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이로 하여금 의미를 느끼게 하겠다며 노골적으로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서술하는 것은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느끼게 한다는 에세이의 목적에 어긋난다. 의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말하게 되면 (진술문장이 많으면) 그 글은 가르치려 든다, 의견을 강요한다는 인상을 주어 읽는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어렵다. 잔소리가 심한 엄마의 말은 자녀들이 귓등으로 흘려듣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의미는 은연중에 느껴져야 한다.
그러려면 초점맞추기를 의식하면서 쓰면 된다.
옛 시절 필름 카메라는 수동이었다. 찍고 싶은 대상에게 일일이 초점을 맞춰야 했다. 지금이야 클릭 한 번으로 휴대전화에선 3대의 카메라가 대상을 동시에 찍어 자동으로 조합, 보정하여 한 컷의 사진을 보여주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 사진찍기가 서툰 사람들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무엇을 찍었는지 알기 어려운, 초점 흐린 사진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곤 했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대상인 인물은 흐릿해지고, 의도하지 않았던 조연이나 배경이 더 도드라져 눈에 들어오곤 했던 것이다.
수채화를 배우러 갔을 때도 처음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화병에 꽂힌 장미 그리기가 키워드였는데, 주변 사물 하나하나도 힘주어 그리다 보니, 나중에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됐었다.
강의시간에 거칠긴 하지만 이런 예를 들곤 한다.
봄날, 공원에 갔다. 공원에는 여러 현상(나는 보통 세부요소, 디테일이라고 부른다)이 있다. 맑게 갠 하늘, 구름, 바람, 화창한 햇살, 활짝 핀 꽃, 잔디밭, 소풍나온 가족, 손잡고 거니는 연인,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 나무 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두 남자, 벤치에 누워 낮잠자는 청년, 걸인……
공원의 이런 세부 요소를 잘 관찰한 다음 공원에 갔다온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A의 글은 이렇다. 공원에 갔다. 훈훈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있었다. 화창한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쬐고 잔디밭에는 소풍나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 핀 오솔길을 연인들이 다정하게 거닐며 아이들 웃음소리가 풍선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B의 글은 이렇다. 공원에 갔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고, 황사가 숨을 막았다. 공원 바닥엔 까만 비닐봉지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눈을 찌르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은 노인 두 명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벤치에는 실업자인 듯한 청년이 길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를 때렸고, 걸인은 발을 질질 끌며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구걸하고 있었다.
같은 공원에 대해 썼지만 글을 보면 A의 공원과 B의 공원은 다른 것 같다. 둘 중 A는 맞고 B는 잘못 썼다고 하지 않는다. 작가가 본대로 느낀대로 썼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예술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가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는 공원을 시민들의 휴식처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견해를 표현했고, B는 공원이 루저들의 집합소라는 견해를 보여주었다. 공원에는 A가 말한 것도 B가 말한 것도 다 있었다. 그 중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세부 요소들을 전면에 부각해서(도드라지게) 썼기 때문에 글이 달라진 것이다.
글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관점에 따른 편집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이라고 착각하는 나(에고)의 편집이 있을 뿐이라고도 한다.
자, 글을 쓰겠다면 가장 먼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현상 혹은 대상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수집한 세부 요소들 중에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수집한 세부 요소를 아무렇게나 마구 늘어놓으면 말하려는 바가 드러나지 않아 지루해진다. 왜 그 글을 읽어야 하느냐고 반문하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자각해보는 것, 글의 의미를 강조해보는 것, 이것을 나는 초점 맞추기라고 부른다. 하고자 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정리해보자. 막연한 느낌이나 머릿속 생각으로 준비됐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오랫동안 강의를 하다보니 온갖 질문을 받게 되는데, 종종 글을 시작은 했는데 더 어떻게 쓸지 막연하다, 진전이 안된다, 앞부분을 쓰고 중단됐다는 고민이 있다.
그럴 때는 창작노트에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다시 말해 글의 주제를 적어보라고 한다. 처음엔 이 말 저 말, 횡설수설, 여러 문장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걸 한 문장이 될 때까지 줄여본다. 의외로 쉽지않을 것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될 때까지 말을 압축하고 압축해가는 과정은 자신의 생각이 명료해질 때까지 정리하는 과정이다. 머릿속으로만 해도 되지만 대충이 되기 쉬우므로 종이 위에다 글자로 아웃소싱을 한다. 눈과 생각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생각은 명료해진다.
그렇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을 때 글 쓸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의 위밍업으로 창작노트에 써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가 주제문장이다. 주제란 크게는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이겠지만 작게는 표현 대상이 되는 소재를 어떤 견해를 가지고 해석하는가가 된다. 초점이 선명하면 글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하다면 표현하려는 대상을 대충이라도 정리해보면 좋다.
세 번째, 제목도 미리 정해보면(다 쓴 뒤 다른 제목으로 바꿀지라도) 초점이 더욱 선명해지는 이익이 있다.
부연하자면 글에서 주제의 의미는 인생에 대한 과장된 감동에서 생긴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공원을 시민의 휴식처라고 여길까, 아닐까? 내 생각이 맞나, 틀리나? 이런 고민은 쓸데없다. 산술적 평균에 딱 맞는 견해란 없다. 다들 자기 입맛대로, 자기 처지대로, 느끼고 생각한다. 그게 중요하다. 그리고 독자들은 평균치의 상식 같은 뻔한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다. 그들이 흥미를 느끼고 알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