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를 끌어내고 발전시키는 법 1
책상 앞에 앉자마자, 워드를 켜자마자, 글을 줄줄 쓰게 되는 일은 드물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끌어내기 위해서든, 첩첩한 구상을 가다듬기 위해서든, 길고 짧은 머뭇거림은 자주 일어난다.
프리라이팅은 이와 반대되는 일이다. 그냥 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쏟아낸다는 게 특징인데, 빠르고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것을 가리킨다.
일상에세이 강좌 첫머리에서 ‘초고는 프리라이팅으로 씁니다’라고 강조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한다.
따져보면 글쓰기가 아닌 말할 때는, 우리는 늘 프리라이팅을 하고 있다. 친구를 만날 때 미리 궁리하여 무엇무엇을 어떻게 어떻게 말해야지, 작정을 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상대의 얼굴을 보면 그냥 말문이 터진다. 이야깃거리가 바닥나는 일도 드물다. 대부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말이 이어진다. 어떨 때는 서로 말하고 싶어서 상대의 말을 가로채지고 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게만 느껴지면 믿을만한 친구를 만나서 쓸 내용을 이야기해보라는 처방도 준다. 물론 찻값이나 식사비는 내가 내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까.
나는 이 처방을 글쓰기가 전혀 처음인 사람들이 모인 대중강연에서 해보라고 실습시키기도 한다. 글쓰기가 정말 엄두가 안나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면 이를 따라 해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A4 용지 한 장씩 꺼낸다. 가운데다 자기 이름을 큼직하게 쓴다. 그런 다음 네 귀퉁이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 가장 좋아하는 장소,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각각 쓴다.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한 가지만 써야 한다. 옆 사람에게 그 종이를 보여주면서 자기 이름부터 말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자기소개서 쓰기 워밍업이 된다.
나는 홍길순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반지입니다. 좋아하는 이유와 그 물건과 관련된 사연을 밝힌다. 두 번째 좋아하는 장소를 말한다. 나의 집 입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내 방 입니다, 더 들어가 내 방의 책상 입니다. 책상은 어떻게 생겼고 거기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할 때 왜 어떻게 흐뭇한지 말한다…… 세 번째, 네 번째 순서로 말해간다. 내 소개가 다 끝났으면 짝의 이야기도 듣는다. 서로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말을 주고받고 나면 자신이 한 이야기를 글로 그대로 옮긴다. 다 썼으면 서로의 글을 교환하여 읽어본다. 그리고 거기다 아까 들은 이야기에서 빠졌거나 더 추가한 말이 있다면 표시해서 돌려준다.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면 당황해서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이처럼 말하기를 앞세워 캐주얼하게 진행하면 쓰지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내키는 대로 말하듯 쓰겠다고 작정해도 손이 잘 나가지 않을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그렇다. 말은 허공으로 날아가 사라지는데, 글자는 시각적으로 남으니 제대로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다.
재능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수십 년 전에 본 만화책을 최근 우연히 또 보게 되었다. 그 책 주인공은 서로의 우열을 겨루는 맞수(라이벌)에게 단언한다.
“재능은 자신감이야.”
자신감이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자신감을 기르는 방법이 바로 프리라이팅이다. 자기를 믿어서 프리라이팅을 하는 게 아니라 프리라이팅을 자꾸 하다보면 자신을 믿게 된다.
어찌해도 자신감이 안 생긴다는 이들에게 나는 영화관에는 가봤느냐고 묻는다. 물론 안 가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관에 들어가면서 이런 걱정을 하나요? 내 눈이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내 귀가 대사나 음악을 잘 들을 수 있을까? 안 하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의자에 툭 던져놓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죠. 자신을 믿는다는 건 그런 거예요. 그냥 하는 거예요.”
프리라이팅이 그런 것이다. 초고는 그렇게 써야 한다. 떠오르는 대로 그냥. 세상일이 그렇듯 자꾸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다.
초고를 프리라이팅으로 쓰라는 건 까닭이 있다.
말에는 말의 힘, 에너지가 있다. 말도 그렇지만 어쩌면 세상사 모두가 기세(氣勢) 겨루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문득 떠올랐다는 건 거기에는 다른 이야기에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가 담겨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에너지로 기세 좋게 밀고나가야 한다. 물론 나중에 수정과 퇴고를 거치며 깎고 다듬게 되더라도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오도록 한다. 프리라이팅은 그 연습이다. 그래야 쓸 게 없다든지,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망설임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
프리라이팅 방법은 이렇다.
① 타이머로 시간을 설정한다. 20분? 30분? 내 마음대로이다.
②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쓰겠다고 결심한다. 시작할 때 결심을 하고 안 하고에 따라 결과가 달라서 놀랄 것이다.
③ 생각보다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④ 이건 아닌데, 싶어도 그냥 계속 쓴다.
⑤ 단어나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괄호나 동그라미를 치고 계속 나아간다.
⑥ 다 썼다는 느낌이 들면 멈춘다. 혹은 타이머가 울리면 멈춘다.
프리라이팅의 예로 예전에 유행했던 모닝페이지 쓰기를 들 수 있다.
시작에 얽힌 사연과 놀라운 효과는 생략하자. 인터넷을 뒤져보면 많이 나올 것이다.
다음 3가지 조건을 엄수해야 모닝페이지 쓰기가 된다.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30분 동안 3쪽을 쓴다. 해보면 알겠지만 3쪽을 다 메우려면 30분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다. 30분 동안 3쪽을 메우는 것이므로 손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는 검열관의 잔소리는 내려놓아야 한다.
아침에 여유가 없다면 한가할 때, 아무 시간에나 할 수도 있다. 이를 나는 자유연상 글쓰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커피숍 같은 곳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 시간이 남는다면 수첩이나 노트를 펼치고 아무거나 쓰는 것이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면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구를 쓰고 잠시 기다려본다. 뭐든 떠오르면 무작정 쓴다.
아니면 어떤 작가처럼 커피숍 풍경을 글로 그려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문과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고, 글을 잘 쓴다는 평판을 듣는다. 비결을 묻자 그는 청년 시절 글쓰기를 이렇게 연습했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사람을 기다려야 했을 때 수첩, 하다못해 냅킨이라도 놓고 글을 쓰곤 했다고. 커피숍 풍경,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며 행동 등 뭐든지 끄적거렸다.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쓴 종이를 잘 간직하고 집으로 갔고, 밤마다 그 글을 잘 정서해본 다음에 잤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필력이 점점 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