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전의 머뭇거림, 내적저항
준비가 다 됐는데도 시작이 어렵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원고마감이 다가올 때면 종종 그러하다. 심하면 머릿속에 안개가 꽉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집필엔 전혀 도움 안 되는 딴짓, 쓰지도 않는 연필을 깎는달까 청소랄까 등등으로 시간만 흘려 보내며 초조했던 적이 많다. 마치 사이드브레이크를 바짝 당긴 채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매연만 뿜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 슬하에선 그런 상태일 때 ‘너도 작가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쓰기 싫으면 관두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정말로 집필을 포기하고 싶은 건 또 아니었다. 그럴 때면 난 ‘작가 될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는데 공연히 작가 한답시고 나대고 있다’는 자괴감에 푹 절여지곤 했었다.
가끔 토마스 만의 소설 <트리스탄>의 한 대목이 떠오르곤 했다.
…할 말이 넘친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달랐다. 자신이 얼마나 허황된 근거에서 그렇게 주장했는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사실은 말이 도무지 넘쳐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글 쓰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치고는 한심해 보일 정도로 글은 더디게 진척되었다. 그런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면 작가란 글쓰기를 다른 누구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두 손가락 끝으로 뺨에 자란 솜털 가운데 하나를 쥐고 15분 가량 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허공만 쳐다보았고, 글은 단 한 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고는 두어 마디 우아한 말을 쓰고 나서 다시 말이 막혔다. 한편으로 그렇게 써 내려간 문장을 보면, 내용상으로는 이상하고 미심쩍을 뿐 아니라 종종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치 일필휘지로 활달하게 써 내려간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 토마스 만>
작가란 글쓰기를 누구보다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토마스 만의 단어는 조금은 위로가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집필에 돌입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나를 변하게 하지는 못했다.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서성거리면서 시간을 재고, 그러다 어찌어찌 시작해서 집필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졌다.
이런 시간 낭비의 집필 패턴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고, 마음 한켠엔 항상 ‘작가 자질도 없으면서 작가인 척 사기 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숨어있었다. 자괴감은 집필 시작을 머뭇댈수록 점점 자라났고, 그렇게 커진 자괴감 때문에 집필에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에게도 이런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다.
해방은 우연히 찾아왔다.
데뷔 3, 4년 차쯤 됐을 때 문단의 원로이신 소설가를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분은 지나가는 말처럼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왜 원고마감만 닥치면 옷장정리를 시작하나 몰라요. 가뜩이나 시간이 모자라서 절절매는데 말이죠.”
있는 옷 없는 옷 할 것 없이 마구 꺼내놓아 방안 한가득 어질러져 있는 꼴을 보면 따님은 ‘엄마, 또 원고 마감이 다가왔나 봐.’ 할 정도라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억겁으로 쌓인 자괴감이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 해방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훗날 강의를 다니면서 습작생들을 대하다 보니 그런 현상은 꽤나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소재인데, 구성도 제대로 했는데, 취재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자신있게 집필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의구심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곤 했다.
융 심리학을 배운 후 거기에다 내적 저항이라는 말을 붙여보니 설명하기가 쉬워졌다.
내적저항은 누구나 겪게 마련인 당연한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심리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다면 일상생활에선 마음은 밖으로 흘러나간다. 심리 에너지의 확산이다. 반대로 안으로 흘러들어야 할 때가 있다. 명상을 한다거나 등등. 글쓰기도 에너지가 안으로 향해야 (수렴) 가능한 작업이다. 확산되던 에너지가 안으로 수렴되는, 방향의 전환은 갑작스럽게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매끄럽기 어렵다. 일종의 문턱 넘기 같은 장애가 생기게 된다.
융이 이런 사실을 발견한 것은 아프리카 원시 부족을 관찰했을 때라고 한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음날 이웃 부족과 전쟁을 해야 한다, 널널하게 늘어져 지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맹렬한 용사로 돌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전날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광란의 파티 같은 걸 열어 심리 에너지를 평화모드에서 전쟁모드로 바꾸더라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축제 전날 밤,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제례가 생긴 것도 같은 기원이라고 한다.
집필모드로 들어가기 어려워하는 수강생들이 많을 땐 나는 따로 시간을 내어 내적 저항을 설명해준다. 자신이 지금 겪고있는 심리상태가 내적 저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심리문제가 대개 그렇듯, 부정하거나 억압하면 문제가 확대된다. 내적저항도 부정할수록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이다. 일단 자신이 내적 저항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들어보면 내적저항은 사소한 불평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내 방이 어질러져 있어 시작을 못하는 거야.
아라비카 원두로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날 거 같은데.
샤워를 해야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어.
냉장고에 있는 요거트가 유통기한을 넘길 거 같아. 등등
이럴 땐 청소를 하든 커피를 사와서 끓이든 내적저항인 줄 알면서 한다. 어떤 딴짓을 하든 집필의 전초전이구나 하고 자신을 지켜보는 자세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딴짓을 하더라도 집필모드로 자신을 돌려놓을 수 있다.
또 다른 내적저항으론 자신이 붙들고 있는 소재나 주제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말고 저렇게 써야 해.
이 이야기보다 저 이야기를 쓰는 게 나았어. 등등
그럴 때 아이디어가 이것저것 떠오른다고 떠오르는 대로 좇아다니면 안된다. 그러다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곁가지로 새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일단 자신이 내적저항을 겪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메[모한다.(이 때문에도 옆엔 언제나 창작노트가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렇게 메모한 것이 많이 있다면 쓸거리를 풍부하게 지닌 작가일 수 있으니 참 좋은 일이다. 하던 이야기를 다 하고 다른 아이디어로 가야 한다는 걸 명심한다.
괜히 서성거리며 창밖을 엿보든, 집안을 반짝반짝 청소를 하든, 옷장정리를 시작하든,
“문턱넘기에 에너지가 좀 들어가네!”
그렇게 자신을 다독거린다.
집필 전에 어떤 기분이 들든 그걸 자괴감과 연결시켜 자기 비판에 시달리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작가될 운명으로 타고났구나 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원로작가도 겪는 현상이라는 사실이 집필 전 머뭇거림에 힘을 빼고있는 초심자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