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줄 알았다.
고소했다.
고소하기도 한 게 달기도 했다.
달기도 한 게 쓴 맛도 있었다.
나의 입안에 있는 것은 다양한 맛을 냈다.
그 맛들은 즐거웠다.
가끔 입안에 있는 것이
나의 입안 곳곳을 찌르더라도 괜찮았다.
찔린 곳의 고통보다도
맛을 즐기는 게 더 즐거웠다.
맛을 오래 즐기기 위해
입안에 있는 것을 오랫동안 남겨두었다.
그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맛들이 남아있었고,
나는 남아있는 맛들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
입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머물던 맛들도 함께 사라졌다.
내가 오래도록 즐겨온 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맛이 느껴지지 않자 불안했다.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같은 맛을 찾아
입안 가득 무언가를 채웠다.
하지만 같은 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
같은 맛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맛을 찾는 입안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의 입은 더 이상 맛을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그 맛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맛을 기대하지 않자, 입안 구석에 거슬리는 게 느껴졌다.
거슬리는 걸 찾았다. ‘콩깍지’였다.
그제야, 내가 맛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글은 지인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콩깍지]라는 단어를 보내며, 이 단어에 대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지인은 아래와 같은 말을 추가로 전했다.
“배고파서 아몬드를 먹었는데, 먹을 때는 맛있다가 다 먹고나니 이에 낀 콩깍지가 거슬리네.”
[콩깍지]라는 단어가 정말 반가웠다 내가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곽재구 시인이 쓴 시 중 ‘콩깍지’에 대한 문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콩들은 밥으로 떡으로 갈 것이고,
콩깍지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 언저리로 갈 것이다.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
[콩깍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할 때, 모든 단점이 가려지고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는 상태. 하지만 이 단어는 단지 달콤한 상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옅어지거나, 혹은 관계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그때는 콩깍지가 씌어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순간도 있다.
나는 그런 감정의 흐름을 지인이 알려준대로 ‘맛’이라는 감각에 빗대어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눈이 아닌 입으로 큰 주제를 잡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입안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하자 그리움이나 후회, 혹은 고마움 같은 여운이 입안에 남은 풍미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풍미가 다 사라지고 나서야,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던 ‘콩깍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어쩌면 맛이 다 사라졌다고 느낄 때조차, 입안 한켠에 남아 있는 콩깍지는 옅게라도 그 맛을 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맛은 그리움이었을 수도 있고, 후회였을 수도 있다.
결국, 입안 구석에 남아 있던 콩깍지를 완전히 없애야만 그 감정도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이 글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