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기에 숨쉴 수 있고, 그리 남는다

B, C, D: 삶과 죽음 사이 영화

by 전해리

실패하기에 숨쉴 수 있고, 그리 남는다


- 중점적으로 다룰 영화

영화 ‘타락천사’ : 영화관 _ 한 차례 관람

영화 ‘더 디그’ (The Dig) : 넷플릭스 _ 한 차례 관람

글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 뇌리_ 약 1년, 문서화_약 6개월


1부. 무의미는 떠돈다.

태양이 일찌감치 진 도시는 밝기만 하다. 인공 불빛 아래 청춘은 허한 마음에 쉬이 잠들지 못하고 유령처럼 방황한다. 사람들이 잠을 자기 위해 들어가고 남은 공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유령들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밤이 내린 세상에 분풀이를 하지만 명분도 악의도 딱히 없다. 식당의 집기를 우당탕 다 부수고 사람을 피가 나도록 때린 후 다시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때때로 장난을 치지만 받아주는 이는 없다. 주인이 없는 정육점에서 사장 행세 아니, 놀이를 하면서 돼지 어깨에 안마를 한다거나,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억지로 먹인다. 또는, 자기 의지가 부재한 채 패륜을 저지른다. 주문을 받는 대로 사람을 죽이지만 죄책감이나 의문을 갖지 않는다. 더러는 상대가 싫어하든 말든 들이대지만, 상대는 끝끝내 외면한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을 수 없어 상대가 없는 침소에서 스스로(自)를 위로(慰)한다. 이렇듯 말소하는 세상 속에서 천사들은 사랑으로 타락하여 죄인이 된다. 그들은 타락하자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결코 전처럼 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몸짓이라도 날개가 있을 때는 천사의 동작이지만, 날개가 없을 때는 인간의 발악에 그친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거슬리고 요란할 뿐, 어떤 의미도 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저 풋내 나는 우주의 네온사인은 눈이 부셔도 근본적으로 속이 텅 비었다. 뭘 해도 속이 채워지지 않는 것보다도 사랑이 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영영 말을 잃은 건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함이 아무 소용없었다는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실연당한 ‘타락천사’들은 실연당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마음을 내주는 것의 무용(無用)을 사무치게 느낀다. 사랑하면 무얼 하나, 정작 그 사랑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킬러가 보험일을 하는 동창의 결혼식에 갈 수 없는 섭리처럼 서로 옷깃을 아무리 스쳐도 인연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잠시 옷깃을 스친 바람에도 마음이 혹하니, 허무하다. 실연은 끝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실연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도저히 없고, 사랑에 데인 흔적은 사랑이 꺼져도 아직 곁에 있는 것처럼 화끈거린다. 사랑을 떠나 보내지 않기 위해 금발을 하거나 캠코더로 담아 본다. 그렇지만 그건 사랑을 붙잡아 둘 방법이 못 되었다. 내가 무얼 해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나는 기껏해야 울거나 차가운 브라운관 화면만 응시할 뿐이다. 결국 남는 건, 믿기지 않게도, 잠시나마 살갗이 스치던 찰나이다. 수도 없이 울어도, 응시해도 나의 사랑이 바꾸는 건 없지만, 잠깐 스치면서 마찰한 그 온기는 이미 날 바꿨다. 그 찰나의 온기에도 나는 바뀐다. 사랑이 남긴 온기는 내 안에 속수무책으로 물들었다. 그 온기로 공기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그러니 이 사랑이 또 실패할지라도, 당장에 나의 등 뒤로 기대는 당신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사랑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도 터널을 함께 지나 밤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터널 끝으로 먼동이 트자 도시는 비로소 형광의 광기를 끈다. 나의 사랑이 무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 없는 생이 무의미한 것이다. 사랑과 함께하는 한, 그 순간만큼은, 순간이라도 따뜻하고 안정하다. 무의미의 분위기에 빠졌던 마음이 마침내 발을 붙일 곳을 찾았다.

2부. 의미는 남는다.

저 안에 뭔가 있는 건 분명하다. 다만, 그게 대단한 건지, 가치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파야 한다. 파서 들어가고, 꺼내어 직면해야 한다. 영화 ‘더 디그’의 첫 인상은 적어도 고고학과 연관 있는 실화 바탕 미스터리 정도로 보인다. 서사가 약간 진행되니 암투극인가도 싶다. 이런 속세의 때가 묻은 상투적인 예측을 비웃듯 ‘더 디그’는 차분히 기대를 저버린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 영화가 그저 보통 사람 이야기임을 매끄럽게 드러낸다. 이렇듯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일찍이 저 안에 없던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파서 들어낸 후 흙먼지를 털어내면서 발견하는 건 아주 꽁꽁 감춰두었던 욕망이다. 유물의 존재가 시선에 들자 판도라의 상자 속 온갖 불행과 행운처럼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에 대한 갈망, 명예를 향한 야망 등 온갖 욕망이 함께 드러난다. 그 유물은 초라한 사물(死物)이 아니다. 진가가 채 밝혀진 적 없는 보배다. 그 보배는 발견 전까지 암흑 속에 매몰되어 있었지만, 발견 후부터 도리어 암흑은 제 가치를 드러낸다. 가려 있었기에 더더욱 빛을 본다.

혼란이 가득한 때에 삽질을 시작한다. 이디스 프리티(Edith Pretty)는 오랜 숙원인 소유지 발굴 작업을 배질 브라운(Basil Brown)에게 맡긴다. 배질은 라틴어부터 지질학까지 공부하며 책까지 쓴 열정 넘치는 발굴가이지만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무명이고, 이디스는 어릴 적 부친과 발굴 작업을 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이해도가 높지만 배질에게 그다지 높은 보수를 지급할 수 없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이 사람은 그 누구보다 성심으로 이 발굴 작업에 임해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그 누구보다 발굴의 의의를 아는 사람이구나. 모든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가치의 발견은 늘 지금부터다. 이는 경력이나 과학이 아니라 오랜 시간으로 다져진 감지다. 그 느낌은 짐작 이상의 것으로 맞다. 옳다. 다만, 그 느낌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올까. 우리가 온 곳에서 온다. 태어난 인간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듯, 그 어두컴컴한 흙 속에서 인간은 거듭 태어난다. 모두가 시간의 앞을 향해 전진할 때, 시간의 뒤를 캐는 일을 하자 시간은 비로소 본래 취지를 잃는다. (“Time lost its meaning.”) 우리는 앞으로 가기 위해 뒤로 간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선대의 시간과 대화한다. (“That speaks, don’t it? The past.”) 그게 바로 미래를 위한 일이다. (“It’s for the future.”) 또한, 이게 다가 아니다. (“I’m pretty sure it continues further.”)

유물은 정체커녕 형체만 드러났을 뿐인데 욕망을 자극한다. 둔덕에 파묻힌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거대한 배이며, 이 배는 그동안 밝혀진 적 없던 시대 즉, 암흑시대를 밝혀줄 증거이다. 이 발굴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시 쓸 일이다. 하지만 이를 흙 속에서 꺼내는 일은 좀처럼 수월하지 못하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박물관 사람들은 학력이 낮은 배질을 발굴 작업에서 멋대로 배제하려 들고, 논문까지 쓴 여성 고학력자인 페기(Peggy)에게 그저 남자에 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일손을 맡긴다. 가치를 파내어 증명하는 일은 나 좋아서 한 일은 맞지만 남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고용자인 이디스도 목을 죄는 죽음의 그림자에 겁을 먹고 배질의 현장 지휘권 박탈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배질은 현장을 언짢게 떠나고, 페기는 도리어 자신을 여자로 대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옹졸함까지 확인한다. 나에게 귀중한 것이 남에게도 귀중한 데다가 뺏길 위기마저 처하니 앵돌아져 버린다. 그리고 그제야 내 눈이 어두웠던 건 유물이 아니라 깊숙이, 오래, 꽁꽁 숨겨둔 마음임을 깨닫는다. 발굴 작업에 대한 노고가 인정받길 바라는 욕망 이전에 저학력이라는 멸시에도 발굴에 대한 열의와 의지만으로 꿋꿋하게 버텼던 비애다. 학력의 쓸모나 아내로서의 인식에 대한 욕망보다도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본의다. 설레는 감정이 아니라 아프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심정이다. 이렇게 고적한 소심(素心)에 먼지를 털어 빛을 보여주는 건 행동이다. 늘 가까운 발치서 묵묵히 발굴가 남편을 지지하는 브라운 부인은 배질의 초심을 일깨우고, 배질의 일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로버트(Robert)는 오직 그를 찾아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만약 이대로 끝내면 발견으로만 끝나는 것이지만, 계속한다면 발견을 계속할 수 있으며 이 이상으로 무엇이 밝혀질지는 끝까지 가 보아야 안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 보아야 가능성이 있다. 배질은 현장에 복귀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잠연히 발굴가의 할일을 다하고, 페기는 노동자나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내려놓고 남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들어 올리며, 이디스는 도로 성의를 갖고 발굴 작업의 방향성에 올바름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정당한 행위 속에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예술, 경제를 넘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는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요소가 죽지 않고 그 속에 여전히 실재한다. 자기표현력, 배려, 상생, 향유: 우리가 마음을 꺼내어 그 가치를 실행으로 옮긴다.

한편, 시간 위에서 가까스로 존재하는 유물은 버텨온 세월로 인해 때론 무너지기도 한다.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한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온다.

로버트: “I know she’s sick. I know it! (엄마가 아픈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알고 있었다고요!)

There’s nothing I can do!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Why is there nothing I can do? (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죠?)

I should be able to make her better. (제가 엄마를 낫게 해드려야 하는데.)”

배질 : “You do. You do make her better. (그러고 있어. 네가 엄마를 낫게 하고 있어.)”

로버트 : “No, she’s worse. She is, I can see it!

(아니에요. 엄마는 더 안 좋아지고 있어요. 내 눈에도 보여요.)

When my father died, everyone said I had to look after my mother. And I failed.

(아빠가 죽었을 때, 다들 나보고 엄마를 잘 돌봐 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실패했어요.)”

배질 : “We all failed. Everyday.

(우리 모두 실패해. 그것도 매일.)

There are some things we just can’t succeed at no matter how hard we try.

(우리가 차마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든 상관없어.)

I know it’s not what you want to hear.

(네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로버트 : “I’m stronger than she thinks I am.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요.)”

배질 : “I know. Perhaps you’ll show her. (맞아. 엄마한테도 보여주면 아실 거야.)”

산다는 건 실패하는 일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대상은 우리가 죽도록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대상은 죽음이다. 우리는 매일 죽음에 실패한다. 실패해서 숨쉴 수 있고 살아 있다. 오늘 실패했기에 내일 다시, 우리가 노력하고 싶은 것에 얼마나 매진하고 있는지 직접 증명한다. 오늘 말하지 못했기에 내일 말할 수 있고, 오늘 보여주지 못해 내일 보여줄 수 있다. 우리는 실패하므로 실패하지 않는다.

바닥의 어딜 밟아도 꺼질지 모르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흐른다. 매 순간이 우리의 존재를 아니 정확히는, 노력하는 우리를 위협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전운이 허공에서 감돌고 인간은 동요한다. 우리의 존재는 세상과 운명의 흐름 속에서 허무해지기를 그치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을 무(無)의 세상으로 보내기에 잔인하고, 인간에게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미를 남기고 의미는 남겠지만, “우리의 삶은 덧없이 흐르고 붙잡아야 할 순간이 있다.”(“Life is very fleeting.” “It has moments you should seize.”) 긴 세월에 빗대면 순식간일 우리의 삶에서 길이 남을 것은 무엇인가. (“If 1000 years were to pass in an instant, what would be left of us?”)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 있었다는 진실이다. 발굴의 과정은 로리(Rory)가 찍은 사진으로 영원히 남았다. 고대 사람들이 별자리를 보며 목적지까지 항해하였듯, 우리의 후대 사람들도 이 사진을 보며 삶의 갈피를 잡아 영위할 것이다. 마음을 고백하기까지 고된 노고가 존재하였으며, 이는 곧 사랑을 향한 깨달음이다. 가끔은, 혹은 언제나 땅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미 나 있는 별들과 별자리를 되짚고는 다시금 사랑하는 이와 만날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만남의 순간을 추억과 사랑의 증표로 교환한 후, 우리는 과거를 가슴 속에 묻고 다가오는 시간을 용기 내어 살아 간다(“carry on”). 암흑으로 덮였던 유물은 박물관에 전시되며 그 공로를 훗날 인정 받은 배질은 유적지를 이전에 파냈던 흙으로 다시 덮는다.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다시 덮는다. 내 마음이 담기었던 자리는 처음처럼 이리 영구히 봉인된다. 사람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이토록 유한해서, 무한하다. (“From the first human handprint on a cave wall… we’ve part of something continuous.”)

3부. 무의미와 의미 사이에서 헤매며

나는 오늘도 실패하니 남은 건 공허뿐이다. 빽빽한 허적함에 숨 쉴 틈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시작에서 글을 또 끝맺지 못하고 이 하루를 마감하니 매우 유감이다. 채 밀봉하지 못한 문장과 단어는 무작정 쏟아져 혼탁한 잉크로 퇴화한다. 꿈결 속 바라던 형상은 늘 현실의 잡연 속에서 공중분해되어 설거지 그릇과 빨래더미, 그리고 회사 서류 위에 쌓인다. 나는 설거지 그릇을 씻고, 세탁기 안에 빨래더미를 넣으며, 회사 서류를 처리한다. 끝마쳐 주길 기다리는 나의 가엾은 시와 소설, 산문은 살림살이의 언어와 혼재되어 겨우 깜박인다. 그렇게 자꾸 무의미해지려는 의미와 의미 있어지려는 무의미 사이에서 나의 마음은 흐릿하다. 다른 하루가 어물쩍 시작되는 무렵, 허무의 공기를 들이마시어 탁탁 뱉어 낸 심연이라는 잿더미 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움직여 간절하게 뒤지는 것이 있다. 그래 봤자 나의 애는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그럼에도 나는 되찾기 위해 흙을 걷어내고 또 걷어낸다. 그럼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별이 나타난다. 너는 또 한번 타오르는, 태어나는, 일어나는 태양이구나. 허망의 그물을 찢어내고 날아오르는 불사조의 날갯짓이 꽤 힘차다. 거리낌없이 쏟아지는 햇살에 만물이 빛난다, 새삼스럽지 않게. 고로, 내 마음도 그 빛으로 고이 씻어 내어 다시 광을 내자. 그래서 나는 오늘 글을 마저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글도 쓸 것이다.


비하인드컷

KakaoTalk_20220208_154304206.jpg

글쓴이의 코멘터리

이토록 스치는 삶에 긁힐 줄 알았다면


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요약 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