!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은 있으신가요?


코딱지 (서울 성일 6년 최원식)


코딱지는 파도 파도 계속 나온다. 

코딱지를 파다 보면 코딱지 놓치게 된다. 

그때는 코딱지가 콧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숨을 못 쉬게 하는 코딱지. 

찐덕찐덕한 코딱지는 참으로 갖고 놀기에 좋다. 

코딱지를 파면 코딱지를 어따 놓을지 몰라 부끄러워 몰래 가구 밑에 쳐넣는다. 

코딱지는 날 부끄럽게 만드는 괴물이다. (88.8.29) (이오덕, 1993: 53쪽)


경험은 공감의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공감하는 아이로 기르고 싶다면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경험은 이야기 속에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야기를 하면 경험이 살아나고, 경험이 살아나면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그럼 공감을 잘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경험입니다. 경험이 있어야 공감도 있고, 경험이 있어야 이야기도 풍성해집니다. 이야기는 또다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경험, 그리고 미래의 경험까지 풍요로워집니다. 


다음은,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입니다. 경험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걸 매우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대겠지.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물론 너는 미켈란젤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의 걸작품이며, 정치적 야심이며, 교황과의 관계, 심지어 그의 성적 특성에 대해서까지도. 하지만 그가 천정화를 그린 시스티나성당의 향기가 어떤지 너는 아니? 사랑에 관해 물으면 넌 멋진 사랑의 시 한 구절까지 읊조리면서 답해주겠지만, 한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절망하면서 쾌락뿐 아니라 그 아픔까지 뼛속 깊이 느껴본 적은 없을 거야.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 마당. 파주: 지식산업사.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년, 구스반 산트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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