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선생님,
사실 지금 집에
어렸을 적 쳤던 악보집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아요.
한참 전에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을 줄 알고
처분했죠.
그 악보집들을 버릴 때는 앞으로 피아노를 못 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어린 시절을 뒤안길로 두고
어른의 길로 나서는 인습 속에 살고 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처사였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고
답답한 처사였어요. 슬프기도 하고요.
꼭 피아노를 다시 치지 않게 되더라도 가끔 들춰 보며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곡들을 치곤 했구나’ 회억할 수 있는
기회로 남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고 모를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의 무지가 현재 안타까워요.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뿐이니 나는 날 그것밖에 모르는 거겠지요.
<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천 냥 빛
- 하농
- My Life but Better
이런 편지를 쓰는 나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싶다면
https://brunch.co.kr/@eerouri/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