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해서 근사한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by 전해리

미지근해서 근사한


음식 : 커피 드립백(맥심 싱글 오리진 브라질 산토스, 콜롬비아 우일라, 에티오피아 시다모)

영화 : 중경삼림(왕가위 감독)

노래 : What A Difference A Day Made(Dinah Washington 노래)


어떤 이는 미지근한 음식은 음식 취급도 안 했다. 물론 나도 미지근한 코코아는 코코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시간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니까 논외다. 그러니 너무했다. 뜨거워서 혀 데이고, 차가워서 혀 아려라! 미지근한 멋도 모르는 사람 같으니라고.

나는 지금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익숙하지만 낯설다. 처음 와보는 곳에서 처음 맡은 업무와 업무 사이, 늘 하던 대로 글을 쓰는 건 처음이 아니다. 옆에 일찌감치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다. 맛이 없다. 그렇지만 이 아메리카노라도 없으면 불안해서 글을 한 줄도 못 쓰겠다.

글을 쓰려고 멜번으로 떠났던 시기, 어디든 앉아 글을 썼다.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이 필요한 여행’에 담겨 있지만, 정작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글을 좀처럼 쓰지 못했다. 글을 언제 어디서든 (술술) 쓰는 지금 이전에 그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때도 나의 골칫거리는 심상을 표상하는 것이지만, 그때는 심상조차도 뚜렷하게는 고사하고 아예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발이 묶인 채 안개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뚫어맞혀야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런 상황에 나는 노트를 펴고 손에 펜을 쥐고 글이 쓰여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 거다. 당시 멜번은 겨울이었고, 따뜻한 날은 손에 꼽았으며, 나는 추위를 타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약간 푹한 날만 제외하고 주로 실내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또, 나는 돈이 부족하고 멜번은 외식비가 비쌌다. 그렇다고 여행을 갔는데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는 카페에 가서 가장 싼 롱 블랙, 우리나라로 치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체류 초기에는 멜번의 명물인 플랫 화이트도 많이 마셨지만 점차 롱 블랙을 찾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려고 혹은, 누군가처럼 직장 업무를 위해 카페에 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 한 문장이라도 나올 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리는 처지였고, 커피는 천년만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뜨거운 커피도 결국은 식는다. 다만, 야외가 아닌 실내라서 차가워지진 않고 미지근한 정도에 이른다. 미지근해진 음료 중 가장 맛있는 음료는 블랙 커피밖에 없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미지근해지면 약간 비릿한 맛이 돌았다. 블랙 커피는 그냥 식은 게 아쉬울 따름이지, 맛은 여전했다. 나는 카페에서 롱 블랙을 시키고 하염없이 빈 노트를 노려보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보면 롱 블랙은 어느새 식어 있었다. 호주에서는 커피가 바로 마시기 적당한 온도로 나오는 터라, 커피는 금방 식었다. 그럼 나는 거의 식은 롱 블랙만 마시는 식이었다. 커피를 받자마자 마시면 얼마나 맛있나. 하지만 나는 이곳에 최대한 오래 머물러야 하기에 커피를 조금씩 홀짝이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 시간을 지금에야 소중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지루하고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씨름하고 줄다리기하는 기분이었다. 제자리에서 몸을 뒤척이고 끙끙대다가 눈을 끔벅대지만 종이에 나타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억척스럽게 의자에 앉아 절망스레 펜촉을 바라보다가 몸이 으스스해지면 그제야 손에서 펜을 놓고 온기 없는 머그잔을 꼬옥 쥐었다. 그러고는 코 가까이 머그잔을 가져다 대곤 했다. 카페 안은 커피향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굳이 머그잔에서 커피와 함께 냉철해진 향을 맡았다. 크레마마저 사라진 롱 블랙은 그저 검은 물처럼 보였다. 그 물에는 나의 눈이 반사되었다. 나는 검은 샘물에 비친 나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잠시 눈을 맞추다 이내 롱 블랙을 또 한 모금 마셨다. 동시에 카페의 사람들이 보인다. 나의 오해일 수 있겠지만, 다들 걱정 하나 없이 즐거워 보였다. 필터 커피를 집중해서 내리는 바리스타나 가족들과 와하하 웃으며 브런치를 먹는 관광객이나, 연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현지인, 그 어느 경우에도 나는 속하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쓰라린 속을 부여잡은 채 롱 블랙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사람들은 바뀌어 있었다. 그중 나처럼 망연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노트에는 여태 아무것도 없는데 카페의 사람들은 자꾸자꾸 바뀌었다. 나는 이 롱 블랙이 마시면 글을 쓰게 해주는 마법약이라도 된 듯 간절하게 마셨다. 그 시꺼먼 건 펜의 잉크를 풀었나, 나의 속을 닮았나. 나는 미지근해진 블랙 커피가 너무 속상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미지근해지는 블랙 커피가 초라했다.

아메리카노는 어딜 가나 있었다. 그 말인즉슨 어딜 가도 아메리카노만 옆에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게 다 멜번에 가서 들여 놓은 버릇이다.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틈이 생기면 글을 썼는데, 그 옆에 반드시 아메리카노를 두었다. 누군가 사주거나, 내가 사 마시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라 근무 환경은 매번 달랐다. 그런 환경적 변화와 와글와글한 공간은 공황장애가 있는 나에게 무섭고 거북했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건 아메리카노였다. 아메리카노만이 나에게 일관성와 안정을 일깨웠다. 아메리카노가 있으면 그 공간이 곧 나의 집필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점차 근무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아메리카노를 인지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롱 블랙에 맛을 들인 나의 입맛에 너무 연하고 너무 뜨거웠다. 가끔은 맛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바뀌는 근무 환경마다 바뀌는 아메리카노에 나는 멜번의 롱 블랙을 내심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진했던 열정과 의심한 적 없는 온도, 그리고 그 기약 없는 문장 등장의 순간을 기다리는 형상만 생각하면 지금 나는 너무 변덕스러웠다. 열정은 연하고, 온도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웠다. 참을성 없이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노가 채 미지근해지기도 전에. 그때의 그 롱 블랙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형편 없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장면은 삶의 매순 달라지지만, 지금은 양조위가 주문한 블랙 커피를 마시며 왕페이가 지키는 가게의 매대에 나른하게 기대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 장면에서 오직 둘에게만 슬로 모션이 적용된다.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행인들은 너무 빨리 지나가 그 형태마저 흐릿할 정도다. 양조위와 왕페이에게만 시간이 따로 흐른다. 한 명은 무료하게 커피를 마시고, 한 명은 따분하게 멍하니 있다. 저 커피는 분명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아무 애정 없이 마실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저 장면에서 커피가 아니라 햄버거나 샌드위치만 되어도 그 장면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양조위가 손에 든 건 커피여야 한다. 그것도 미지근한 블랙 커피.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을 것이다. 뜨거우면 혀를 데는 시늉을 했을 테고, 너무 차가우면 축축한 날씨에 단숨에 들이켰을 테니까 말이다. 블랙 커피여야 하는 이유는 주문할 때에 있다. 주문할 때 그냥 ‘커피 주세요’가 영화에 어울리지, ‘카페라떼 시럽 듬뿍’이나 ‘카라멜 마끼아또, 휘핑 크림 얹어서’와 같은 주문은 영화를 해친다. 그러니 양조위는 미지근한 블랙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 시간은 흐리멍덩하고 밍밍해서 꽤 근사하다. 아니, 아주 근사하다. 불꽃처럼 튀지 않고, 꿈틀거리는 전조 증상 하나 보이지 않고 날짝지근하다. 어슴푸레하고 은은해서 녹작지근하다. 뜨겁지 않고 훗훗하고, 차갑지 않고 시원한 게 매우 매작지근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언가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그 중간, 텅 빈 동시에 꽉 찬 그 사이에서 잠잠하게 흘러가는 세계가 있다. 남들은 무심히 스쳐갈 그 세계 속에서 양조위와 왕페이는 아무래도 좋지 않았을까, 저들도 모르게 사랑할까 말까 하는 그 묘한 긴장과 떨림이.

사실 커피를 내릴 물을 끓일 때쯤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곤 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 좋은 것까진 아니어도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정열을 질질 끌어 버리다가 해가 가라앉을 즈음 정신을 차린다. 오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내린 블랙 커피는 오후 내내 식어버려 있었고, 나는 입도 거의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그 커피를 아쉽게 한 모금씩 마시며 글을 쓰는 거다. 이러느라고 커피를 내리는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 균일한 커피 맛을 내게 되었고, 덩달아 내가 내린 블랙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날을 이제는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내리고 미지근해진 블랙 커피를 마시며 하루 종일 글에 매달리는 날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이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에 홀로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가 미지근해지는 그 긴 시간동안 묵묵하게 글을 쓰다가 깨닫는다, 이 하루로 또 얼마나 달라질지(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미지근한 블랙 커피 맛에 관해 묻는다면,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의 맛이라고 답하리.


:: 맛있게 마시는 법

미지근하게 식힌 후 한 편의 글을 어느 정도 쓰거나 아예 완성시킬 때까지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 그렇지만 조금 보편적으로 논하자면, 물을 끓인 후 바로 드립백에 붓지 않아야 커피에 맛이 난다. 그러니까, 주전자에 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바로 그때 드립백에 물을 붓는다. 드립백을 끝까지 채웠다 기다리기를 세 번 반복하고, 마지막에는 아주 살짝만 물을 붓는다. 그 ‘아주 살짝’이란 나만의 감이다. 그리고 그 감이 내가 원하는 커피맛을 찾았다고 믿는다. 그 기쁨의 발견과 집필의 여정에 맥심 싱글 오리진 시리즈는 최고의 동반자다. 간만의 외출 후 귀가하면 엄마가 이렇게 묻곤 한다:”나간 김에 좋아하는 커피는 안 사오고?”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내가 내린 커피가 더 좋아서.”


https://youtu.be/r7kLP-ZgGog

제가 쓴 글을 직접 읽었습니다. 청각에 의지하여 글을 읽어 보세요!

<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천 냥 빛

- 하농

-My Life bu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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