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문 정리와 함께 창작노트에 메모할 것들
~ 주제문 정리와 함께 창작노트에 메모할 것들
작가에게 창작 노트란 반드시 있어야할 물건이다.
쓸 거리가 떠올라 그대로 써 내려간 원고를 최종 완성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는 작가가 될 자질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초고란 내리닫이로 쓰는 게 좋다. 떠오른 것을 쓰기 시작해서 하려는 이야기가 다 나왔다고 느껴지면 끝낸다. 그것이 초고다. 한 줄 쓰고 아닌 것 같아서 지우고, 다시 한 문단 쓰고 지우고 하다보니 글의 첫머리가 40번 이상 썼다는 이도 만난 적 있다. 그러면 안 된다. 되풀이해서 같은 걸 쓰다 보면 처음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의 말하려는 의욕이 꺾일 수도 있고 이야기도 생기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10분이 걸리든 한 시간이 걸리든 시작하면 끝까지 내달리겠다고 결심하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건 그 생각에 강력한 에너지가 들어있다는 뜻인데, 글 속에 그런 힘이 담기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초고는 일종의 free writing이 된다. 쓰면서 적당한 단어나 표현, 글 전체의 구성 따위를 고민하느라고 머뭇대지 않는다. 그냥 쓴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동그라미 표시해놓고 그냥 나아간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거야, 눈치보지 않고 쏟아내는 자세여야 한다.
발상의 메모랄가, 초고랄까 하는 걸 놓고 구상하고 다듬고 고쳐쓰는 과정이 본격적인 집필인 셈인데, 산문쓰기는 궁리의 대부분을 창작노트 위에다 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작가라면 반드시 창작노트를 갖고 있다. 거창하면 거창한 대로 노트(언제 어디나 갖고다닌다는 면에서는 좀 불편하다),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수첩(메모하고 낙서하다 보면 지면의 크기 때문에 사고가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기분이 든다), 어디든 쓰면서 작품을 구상하곤 한다.
서양의 인상 깊었던 작가는 카뮈였다. 사후에 발간된 그의 작가일기를 보면 소설 이방인의 디테일을 어디서 어떻게 수집했는지 세세하게 짚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서머싯 모옴도 빠뜨릴 수 없다. 소설로 쓰지 않은 가십 모음이 따로 있었고 그의 위트있는 단편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풍문으로는 그가 건강이 나빠져 저녁마다 동네 펍에 가서 가십을 모을 수 없게 되자 대신 가서 가십을 수집해줄 비서를 고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쓴 마그리트 유르스나르가 있다. 소설 뒤에 작가노트를 붙여서 그 책을 출간했는데, 소설도 깊은 감동을 주었지만 작가 노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그 소설의 발상을 얻어 발전시켜 나간 긴 과정, 이런저런 디테일들을 얻고 조사한 경위, 소설을 쓰면서 고민했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어 좋았었다. 그 작가노트의 첫 구절 “마흔이 되기 전에는 쓰지 말아야할 소설이 있는 법이다.”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문단의 유명한 일화는 시인 김수영의 담뱃갑 소동일 것이다. 따로 수첩이나 창작노트 없이 담뱃갑에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는데, 부인이 빈 담뱃갑을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려버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종이쪽이나 포스트잇 등 낱장 종이에 메모하면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무튼 떠오른 것을 죽 써놓은 다음 창작노트에 낙서하면서 궁리하고 다듬자. 거듭 말하지만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생각을 머리가 아닌 손으로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창작노트에 써야할 내용으로 앞에서 3 가지를 들었다.
첫째, 주제문이다. 주제는 소재를 선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며, 나는 초점이라고도 한다. 또 제목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고, 작가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그걸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때까지 요약한다.
둘째, 소재이다. 내가 다루려는 대상이나 현상을 메모한다.
셋째, 제목이다. 주제나 소재를 제목으로 내놓지 않아야 한다. 제목에서 내용이 드러나면 독자는 글을 읽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기분이 들어 읽을 호기심을 잃어버린다. 또 신비주의 전략으로 전혀 엉뚱한 말을 제목으로 붙이면 독자는 글을 읽고 난 뒤 기대한 내용이 아니라서 속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제목은 미니스커트 같은 것이다. 다 보여도 안 되고 아주 안 보여도 안 된다.
넷째, 글을 쓰려는 목적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목적이 다르면 글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식이나 정보를 알리는 게 목적이다. 설명문 위주의 글이 될 것이다. 이때는 독자가 따라오기 쉽도록 차례대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꺼번에 다 알려주겠다는 성급함을 누르고 순서를 정해서 안내하듯이 차례대로 내용을 말해야 한다.
작가인 내게는 익숙하고 명백한 사실도 독자의 입장에선 처음이고 낯설다는 점을 명심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쓰도록 한다. 작가는 자상하고 친절해야 한다.
독자를 설득하려 한다. 그렇다면 논설문이 될 터이고 글 속에서 인과관계가 상식수준에서 타당하게 보이도록 엮어야 한다. 허나 논설문이라고 해서 사실 문장보다 의견 문장이 많으면 반감이 생기기 쉽다.
행동을 촉구하겠다, 그렇다면 동사 서술어가 많이 들어간 글이 될 것이다.
위의 3가지 목적이라면 일상에세이와 달리 약간의 과시가 필요하다. 작가가 독자보다는 세상이치를 더 잘 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단어나 지식을 약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일상에세이는 그러면 안 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목적이다. 물 스미듯 젖어들게 해야 한다. 생각할 여지 없이 말이 흘러야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서사문장과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묘사문장이 주를 이루게 된다. 쉬운 말(일상어)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이 되도록 쓴다. 갑자기 낯설거나 어려운(가방끈이 길어야 알 수 있는, 사전을 찾아보게 되는) 말이 튀어나오면 맥이 끊어져 감동을 방해하게 된다. 일상적인 말을 구체적으로 사용하고 문장이 짧을수록 힘이 있다.
다섯째, 읽는이를 구체적으로 써본다. 내 글을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가 실제로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을 창작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다. 그리고 그의 성별, 학력, 관심사, 취향 등을 쓴다.
초보자일수록 글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말할 때와 달리 글을 쓸 때는 자기도 모르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글과 달리 제작비용이 많이 드는 영화나 드라마는 구체적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가늠해본다. 요즘 TV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 맞춰 만든다는 설이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웃기는 대목에선 웃기는 대목이라며 하하하라든지 하고 커다랗게 자막을 넣어 표시까지 한다. 내 신인시절 출판사 사장들은 독자를 ‘고졸, 20대 초반, 사무직 여성’으로 생각하고 소설을 써야 팔린다는 충고를 해줬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설이 잘 팔린다고 했다. 지금은 3,40대 여성이 주요독자라는 말이 들린다.
세계에서 소설을 가장 많이 팔았다는 스티븐 킹은 글 잘 쓰는 비법 중 하나로 소설을 쓸 때면 항상 아내가 읽는다고 상상한다고 했다. 이런 단어를 쓰면 그녀가 쉽게 알까,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그녀가 바로 이해할까, 등등. 구체적으로 읽는이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썼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글이 어렵다 싶으면 실제로 그 사람에게 내 글을 읽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스티븐 킹이 그렇듯 물 흐르듯, 거침없이 읽히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읽을 사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건 소재를 다루는 관점에도 큰 영향을 준다. 같은 이야기라도 사람에 따라 관심갖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뒷받침하기 위해 늘어놓을 디테일도 전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