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전거를 처음 탔던 마음으로

My Life but Better: 두발자전거가 이끈 삶의 변화

by 전해리

두발자전거를 처음 탔던 마음으로

_ 두발자전거가 이끈 삶의 변화

__ My Life but Better

___ 둥글게 둥글게


나에게 두발자전거를 타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발자전거, 하물며 세발자전거야 어려울 게 없었다. 이미 안정과 균형이 잡혀 있으니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저 올라타서 발로 페달을 돌리면 될 일이었다. 발이 많은 자전거라면 아무개에게 잠시 빌려도 아무 문제없이 탈 수 있었다. 문제는 함께 어울려 노는 친구들이 세발자전거에서 졸업하면서 발생했다. 네발 자전거에서 세발자전거로 진급하는 건 매우 만만했으나, 세발자전거에서 발 하나를 더 떼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미리 다른 친구들의 두발자전거를 빌려 경험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발을 땅에서 떼는 순간 균형을 아예 잡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몇 번이고 시도해도 무리였다. 아무리 봐도 운동신경이 없다고 판단한 부모는 나의 세발자전거를 다른 어린 친구에게 줬고, 그 이후로 나는 자전거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가 없어도 어떻게든 두발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 기회는 내 기억과 느낌상 총 세 번도 안 되었다. 그중 기억나는 건 단 하나뿐이다. 외가와 어느 공원에 놀라 갔을 때였다. 운동 신경이 좋은 사촌 언니는 이미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뱅뱅 돌아다니고 있었다. 반면 나는 외삼촌께서 뒤를 잡아준 자전거 위에 위태롭게 올랐다. 외삼촌이 뒤에서 잡아준 자전거는 조금씩 지그재그를 그리며 나아가다가도 얼마 못 가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외삼촌이 손을 뗐지만 그 순간 가차없이 갸우뚱했다. 몇 번을 더 해도 실력이랄 것도 없는 실력은 좀처럼 늘 것 같은 기색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싫증과 실망이 커져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외삼촌은 그때마다 자전거를 일으키며 한 번만 더 해보자고 격려해 주셨다. 반복되는 실패에 자전거를 타는 당사자도 힘들고 지치는데 하물며 자전거를 잡아주는 외삼촌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외삼촌은 싫증 한 번 내지 않으셨을뿐더러 오히려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셨다.

“이번에는 진짜 될 것 같았어.”

“괜찮아. 한 번만 더 해보자. 할 수 있어.”

“삼촌이 몰래 손 놓았는데 잘 가더라고. 조금만 하면 이제 잡아줄 필요 없을 것 같아.”

감사하게도 삼촌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자전거를 잡아 주셨다. 그럼에도 끝은 왔다. 외삼촌은 허리 통증을 호소하시며 항복하셨다. 나는 외삼촌이 최선을 다해 주셨다는 걸 알았다. 다시 부탁드릴 엄두를 차마 못 낼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자전거의 무게를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넘어질까 두려워 몸이 굳은 채 힘을 잔뜩 주고 있다는 것을 자전거에 오를 때부터 현저히 느끼고 있었다. 그 부담은 앞으로 밀고,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뒤따랐을 터이다. 그러니 내 욕심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아 대여한 자전거를 반납했다. 삼촌의 부단한 배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발자전거를 홀로 탈 수 없는 상태였지만 아쉽진 않았다. 지금에야 하나 남은 이 경험마저 없었더라면 두발자전거를 아예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남들은 잘만 타는 두발자전거를 왜 나만 못 타는지 사실 아예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의 경우로 미루어 보았을 때, 무릎 상처가 없으면 두발자전거도 없었다. 몸에 상처 하나 안 나고 크는 아이는 없듯이 나도 그랬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살이 쓸리고, 뛰다가 넘어져 살이 까졌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자연스럽게 여기지 못했다. 무릎 상처가 싫었고, 그 상처로 인한 아픔이 두려웠다. 간혹 놀다가 인대가 늘어나거나 하는 이유로 깁스를 하고 나타난 친구를 보면 나는 기겁을 했다. 기껏해야 신나게 놀았을 뿐인데 사람은 왜 파상을 입어야 하나? 사람은 왜 쾌락의 대가로 상처를 자초해야 하나? 그렇다고 몸을 사리지 않은 건 딱히 아니었다. 다만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심성이 많은 것이었다. 딱 다치기 직전까지 논 셈이다. 옷이 물에 젖을 것 같은 곳에 가지 않았고, 자칫하다 떨어지면 큰일날 나무 위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때는 보호 장구를 꼭 착용하고, 킥보드를 타다 속도가 조절이 안 되면 얼른 내려 킥보드가 어딘가로 처박히는 걸 목도했다. 그러다 보니 다같이 놀아도 깨끗한 아이는 나밖에 없었고, 다들 두발자전거를 탈 때 못 타는 아이도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때는 이렇게 분석조차 못했다. 그저 속상했고, 무서웠다. 그냥 놀아도 저렇게 다치는 아이들이 많은데, 두발자전거 한번 타려다가 내가 저 아이들처럼 될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도 진전이 없으니 겁을 잔뜩 먹은 채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아이는 덕분에 더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도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른들 중 아무도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 가여운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는 법, 하다못해 요령이라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빠는 나에게 두발자전거를 가르쳐줄 위인이 아니었고, 엄마는 자전거 뒤를 잡아줄 힘이 없다고 했다. 다른 어른들은 ‘지금은 어려서 못 탈 수 있지만 나중에 크면은 다 알아서 타게 되어 있다’고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말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모든 어른들은 나를 보며 일제히 혀를 찼다.

“너는 어쩜 그리도 운동 신경이 없니.”

이 말을 듣고 자란 마음을 두고 나는 ‘두발자전거 마음’이라 부른다. 나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어서 동동거리는 마음, 남들은 두발자전거를 탈 때 혼자 앉아 있을 때의 마음, 두발자전거가 뭐라고 깔려 뭉개지는 마음. 그러므로 삼촌이 비록 어떤 방법이나 요령을 알려 주신 것도 아니고, 두발자전거를 확실히 뗄 때까지 확실하게 책임져 주신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삼촌께 평생 감사할 것이다. 물론 당일 내가 두발자전거를 혼자 힘으로 탈 수 있게 되었다면 엄청난 드라마였겠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대신 단 한 번도 못 할 것 같았지만 내가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아주 값진 날이었다. 나는 삼촌의 그러한 모습에서 ‘두발자전거 태도’를 발견했다. 두려움으로 한껏 무거워진 자전거 뒤를 기꺼이 잡아 주고,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무엇보다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마음이 ‘두발자전거 태도’다. 그리고 조심하는 것과 상관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도 덤이다.

학교 밖을 벗어나 사회에 나갔을 때, 사람과 조금만 친해지면 이런 질문들을 해댔다.

“자전거 탈 줄 알아?”

“어떻게 배웠어?”

“나도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아무도 없었다. 두발자전거를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끝까지 도와줄 사람이 여전히 없음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괜히 나섰다가 어디 뼈 부러뜨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중에 어디 자전거 수업하는 데 없나 찾아 보고 거기나 가봐.”

그렇지만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소망은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그라들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거세졌다. 동시에, 점차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독립심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곤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다.

“이걸 내가 왜 못 해?”

“이걸 왜, 내가, 혼자, 못 해내야 해?”

“혼자 못 할 게 뭐야?”

단 한 번도 혼자 해볼 생각을 아니, 용기를 못 낸 건, 그때는 혼자 뭐라도 해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혼자 해 보기 힘든 것들을 혼자 하게 됨으로써 스스로의 힘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들 학원 갈 때 독학하고, 선생님과 친구들끼리 과학 대회에 우르르 갈 때 나는 혼자 웅변 대회에 참가하고, 다들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행길 위에서도 나는 홀로 섰다. 혼자였기에 두려웠지만, 혼자이기에 못할 것이 없어 되레 용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발자전거라고 해서, 혼자 못 해낼 게 뭔가. 마침내 나는 친구에게 못 쓰는 자전거나 덜 소중한 여분의 자전거가 있으면 빌려 달라고 하기 이르렀다. 친구는 자기는 자전거 뒤를 잡아 주기 무리라고 했고, 나는 넘어져 뼈가 부러져도 내가 책임지겠으니 자전거만 빌려주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결국 내 손에는 친구 어머니가 현재 잘 타지 않는 아주 낡고 가녀린 자전거의 핸들이 쥐어져 있었다. 어느 가을의 따스운 초저녁 친구네 집 아파트의 큰 노상 주차장이었다.

나는 더는 무작정 오르지 않았다. 우선 친구가 자전거에 오른 후 타는 모습을 유심히 파헤쳤다. 첫째, 두 발을 땅에 댄 채 자전거 의자에 앉아 중심을 잡는다. 둘째, 왼쪽 발을 페달에 얹은 후 페달이 그리는 원의 최상부로 그 위치를 조정한다. 셋째, 왼쪽 페달을 앞으로 돌리는 순간 오른쪽 발을 바닥에 떼어 페달에 얹은 후 같이 돌린다. 넷째, 양발이 페달을 움직이는 매 순간 핸들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똑같이 따라했고 자전거는 넘어질 것 같은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옆에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친구는 깜짝 놀랬다. 나는 주차된 차들 근처에도 가지 않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방향을 바꾸기까지 했다. 날쌔게 출발하던 처음의 속도도 줄이지 않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번 만에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어렸을 적 두발자전거를 떼지 못해 위축되고, 어른들에게 갖은 핀잔을 들은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 해낸 일이다. 가을 저녁의 바람이 이토록 상쾌한지 처음 알았다. 또 자유롭기로 수족관 밖을 벗어나 바다에서 헤엄 치는 돌고래나 새장 밖을 벗어나 하늘로 솟구치는 새에 버금갔다. 나를 압박했던 그 모든 부정적인 발언과 감정에서 헤어나온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홀가분하게 웃어댔다. 나는 흔쾌히 자동차 턱도 넘어 가며 방금 두발자전거를 아무 도움 없이 통달한 실력을 실컷 자랑했다. 그토록 무거웠던 두발자전거의 무게는 감지되지 않았다. 내가 감지하는 건 오직 이 자전거가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는 것과 움직이면서 맞이하는 개운한 바람이었다. 친구는 마침 퇴근하신 그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쟤 방금 처음 탄 애 맞아?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나는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는 아예 가로등이 잘 들어오지도 않는 넓은 공터로 자리를 옮겨서 두 시간 가량을 더 자전거를 탔다. 앞이 점점 깜깜해지고 달이 더욱 빛나도 나는 자전거를 지금 멈추면 영원히 멈춰야 하는 사람처럼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통쾌한 기분을 최대한 오래 몸에 새기고 싶었다. 자전거 바퀴가 내는 모든 길이 곧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거봐,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죠? 이렇게 가망 없던 사람도 결국은 해낼 거라고 했죠?”

그리고 ‘두발자전거 마음’이 완벽하게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두발자전거 마음’은 남들은 기대도 안 하거나 오히려 비관만 늘어놓아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신중한 연구와 굳은 의지 속에 도전의 기회를 노리는 마음, 그리고 때가 왔을 때 그동안 쌓은 용기로 발을 내딛을 줄 아는 마음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철저히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뒤를 잡아주지 않는 자전거의 한쪽 남은 페달에 발을 얹어 돌리기 직전의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조건 된다.’

살면서 처음으로 ‘안 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 소심해서 근심, 걱정이 많은 나로서는 그때 어떻게 번민을 멈췄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내 머릿속과 마음에는 오로지 ‘된다’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도 뭘 해도 그렇게 하기로 다짐했다. 두발자전거를 타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살기로 굳게 결심했다. 아무도 내가 뭘 해낼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뭔가 잘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아무 이유 없이 폄하할 때도 나는 바득바득 해냈다. ‘저렇게 마른 애는 한라산에 못 오를 거’라는 얘기에 한라산에 등반해 컵라면을 먹고 오고, 아무도 봐 주지 않을 때 혼자 대회에 출전하여 상금까지 타 왔으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업무를 따 내기도 했다. 이제 보니 이게 바로 넘어지지 않고 두발자전거를 떼는 비법이었다. 즉 나는 나대로 두발자전거를 타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을 때 나는 나를 걱정했고, 아무도 배움과 도전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때 나는 끙끙거리며 시행착오를 받아들였고,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을 때도 나 혼자 ‘no’라고 말하며 다른 길을 갔다. 내가 두발자전거를 타는 방식은 내가 사는 방식을 닮아 있었다. 땅이 울퉁불퉁해도 절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위에서 위험한 묘기는 부리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자전거를 끌고 가는 건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종국에는 안전하고 깔끔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두발자전거 타기의 궁극적 목적임을 깨우쳤다. 그리고 페달을 홀로 밟기 전까지 수없이 망설였을지언정,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용기를 끝없이 내는 인생, 이름하야 ‘두발자전거 인생’이 내 인생임을 확신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없고 되는 것만 있다. 그게 내 인생이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해내는 사람으로 또,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된다고 말해 주는 삼촌과 같은 어른으로 그 인생을 산다.

나는 두발자전거를 내 힘으로 처음 탔던 그 마음 그대로 삶을 이끌어 간다.


KakaoTalk_20210827_154209657.jpg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자 합니다



<둥글게 둥글게>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마지막 편지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천 냥 빛

-하농

-My Life but Bette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피아노 선생님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 열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