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인 인터뷰
인터뷰어(관점 교환 제안자) 전해리
인터뷰이(관점 교환 응답자) 이정원
“삶은 한 줄기 빛을 따라 늘어선 먼지 같은 것.” 인터뷰가 끝나고 이정원은 자신이 쓴 캘리그라피를 보냈다. 왜 하필 먼지냐고 필자가 묻자 이정원은 한 문장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되는 것처럼 먼지 같은 순간들이 모여 빛이 되며 그 먼지들이 의미 있다고 회신했다. 그러곤 빛은 자연히 생기지 않기에 먼지가 먼저인데, 사람들은 별을 볼 줄 알지만 먼지를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신이 아는 이정원이라는 별은 ETRI 연구원, 대중적인 과학인, 스타트업인, 자아 표현 욕구가 강한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 별을 이룰 먼지가 또 하나 생겼고, 그 먼지에 내가 빛을 비추겠다. 당신이 모르는 이정원이라는 먼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긴장을 풀어주는 웃음을 터뜨리고, 설명보다는 예시를 들어 차분하게 풀이하며,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질문 하나마다 즉각 대답하지 않고 잠시 정적이 흐를 정도로 심사숙고하였다. 그리고 사고의 전환을 꾀하는 문예인인 필자를 놀라게 할 정도로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사려 깊게 제시할 줄 알았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늘 치워야 하는 존재라고만 여겼던 먼지가 이렇게 귀중하고 늘품을 갖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이정원은 먼지가 모여 빛이 나오고, 작은 빛이 모여 큰 빛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여기 아직 작은 먼지인 인터뷰이 이정원을 주목하자, 인터뷰이 이정원 또한 별로 빛날 수 있도록.
*해당 인터뷰는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스타트업인 인터뷰 <이정원은 스타트업으로 가치를 모은다>의 확장판입니다.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인터뷰 본판은 오로지 스타트업인에 관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인터뷰어인 필자의 의견과 이야기를 생략하였습니다.이 확장판은 그러한 생략을 복원하여 인터뷰의 본래 목적인 인간 대 인간의 담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에만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읽고 싶은 분은 http://www.asiaherald.co.kr/news/26609 에 방문하길 바랍니다. 또한, 본판과 확장판의 차이는 인터뷰어의 의견과 이야기 존재 유무일 뿐, 인터뷰이인 스타트업인의 의견과 이야기는 어떤 변함도 없이 그대로이니 불필요한 오해는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전해리(이하 전): 부대표님께서 바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이정원(이하 이): (특유의 웃음 소리로 웃으며) 제가요?
전: 그렇지 않으면 인기가 많으신 걸까요? (웃음) 바쁘시든 인기가 많으시든 어쨌든 시간을 꽉 채워 산다는 맥락이니깐요.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이정원 부대표님께서 창업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원래 하셨던 일은 어떤 일이었을까요?
이: 원래 전공은 의공학이에요. 의사들이 사용하는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뇌에 관심이 많았어요. 카이스트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박사 과정을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의 분야는 의공학, 뇌공학, 신경과학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ETRI의 바이오 부서에서 의료 정보 관련한 일을 하는데 어느 날, 현재 페블러스 대표인 이주행 선배가 창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게 작년 4월 1일 새벽이에요.
전: 부대표님께서 원래 창업 생각이 아예 없었으면 그런 문자를 의미 없이 넘길 만도 한데요.
이: 그렇죠.
전: 하지만 원래 창업 생각이 있으셨던 거네요?
이: 아니에요. 원래 없었어요.
전: 그런데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 것이 가능한가요?
이: 네.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한데 제가 해보니까 가능해요. 3분 정도 생각했어요.
전: 그 3분 안에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셨을까요?
이: 별로 치열하진 않았어요.
전: 창업의 세계를 전혀 모르셨던 거잖아요?
이: 경험해 본 적 없죠.
전: 하지만 들은 바는 꽤 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이: 그렇죠. ‘힘들다’, ‘나가면 춥다’, ‘다 돈이다.’ (웃음) 많이 들었죠. 우리 부서에서도 창업해서 퇴사하신 분도 계셨고요. 저에게 오라고 한 스타트업도 여럿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고민은 엄청 했죠. 결국 안 갔기 때문에 나는 창업에 뜻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ETRI 다니면서 나름 재미있게 잘 살고 있으니깐요.
전: ETRI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책임 연구원이고 20년 근무했어요. 보직에는 전혀 뜻이 없었어요. 기회도 없었지만 그 길은 그다지 원치 않기도 했어요.
전: 보직을 맡으면 연구원보다는 회사원처럼 되는 걸까요?
이: 부서간 정치도 무시 못할 것 같았어요. 예산 싸움이니깐요. 부장, 소장님에게 보고해야 하고요. 모든 것이 짜인 상태에서 자율도가 크게 없어요. 괜히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어요.
전: 잔잔한 호숫가에 가끔 돌멩이가 날라오는 정도의 생활을 보내시다가 이주행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거군요. 그런 연락이 없었다면 그대로 ETRI 연구원으로 살았을까요?
이: 그렇죠.
전: 인생을 바꾼 연락이네요.
이: 당분간은 별일 없이 그랬을 거에요. 아니면 어디 갔을지도 모르죠? 그때는 그랬어요. 여하튼 연락이 왔을 때 재미있을 것 같았고, ‘하면 되지’ 싶었죠.
전: 혹시 문자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이: ‘진지하게 창업 고민 중.’ 살짝 설레는 마음이 들었어요.
전: 이주행 대표님과 꽤 돈독한 사이였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문자를 받을 수 없겠죠.
이: 당연하죠. 연락한 사람 입장에서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거에요. 저는 그전에 여러가지 일을 같이 했고, 뜻이 잘 통하고, 추구하는 방향성과 일하는 방식, 기준이 잘 맞았어요. 둘이 하면 멋있겠고, 뭘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면 된다고 봤어요. ETRI 다니면서도 처음 해보는 일은 많아요.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혹시라도 회사가 정말 안 된다 하더라도 나의 가치는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기도 하고요. 아무나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한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쳤을 것이고, 일부는 해결하고 일부는 해결을 하지 못하는 경험 그 자체는 ETRI에서는 경험할 수 없죠.
전: 스스로가 내리는 평가 외에 대외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지 않나요?
이: 그런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죠. 만약 안 됐다 하더라도, 저는 그 과정을 견뎌낸 사람인 거에요. 실패자?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전: 저에게 이전에 이메일을 보내 주셨을 때 ‘위기를 겪을 기회가 없었다’고 말씀하셨죠. 부대표님 인생에 위기나 실패가 없었던 것처럼 읽힙니다.
이: 위기나 실패… 위기나 실패… 그런데 연구원은 실패라고 할 만한 것은 없어요.
전: 연구의 실패?
이: 그건 너무 당연한 거에요. 될 때까지 하는 것이 연구에요. 연구는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게 끝낼 수 있어요. 아직 창업한 지 몇 개월 안 됐으니까…
전: 실패를 언급하기 이르죠. 직원은 몇 명일까요?
이: 대표, 부대표, 채용한 직원 둘, ETRI에서 파견된 책임 연구원, 이렇게 다섯 명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카이스트 학생이 인턴으로 있고요.
전: 페블러스의 소개문 중 데이터의 진심이라는 문구를 보았어요. 사용자와 데이터 간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페블러스의 목표인데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이: 오늘 하루만 해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생산했죠?
전: 예를 들면 어떤 데이터요?
이: 내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샀고, SNS에 무엇을 올렸고 등등 데이터를 생산했는데 그게 내 손 안에는 없잖아요.
전: 제가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죠. 비가시적으로 있지만 가시적으로는 없는 상태?
이: 그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데이터가 어떤 효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고, 데이터가 만들어 내는 수익에 있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건 없죠. 그게 바로 데이터가 사용자 사이에서 가지는 간극이에요.
전: 부대표님은 바이오 분야에서 일하셨는데, 이 데이터라는 것과 간극은 크게 없어 보입니다.
이: 과학 실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행하는 거죠. 저는 특히 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관심이 많아요. 나의 삶에 대한 데이터요. 그러한 데이터를 예쁘게, 실용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흥미가 많았어요. 이런 내용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도 강연한 바 있어요.
전: 세바시에서 강연한 소재의 목적은 부대표님 스스로에게 있잖아요. 하지만 사업은 다수와 대중의 실용성과 목적 그리고 수익에 부합해야 하는 문제죠.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신 바가 어떻게 사업화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우리가 이력서나 프로필을 만들지 않으면 그동안 살아온 바를 설명할 수 없잖아요.
전: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꼭 이력서가 아니더라도요.
이: 예를 들면?
전: 제가 낸 책이 될 수 있고요. 제가 그린 그림, 제가 찍은 사진도 되고요. 하지만 저도 한편으로는 부대표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력서라는 것은 굉장히 직접적이죠. 내가 몇년 몇월에 얼마 동안 기간을 거쳐서 어디를 다녔다고 하면 그건 상대방에게 즉각적으로 정보로써 기입이 되겠죠. 제가 말씀드린 책, 사진, 그림은 주관적인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크죠. 부대표님이 가리키는 바는 사실 그 자체 혹은 사실에 입각하는 객관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 이력서 말고 내가 찍은 사진들, 내가 본 공연들, 내가 즐겼던 게임들, 이것들은 사실 나를 보여주는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내가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나 자신이고, 나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여러 관점에서 나의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일 텐데 정작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는 도구가 없는 거죠. 그래서 SNS를 하는 거잖아요.
전: 보통은 그렇죠.
이: 그러한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작년 4월의 생각이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것의 비즈니스 모델에 관련하여 여러가지 있지만 당장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학습 과정에서 필요한 인공지능 데이터가 수적으로 모자라지만 품질 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없어요. 병원에 건강 검진을 가면 엑스레이를 찍잖아요. 그런데 엑스레이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이 속을 볼 수 없잖아요. 지금 데이터가 그런 상태에 처해 있어요. 데이터를 갖고 있고, 또 많지만, 데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어요. 그런 데이터를 이미징하고 상태를 진단하고 품질을 개선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일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전: 품질을 좋게 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예를 들어, 플라스틱 분리수거를 할 때 이 플라스틱을 잘 골라 내기 위해 이를 인식시키는 AI를 만든다고 하면 페트병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해요.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이 페트병을 그려서 데이터를 만든다 말이죠. 그런데 이 페트병이 편의점에서 팔던 그 형태가 아닌 찌그러지고 오염된 상태에요. 그런 다양한 조건의 페트병을 확보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학습에 효과적이지 못한 거에요. 페트병 데이터가 만 개면 이 데이터가 실제 생활에서 보이는 모든 경우를 포함하고 있느냐 혹은 극히 일부냐, 즉 분포에 대한 문제에요. 테슬라처럼 자율주행 차를 만든다면 출퇴근하는 거리에 대한 데이터는 굉장히 많겠지만 인적이 드문 어느 산골에 대한 데이터는 극히 적을 것 아니에요. 사고 현장도 그렇고요. 그런 데이터는 사실 더 중요한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구하기 어려운 데이터에요. 그런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곧 그 데이터 셋에 대한 진단이에요. 그렇다면 그 데이터를 어떻게 만드냐. 일부러 사고를 낼 수 없죠.
전: 가설을 세우는 방법?
이: 그렇죠. 가상으로 만드는 거에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쉽게 생각하면 게임이나 가상 현실처럼 그래픽으로 그 장면을 만드는 거에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페트병을 우그러뜨리고 오염 물질을 붙이고 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가상 데이터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추가하면 인공지능이 학습을 훨씬 잘하죠.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느꼈던 거지만, 인공지능이 예상하지 못한 수가 있다는 것? 즉 모든 상황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법이잖아요.
이: 당연히 있죠. 그런 것들이 성능으로 표현돼요. 인공 지능이 모든 것을 다 맞추지 못해서 백 점 만 점에 구십 몇 점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나은 거지. 그러니까 인공 지능이 전지전능하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지금보다 좋은 상황을 만들고 싶은 것이고, 인공 지능이 도움을 주는 거에요.
전: 제가 궁금한 건 인공지능은 예외를 어떻게 인정하냐는 거에요.
이: 실수?
전: 실수도 있을 거고, 변수도 있고요. 그걸 인공지능은 어떻게 인정할까?
이: 인정?
전: 네, 설명하기 위해 제 이야기를 예시로 들게요. 제가 올해부터 ‘레모네이드샤워’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었거든요. 그전에 이 레모네이드샤워에 대한 일화가 있어요. 제가 어느 날 레모네이드를 빨대 없이 마시다가 옷에 다 흘린 거에요. 내가 왜 그랬을까 책망했는데 하루 종일 몸에서 레몬 향이 나는 거에요. 그때 저는 깨달았어요: 실수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건 아니구나.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실수를 저지른다면 최고로 멋진 실수를 저질러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어요. 행복을 만드는 실수, 낙천적인 존재를 낳는 실수 말이에요. 이러한 마음가짐을 저와 관련된 제품을 통해 전파하는 것이 제 브랜드의 목적이거든요. 제 요지는 실수나 변수는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죠. 반면, 인공지능은 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인정한다는 게 그런 의미구나. 인공지능의 실수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겠죠. 그로부터 새로운 영역을 떠올리기도 하겠지, 당연히. 인간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창의성이라면 창의성이겠죠.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창의적이게 되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실수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전: 정확도가 중요한 분야 아닐까요?
이: 그런데 예술에 인공 지능을 활용한다면 그렇지도 않죠.
전: 그렇지만 페블러스는 예술이 아닌 일상 생활이 시장이죠.
이: 아, 당연히 정확도를 키우려는 데 기여하려고 하는 거에요.
전: 그러한 변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걸까요?
이: 줄이려고 하겠죠. 예술적인 관점에서는 활용할 수 있겠지만, 공학적인 관점에서는 실수를 줄이려고 하니까 데이터의 품질에 관심이 있는 거에요. 예를 들면, 레모네이드를 흘렸을 때의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인공지능에게 빨대 없이 마시다가 흘리는 상황을 경험시켜 주고 싶은 거지.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난다.’ 그런 데이터를 만들어서 넣어주는 거에요.
전: 만약 그렇게 하면, 빨대 없이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흘리지 않는 방법이 고안될 수 있는 걸까요?
이: 그건 문제 정의가 달라요. 인공지능은 문제를 내지 않아요. 문제를 잘 푸느냐의 함수를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만드는 함수인데, 인공지능이 그 도구가 되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출력을 해라. 이러한 데이터를 줄 테니 1, 2, 3, 4, 5번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잘 분류해라’. 알파고 같으면 ‘이런 바둑판을 보여줄 테니까 승률이 가장 높은 다음 수를 알아 내라’. 이게 함수잖아요, 입력과 출력. 그런데 x+3이라는 함수에 입력이 단순히 들어오면 출력이 반드시 나오는데 인공지능이 만드는 함수는 확률적이란 말이에요. 여기에 1을 넣어도 항상 3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2가 나올 수 있고 4가 나올 수 있어요. 확률적, 다르게 말하면 유연함 때문에 겪어 보지 않는 모든 상황에 웬만큼 대처할 수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옛날에 알고 있는 알고리즘은 유연하지 않았죠. 순서도 있지 않았고요. 못 푸는 문제가 너무 많았어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에서 출력을 제대로 못 낼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함수를 사람의 신경망처럼 구현해 놓고 보니, 이게 여기로 갈지에 대해 나도 확신은 없는데 이쪽 결과가 좋다면 이걸 쓰는 거죠. 점점 제너럴라이징(보편화)되는 거에요.
전: 지금 말씀하시는 데이터의 품질 향상과 페블러스의 데이터 클리닉과 어떻게 연관되는 건가요?
이: 앞서 설명한 방식에서 보면, 우리는 가상 데이터를 추가하거나 쓸데없는 데이터가 너무 많으면 제거하는 방식이에요. 수술을 통해서 암을 제거하거나 보철물을 넣는 외과 치료와 비슷해서 치료라고 명명하고 있어요.
전: 페블러스의 이러한 기술이 어떤 식으로 상용화되어서 우리의 현실에 안착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 데이터 산업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누구나 데이터를 굉장히 많이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데이터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을 거에요. 그 데이터를 잘 활용하거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필요하겠죠. 지금도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기업이 잘 되는 이유는 데이터 때문이죠. 데이터를 보유한 회사들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잖아요. 데이터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그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이제 막 실용화되고 있는 시점이에요.
전: 이제까지는 축적만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어떤 식으로 활용해 볼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군요.
이: 그런데 그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있어, 신경망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데이터에요. 보틀넥(병목 현상)은 데이터에요. 이 데이터에 대한 전문가랄까. 우리는 조금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 데이터의 품질을 향상시키기겠다는 거죠. 모든 분야에 쓰이는 인공지능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데이터 진단 치료 솔루션을 만드는 거에요. 우리가 사실 B2C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낄 만한 현상을 주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정확도를 0.1%라도 올리기 위해서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하고 있고, 우리는 그에 기여하기 위해 좋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거죠.
전: 방금 전,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제가 이정원 부대표님의 브런치 글에서 ‘과학과 기술은 다른 맥락’이라는 내용을 포착한 바 있는데요. 보통은 과학과 기술을 굳이 구별해서 쓰지 않잖아요. 그럼 더 나아가서 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부대표님께서 쓰신 글과 더불어 설명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 오케이. 일단 그 글을 설명하면, 저는 과학과 기술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 쓰는 것이 불편한 사람. 그런데 저도 사실 어쩔 수 없이 섞어 써요.
전: 저도 보통 글이라고 하는 것에서 수많은 정의가 나뉜다고 여기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글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글은 다르고 저도 그걸 설명하느라 애를 먹고 있어요. 하나의 단어에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는 건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 그렇지만 이걸 구별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 버려요. 이 둘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요. 해내는 일이 달라요. 과학은 이해하는 방식이에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에요. 기술은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이에요. 과학은 인간 입장에서 입력에 해당하는 거고, 기술은 출력에 해당하는 거에요. 내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다, 즉 이 자연을 변화시킨 거잖아요. 토목 기술, 전자 공학, 반도체, 의류, 이런 건 만들어내는 의미란 말이에요. 내 환경을 변화시키는 건데, 과학은 일단 어떤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이에요. 누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어떻게 된다는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그 방법에 대한 것이 과학이고, 그 주장이라는 것이 맞다 아니다 이것도 확률적이에요. 100% 맞을 수 없고, 100% 틀릴 수 없어요.
전: 무조건 이분법적인 사고가 될 수 없는 거네요.
이: 그렇죠. ‘이 주장은 90% 정도 신뢰할 수 있겠어’라고 말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게 과학적인 방법이에요. 확률적이고 통계적인 방법. 그리고 인과 관계, 이런 일이 벌어진 다음에는 저런 일이 벌어진다는 인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과학인데, 이것도 웬만해선 100%가 되기 어렵죠. 이것도 확률적이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웬만해서는 98%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도에요.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뜨는 건 100%가 아니잖아요.
전: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이: 100% 아니죠. 그럼 내일 해가 안 뜨면 어떡해요? 안 뜰 수도 있잖아요. 이 명제가 100%에요?
전: 지금까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경험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이: 그치만 이런 명제가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에요. 이 명제는 당연히 누구나 100% 경험하고 있지만 틀릴 수밖에 없는 명제잖아요. 알잖아요, 태양은 언젠가 식는다는 것을.
전: 어쨌든 지금은 아니라는 걸 우리가 공유하고 사는 것 아닐까요?
이: 그러니까 이 명제가 100%가 아니라는 뜻은 지금까지 그랬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거에요. 이렇게까지 명확한 명제를 갖고 이야기하면서도 100%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언젠가는 태양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사실 알고 있어요. 태양이 나중에 어떻게 돼요?
전: 나중 언제요?
이: 가령 50억 년 뒤에?
전: 태양은 안 식을 것 같아요.
이: 태양은 식어요. 핵 융합 에너지로 태양이 타고 있는데 태양이 나이가 50억 년이 넘으면 식어요. 점점 쪼그라들고 빛을 잃을 거에요. 태양보다 더 무거운 별은 점점 커져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거에요. 별이 두 가지 방식으로 죽거든요. 하나는 쪼그라들고, 하나는 터지는 거에요. 그렇게 터지는 것이 초신성이에요. 별이 터질 때 엄청난 빛이 나오고 쪼그라든 태양은 너무 가벼운 별이어서 나중에 차갑게 식을 거에요.
전: 식으면 어떻게 돼요?
이: 떠돌아다니는 돌덩이가 돼요.
전: 굉장히 귀여운데요. 제가 이전에 ‘돈 룩 업(Don’t Look Up)’이라는 영화를 관람해서 그런가 굉장히 와닿아요. 결국에 모두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이런 과학에 기초하고 있는 거군요.
이: 그래서 50억 년 뒤에는 태양이 사라진다는 말이에요. 물론 그 전에 지구가 사라질 확률이 훨씬 크지. 지금 이 복잡한 현실 속에 훨씬 복잡한 요인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런 주장을 검증하는 것이 과학적인 방식이에요.
전: 그럼 부대표님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이라는 문장을 믿어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세상이 있구나’, 이렇게요.
이: 당연히 있죠. 틀리지 않는 문제, 적당한 문제인데 현재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아예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문제가 있을 수 있죠. 과학은 모든 걸 설명하려 들지도 않죠, 당연히. 흥미롭네. (웃음)
전: 대표님께서 연말마다 한 해를 돌아보기 위해서 데이터로 정리를 하시잖아요. 그런 것을 두고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아니요.
전: 그러면 뭐라고 정의해야 해요?
이: 데이터를 보여줬다는 면에서 조금은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전: 그런데 과학적이지는 않다?
이: 엄밀한 과학은 아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주장을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과학적인 방식이에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건 논리에요.
전: 왜요? (웃음) 논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함수나 인과 과정이 아니라 논리잖아요.
이: 당연히 논리죠. 말이 되게끔 연결하고 있으니까 논리죠. 그런데 논리는 약간 경계해야 해요.
전: 과학자 입장에서죠?
이: 인간 입장에서 아니, 둘 다. 과학적인 인간이 되려면 논리를 경계해야 해요.
전: 저는 논리적인 인간이 되려고 하는데요. (웃음)
이: 당연히 그래요. 그렇게 교육 받았거든요. 우리가 배운 논리가 뭐에요?
전: 말이 되게끔 하는 것? 난센스가 아니라 센스(일리)가 되게 하는 것.
이: 그런데 그건 증명이 아니라고요.
전: 그걸 왜 증명해야 해요?
이: 예를 들어,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린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방법이 있을 텐데 논리로 접근하면 어떻게 돼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전: 그걸 논리로 하면 설명이 안 되는 거죠.
이: 어떤 주장이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수십 가지 만들 수 있어요. 서로 논리로만 이야기하면 각자 주장이 맞을 수밖에 없어요.
전: 예를 들면, 제가 누군가에게 ‘담배 피지 마’라고 했을 때 상대방이 ‘프랑스 사람들은 담배를 그렇게 피는데 괜찮잖아. 그러니까 나는 필 거야’라는 논리는 일리가 없는 거죠. 이런 맥락이죠?
이: ‘선풍기 켜 놓고 자면 큰일 난대’라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요. 왜? 사람들은 거기에서 메커니즘을 설명해요. ‘산소가 부족해지고 공기 순환이 안 되어서 이산화탄소가 계속 나와서 그렇게 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구나’ 수긍을 해요. 보통 사람은요. 그런데 그건 논리일 뿐이에요.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되고, 저렇게 해서 이렇게 되는 메커니즘은 수만 가지이고, 그런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가는 현상부터 결론까지 가는 길을 증명해주는 건 아니에요. 이걸 증명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한 거에요.
전: 그런데 말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엄마에게 ‘허리를 그렇게 구부리고 목을 내밀어서 자세가 비뚤어지니까 머리가 아픈 거 아냐, 허리를 펴고 목을 꼿꼿이 세우고 바르게 앉아야 머리가 안 아파’라고 말하는 건 대표님 말씀에 의해 논리라고 쳐요. 하지만 제가 만약 대표님이 언급하시는 데이터를 잘 활용해서 잘 이야기한다고 해도 엄마는 ‘됐어’라고 거부하거든요. 결국은 소용없는 거잖아요.
이: 만 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폈을 때와 펴지 않았을 때를 비교하고, 통계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여 줘야 더 신뢰할 수 있는 거에요.
전: 그런데 엄마한테는 그걸 보여줘도 받아들이지 않는 거에요.
이: 당연히 그럴 수 있죠.
전: 그렇다면 제 요지는, 페블러스의 데이터 클리닉은 이 세상에 어떻게 납득될 수 있을까? B2C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한들, 또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한들 결국 세상에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면 다 소용이 없죠. 누군가가 정말 훌륭한 논리로 남을 설득한다고 해요, 심지어 통계까지 활용하면서요. ‘자, 봐봐. 통계를 보면 이건 증명된 거야.’ 이래도 안 되어서 이론에 법칙까지 들이밀어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관습, 관성이 있어서 그와 반대되는 혹은 아예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잖아요. 스타트업이 우리 물건, 서비스가 정말 신선하고 좋다고 수만 번 이야기해도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기존의 구매 습관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이게 바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겪는 난제 아닐까요? 페블러스가 데이터의 가치를 세상에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또 이 가치를 활용한 사업이 어떤 식으로 납득될 수 있을까요?
이: 지금은 고객이 없어요. 지금은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는 단계에요. 지금은 우리가 ETRI에서 해왔던 일들이 바탕(reference)이 되는 거에요. 그게 데이터라면 데이터고요. 그렇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아직 우리는 논리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인공지능 시장, 데이터가 중요해. 데이터, 지금 많다고 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그게 바로 보틀넥이야. 그래서 우리가 이 데이터 현상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서 가상으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추가하면 인공 지능 서비스 성능이 훨씬 좋아져’가 우리 논리에요. 이 논리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면서 공감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우리도 데이터가 필요하죠. 하나씩 보여줘야 하잖아요. 우리가 만든 가상 데이터, 우리가 내리는 처방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지금은 논리로 설득하는 단계, 나중에는 데이터로 설득했겠죠. 데이터로 설득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입장에서 매출이 발생한다는 의미에요.
전: 연구원만 하셨지만 이제 사업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잖아요. 다른 점을 체감하시나요?
이: 쓰는 용어가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요. 돈이라는 것에 대한 효용, 관점도 달라지고요. 일하는 건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전: 투자자 앞에서 서서 발표하거나 하는 등 그러한 변화가 어떻게 가닿나요? 떨리진 않으세요?
이: 그런 걸로 떨리지는 않아요. 사실 우리에게 투자하고 싶어 하는 분들은 많아요. 우리도 좋은 투자자를 물색해야 하는 거에요. 구걸하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에게 적임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니깐요.
전: 혹시 IR 발표하는 법, 피칭을 배우셨나요?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피칭 강의를 듣기도 하니깐요.
이: IR 발표하는 법에 대해서는 안 들어도 지금 잘 하고 있어요. 발표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전: 사업인과 과학인은 어떤 식으로 다른가요? 어떨 때 과학인이 되고, 어떨 때 사업인이 되고, 그 차이는 어떻게 되나요?
이: 물건을 파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고, 과학인이라 해서 다 같지가 않겠죠.
전: 과학은 순수한가요?
이: 순수하지 않죠.
전: 슬퍼요. 과학이 순수하지 않으면 어떡해요?
이: 과학이 순수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전: 속세의 이윤적인 사고방식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사람이 하는 거니깐요.
전: 그럼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과학적인 사업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사업을 한다는 것을 여러가지 판단을 전략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 판단을 데이터 기반 혹은 과학적으로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데이터 기반 회사를 만드는 건 충분히 과학적이라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감, 동물적인 감각으로 하면 과학적이지 않지만 사업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과학인이 사업인이 될 수 있고, 사업을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거고, 또 과학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적이지도 않아요. 많은 과학인들이 모든 면에서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아요. 과학인과 사업인을 분류하는 것은 모호해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 과학적인 사람인 건 맞아요. 그런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많은 사업인들과 조금 다른 방식일 수 있어요.
전: 전형적인 사업인이 될 필요는 없죠. 그럼 이정원 부대표님은 과학인, 사업인을 다 떠나서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길래 과학을 하고 사업을 하는 걸까?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공부하는 것이 좋은 사람? 몰랐던 것을 아는 것이 좋은 사람? 내가 지금 사업인이라고 한다면 사업하는 것을 몰랐는데 이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정말 새로운 건데 이걸 해보는 것이 재밌어요. 이런 사람이에요.
전: 저는 탐구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에요.
이: 공부를 조금 멋있게 표현하면 탐구에요. 제가 성격 유형 분류를 했는데, 거기에서 탐구이상형이 나왔어요.
전: 동의하세요?
이: 들어보면 그렇더라고요.
전: 저는 그런 검사, 예를 들면 mbti도 굉장히 싫거든요. 왜 나를 한 쪽으로 몰아세워?
이: 나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잖아요. 나는 굉장히 많은 역할과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보이는 사람인데 그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성격 유형의 하나에 속하기도 좀 그렇죠. 나는 언제 외향적이고, 언제 내향적이고, 언제는 충동적이고, 언제는 계획적이고. 당연히 그렇잖아요. 나는 짧게는 계획적으로 행동하는데 긴 계획은 없어요. 인생의 꿈이 없어요.
전: 그럼 뭘 가지고 살아야 해요? 그렇지만 우리네 사는 것이 ‘미래에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살지 않아요?
이: 예를 들면 백 년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 만 명을 고용하는 기업이 되겠다, 천 억을 벌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번 달에 할 일을 잘하고 싶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계획뿐이에요. 매일매일 새롭고, 그날그날 벌어지는 일들이 재미있고, 당장 읽어야 할 책도, 쓸 글도 많아서 충분히 즐겁게 충만하게 살고 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즐기면서 사는 거지, 10년 뒤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전: 일리가 느껴지는 답변이었습니다. (미소) 지금 페블러스를 설립한 지 6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죠. 지금이 스타트업의 초창기의 초창기라고 했을 때 지금의 마음가짐을 초심이라고 일컫는다면 부대표님께서 이 마음가짐만큼은 오래도록 갖고 있고 싶다는 것이 있을까요?
이: 가까운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을 잘 챙기고 싶다.
전: 왜요?
이: 그게 초심인 것 같아요. 회사가 커지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마다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도움을 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고 싶어요.
전: 페블러스에 이정원 부대표님은 어떤 존재에요? 예를 들면, 어떤 상사라든지?
이: 제가 되고 싶은 바를 이야기하자면, 같이 즐겁게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 상사보다는 역할이 다른 동료? 방향 설정을 하거나 조금 더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직급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요. 그렇지만 일상에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전: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거나, 혹은 어떠한 질문을 받아보고 싶었다면 직접 질문하고 답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음… 느낌을 말하자면… (고민이 길어지며)
전: 혹시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세요?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쓴 에세이인데, 제목은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그 책이 참 좋았어요. 상당한 커리어를 쌓은 분인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음악이 좋아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도록 내던져졌다. 항상 재밌지는 않았다.’ 그러한 이야기를 용기 있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탐구하고 있었어요. 솔리스트지만 현악 4중주라는 화합이 얼마나 어렵고 좋은 화음이 나왔을 때 얼마나 큰 희열을 느끼는지 구술한 것이 정말 좋았어요. 어느 직업을 가졌든 공감이 갈 만한 에세이에요.
전: 왠지 부대표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네요. 솔리스트를 하면서도, 지휘자를 해야 하고, 또 현악 4중주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제 인터뷰를 마쳐도 괜찮을까요?
이: 괜찮고, 제 글을 읽고 와서 좋은 인상이었다.
전: 읽으라고 보여주신 거면서. (웃음)
이정원 님의 브런치: https://brunch.co.kr/@madlymissyou
&
이정원 님의 캘리그라피
본문(스타트업인 전용)
http://www.asiaherald.co.kr/news/26609
네이버포스트에서도 이 확장판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naver.me/Ff0LsKIF
*위 인터뷰와 사진은 아시아헤럴드에 귀속되며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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