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무 Mar 03. 2021

130년 된 독일 집의 층간소음

“독일은 층간소음 문제가 없니? 한국은 요즘 층간소음 때문에 난리야..” 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우리 부부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890년에 지어진 130년 된 알트바우*다. 당연히 층간소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들었는데, 마룻바닥에서는 여전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심지어 걸을 때마다 온 방이 흔들린다. 책상과 벽까지 마치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린다. 처음 집이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을 느꼈을 땐 그냥 기분 탓인가 싶었다. 책상에 물 잔을 올려두고, 수면에 일어나는 파동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기분 탓이 아니란 걸 알았다.


문제는 우리 집이 아니라 윗집에서 걸어 다녀도 그 진동이 우리 집까지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윗집에서 홈트레이닝이라도 하는 날에는 버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멀미가 나서 모니터를 쳐다볼 수가 없다. 이런 날에는 윗집에 올라가서 따지기보다는 잠깐 산책을 나갔다 오거나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쉰다. 옆집이나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티브이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아, 아랫집에서 파티를 하나 보네’, ‘오늘은 옆집에서 뉴스를 듣는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이런 생활 소음 정도는 익숙해져서 그냥 무시하고 만다.


이렇게 알트바우가 소음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은 의외로 크지 않다. 독일에는 나름대로 이웃 간 소음문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밤부터 아침까지, 식사시간, 일요일과 공휴일 등을 휴식시간(Ruhezeit)이라고 해서, 그 시간 동안에는 소음을 내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소음을 내면 경찰이 출동할 수 있고, 최고 몇백만 원의 벌금을 낼 수도 있다. 또한 민원이 심해지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쫓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이전에 살던 집에서 배웠다. 독일에 온 지 두 달 만이었고, 새집으로 이사한 지 이틀만이었다. 이케아에서 사 온 가구들을 조립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일요일에 신나게 망치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나서야 ’헉, 망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걱정했던 대로 문 앞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심지어 윗집의 윗집에 사시는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Deutsch? Englisch?”라고 화난 표정으로 물으시고는, 일요일에는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영어로 주의를 주셨다. 내가 명백히 잘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갔지만, 그 이후로 2년간 엘리베이터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칠 때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그 사건 이후로 독일에서는 휴식시간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휴식시간 동안에는 분리수거함에 빈병을 버리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다. 병끼리 부딪혀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이다. 대신 휴식시간 외에는 벽에 드릴로 구멍을 내든, 피아노를 치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이런 규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층간소음 문제로 인한 분쟁이 발생한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비슷한 문제들이 있는 법이다. 서로 더 배려하고 인내하면서 사이좋게 사는 게 가장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 여기도 층간소음 심해요. 그런데 익숙해진 건지, 견딜만하네요."




* 독일에서 집은 지어진 시기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1945년 2차 대전 이전에 지어진 집을 알트바우(Altbau)라고 하고, 그 이후에 지어진 집을 노이바우(Neubau)라고 한다. 독일어로 알트는 ‘old, 오래된’이라는 뜻이고, 노이는 ‘new, 새로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역사가 깊은 건물이 많은 독일에서는 1970년대에 지어진 집이 새집 취급을 받는다.

작가의 이전글 상남자가 되고 싶어도 패션은 1절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