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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niemo Aug 07. 2021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

임원들의 퇴직을 위한 마지막 콜래보레이션

박수칠 때 떠나라. 

드라마 <전원일기> 1회 제목


1980년 10월 시작한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의 첫 회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라’ 였습니다.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는 지혜의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죠. 물러날 때를 잘 아는 것 또한 리더의 역할이라지만, 그 동안 고생스럽게 쌓아온 명성, 역할, 권한과 모든 특전을 뒤로하고 멋지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을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라 하여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 한 바 있지요. 그런데 박수칠 때 호기롭게 떠나기가 말처럼 쉽다면, 그런 말이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 

드라마 <전원일기> 1088회, 마지막 회 제목


그로부터 22년 후, 이 드라마는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를 주제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이에요. 지금 이룬 성공으로 언제까지가 충분한 박수를 즐겨도 좋을 때인지를 아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한 글로벌 기업 CEO의 사례를 보면, 물러날 때를 알고 용기를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실 것 같습니다. 2018년 골드만삭스에서 퇴임한 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이 직원들에게 보낸 퇴직 메일이 한 때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36년 근속 기간과 12년 동안 CEO로서 재직한 시간에 대한 진솔한 심경이 잘 전해져서 오히려 친근한 마음이 듭니다.


“(중략) 나는 이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닥치니 많은 생각과 감정이 떠오릅니다.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습니다. 힘든 때가 오면 떠날 수 없고, 좋은 시절에는 떠나고 싶지 않게 됩니다. 오늘 저는 골드만삭스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중략) 이제 내 역할에서 물러서고자 합니다. 혹여 사람들이 내게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물어 온다면, 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입니다.’ 골드만삭스의 구성원들이 항상 우리들의 가장 차별적인 경쟁력이었습니다.” - 골드만삭스 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

출처: New York Times


그의 퇴직 메일을 읽으면서 제가 주목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스스로 퇴직의 시점과 소회를 밝혔습니다.

둘째, 후임자가 이어갈 모든 권한을 지지하며 구성원들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새로운 조직 수장의 역할과 소명을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투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기사를 읽으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왜냐하면 한 명의 경영진이 일선에서 물러나 후임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코 당사자 혼자의 결정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예의, 후임자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것들이 바탕에 있지 않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콜래보레이션인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한국기업들 중에서 이렇게 멋진 ritual을 치르고 떠나는 리더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리더들은 대부분 하루아침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 의해 결정된 한 순간으로 인해 도망치듯 회사를 떠납니다. 매해 12월이 되면 경질성 인사 발령이 소문처럼 돌다가 현실이 되고 가장 마지막에 통보받는 사람이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견뎌온 공과의 시간이 마치 한여름 오이를 양 손으로 꺾어 부러뜨릴 때 나는 소리처럼 ‘우지끈’하고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주는 일인지 회사는, 대기업 회장님은, 인사 담당자들은 잘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한 기업의 최고경영진들이 이렇게 ‘퇴직해 버리는’ 일은 남아있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자신들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에서 존경을 받아온 ‘성공한 임원’들이 퇴직 후에도 타인을 위한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멋지게 퇴직하고 새로운 일, 뉴업 New-UP(業)을 찾아가는 리더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 일은 퇴직을 앞둔 경영진과 회사가 함께 고민하고 합을 맞추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도록......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마지막 콜래보레이션을 기대합니다.


리더들의 퇴직플래너

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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