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아멜리에’가 한국에 놀러온 걸까? 새빨간 반팔 상의에 길다란 진청색 면치마가 시원했다. 시원시원한 의상 위로 곧게 솟은 목과 깡총한 단발이 가히 건축적이면서 사랑스러웠다. 이 차림과 어울린 호피 가방은 얼굴을 몰라도 이 사람을 알게 했다.
억척스레 볶아도 뻣뻣하게 늘어진 머리가 곧 생기였다. 카리스마 가득한 퍼석한 눈매 속 시종 반짝이는 눈동자가 영락없이 프랜시스 맥도먼드였다. 옷과 신발은 변색을 차치하더라도 비싸 보이지 않았는데 묘하게 영화 의상 같았다. 구찌 모노그램이 가득한 가방을 손에 꼭 쥐었던데, 그 안에 무엇이 있길래.
사람이 푸르르면서도 차분하였다. 두꺼운 영어 필기체가 적힌 모자와 청바지, 야구 점퍼, 그리고 아디다스 운동화 전부 정직한 네이비(navy) 색이었다. 다만, 모자는 살짝 걸친 듯, 소매는 걷히고, 바지와 신발엔 구김과 바램이 있고, 어딘가 부산한 움직임이 아저씨가 아니라 소년이었다.
그 신사가 내 옆을 휙 지나가는 순간, 흑백 사진으론가 접했던 1960년대 한국을 만났다. 연갈색은 수트와 신발, 양말, 안경으로, 명도 차이로, 또 체크 무늬로도 세분화되었다. 지하철 역 바람에 새끈하게 펄럭이는 수트는 마릴린 먼로의 드레스 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