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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무 Jan 14. 2021

또 잠꼬대를 했다

크리스피 후라이드 치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침대에 누운 채로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난밤에 잠꼬대를 했단다. 자다가 갑자기 "크리스피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했다는 거다. 당연히 내 기억에 없는 일이다. 특별히 치킨이 당기지도 않았는데 왜 저런 잠꼬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김밥 떡볶이 순대"라고 했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맛있는 치킨을 먹은 지 좀 되긴 했다.




독일에 이민 온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에도 잠꼬대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아내는 아침부터 깔깔댔다.


"자기, 어제 자다가 독일어로 잠꼬대한 거 알아?"

"뭐? 내가? 몇 마디나 할 줄 안다고 독일어로 잠꼬대를 해?"

"자다가 갑자기 '당케!' 이러던데."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독일에 오자마자 한창 독일어를 배우느라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때였다. 회사에서 내가 참석하는 회의는 나를 배려해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내가 끼지 않는 모든 업무 관련 대화는 기본이 독일어였다. 업무 이메일도 독일어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하는 사적인 대화에서도 독일어를 사용할 때가 많아졌다. 동료들이 나 하나 때문에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미안해서 "독일어로 얘기해도 된다. 독일어를 배우는 중이다"라고 먼저 제안했다. 덕분에 점심시간마다 반강제로 독일어를 배우느라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꽤 오랫동안 독일어는 내게 백색 소음이었다. 업무 중 주변에서 동료들이 수다 떠는소리가 들려도 집중이 그렇게 잘 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어가 늘긴 늘었는지 백색 소음이 점점 독일어로 들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떠드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서기 시작했을 때쯤 베를린에 있는 미국 회사로 이직을 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는 데다가 새로 옮긴 베를린 오피스에는 외국인 직원이 많아서 독일어를 쓸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이제는 영어가 주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한 달쯤 전에는 영어로 잠꼬대를 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꿈에서 또 일을 했나 보다.


아내는 언어를 바꿔가며 잠꼬대를 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다음에는 내가 또 무슨 잠꼬대를 할지 기대하는 눈치다. 아내를 화나게 만들 잠꼬대는 하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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