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랍장을 사랑하라

B(삶)과 D(죽음) 사이 Cinema

by 전해리

*이 작품의 모든 글은 해당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문 대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번역을 존중하되

독자적 영화 해석에 따른 필요로 인해 필자 본인이 되도록 직접 번역합니다.

*조금 더 원활한 설명을 위해 때론 직역하거나

원래 대사의 의미를 차용했음을 감안해주세요*

*작품 제목과 작품에 나오는 대사, 작품 속 고유명사에는 작은따옴표를 달았습니다*

***해석은 얼마든지 바뀝니다.

고로, 절대적이고 완벽한 해석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서랍장을 사랑하라>


- 언급할 영화

영화 ‘단지 세상의 끝’ It’s Only the End of the World : 노트북 _ 한 차례

영화 ‘레이디 버드’ Lady Bird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소울’ Soul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채널 및 노트북 _ N차 관람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토이 스토리3’ Toy Story3 : 노트북 _ 한 차례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The truth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하우 투 비 싱글’ How To Be Single : 노트북 _ 한 차례

- 글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 뇌리 _ 약 1년 반, 문서화 _ 세 달


그럼에도 인간은 태생적으로 동등하다. 각자 제 것의 서랍장을 타고난다. 그 서랍장의 이름은 인생이요, 각각의 서랍에도 이름이 있으니 그 이름에 걸맞게 그 속을 채우는 건 인간의 몫이다.

1.

인간이라면 당연히 감정을 느끼고 응당 개성을 가진다. 다르게 말하면 감정과 개성은 인간됨의 조건이다. 그러니 ‘생전 세상(Great Before)’에서 영혼들 전부 개성을 완성하는 성격과 특징이 부여된 빈칸투성이의 배지를 지급받아 각각의 칸을 다 채우면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태어날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렇게 고유의 성질을 타고난 우리 사이에는 겹치는 감정이 존재한다. 기쁨(Joy), 슬픔(Sadness), 분노(Anger), 짜증(Disgust), 걱정(Fear), 우리는 각자 다른 기질을 갖지만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러한 감정의 기초다. 각자 감정의 정도와 촉발 계기는 다르겠지만 우린 서로의 감정을 공부하지 않고도 알아차리고 공감할 수 있다. 감정은 인류로서 동질성을 확인시키고 ‘빙봉(Bing Bong)’은 인간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형성한다. 누구에게나 감정이 있듯 누구에게나 빙봉이 있었다. 어른의 눈에는 절대 잡히지 않을 날개가 달린 마음이 어린 우릴 꿈꾸게 했다. 물론 그 어렸던 우리가 어른이 되면 빙봉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환상이 상실되고 현실과 마주하며 힘을 쓰는 건 동심이나 단지 한 가지 감정이 아니라 다채로운 감정들이다. 기쁨만 느끼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원치 않은 이사와 전학으로 갈팡질팡하던 라일리가 끝내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고백하고 부모님에게 안길 때 행복은 비로소 복합적인 것이 된다. 이 순간은 라일리만이 소유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있고, 이 행복은 라일리만이 누릴 수 있다. 라일리의 입장과 관점에서 여러 경험과 감정이 혼합되었기에 고유하다. 이로써 라일리는 행복이라는 칸에 이 기억을 넣었다. 이 기억은 라일리를 밝힌다.

2.

그 기억은 라일리의 소유지만 행복이란 상태는 라일리 혼자서만 소유할 수 없는 존재 공통의 것이다. 기쁨이란 칸도, 재능이란 칸도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우리 각자 특유한 존재일 수 있는 까닭은 카테고리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물의 차이에 있다. 우리가 서랍장에 어떤 것들을 넣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이 달라진다. 역으로 보면 내용물이 카테고리를 정의할 수 있다. 팀은 동생 캣을 위해 과거를 무리하게 되돌렸다가 팀의 의도와 달리 딸이 아들로 바뀌고 만다. 그렇게 과거를 고치고 왔는데도 현재의 팀에게 자식이 존재하는 건 변함이 없다. 달라진 점은 자식의 성별일 뿐 자식의 유무가 아니다. 팀은 이러한 변동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변경을 강행하기를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딸을 만난다. 이처럼 사소한 선택 하나로도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귀속되기도 한다.

3.

서랍장을 구성하는 칸들 중 어떤 칸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부여받는다. 파비안느와 뤼미르는 모녀 사이로 피차에게 늘 껄끄럽다. 루이도 마찬가지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뒤 가족을 12년 만에 방문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시간은 소중한 사람 간에 발생한 고통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 서랍은 잊을 만하면 발견되고 그 안에서 앙금, 상처와 고통을 생생하게 확인하고 만다. 파비안느와 뤼미르에게 서운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과거의 사건들은 오늘날에도 촉매제가 되고, 루이와 가족들은 만나지 않은 시간만큼 불가해해진 서로와 각자의 응어리에 부글부글하다. 어떤 서랍은 때론 그 내용물과 합쳐져 피와 살이 되는데, 이 서랍이 그러하다. 자신이 상대방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던 일을 수도 없이 토로해도, 이 서랍장은 통 비워지지 않는다. 파비안느와 뤼미르, 루이와 그의 가족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은 언젠가 지나갈 사건이 아니라 생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비워 내고 싶어도 이미 이 서랍의 일부, 이 서랍도 이 장의 일부다. 뽑아내고 싶다고 해서 뽑아버릴 수 없다. 리에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그러하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곳, 그리로 가면 애써 잊으려던 노력이 휘발되는 곳, 상처가 기다리는 곳. 이 서랍을 여는 순간 리는 모든 과거를 한꺼번에 직면해야 한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를 심산의 늪에 빠뜨린 건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서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가. 과연 우리는 이 서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4.

루이 어머니의 말을 빌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은 아무도 앗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사건도, 하물며 이 상처조차 이해할 수 없다: 이 상처를 나는 왜 잊을 수 없을까. 관건은 이해가 아니라 수용이다. 인간은 살아 나아가야 한다. 다시 돌아와도 영원히 존재할 이 서랍은 다른 서랍들과 마찬가지다. 파비안느와 뤼미르 모녀에게 서로는 말다툼을 일삼아도 결국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존재이고, 루이와 가족들에게는 평화는 없지만 비록 섭섭함과 오해로 덧대어져도 아끼고 깨트리지 않으려는 속내가 있으며, 리는 이 서랍을 가까스로 터놓는다. 이 서랍의 내용물은 이 서랍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서랍을 꺼낼 때 다른 서랍도 함께 열리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가족이란 서랍 안에 고통이 들었을 때 슬쩍 열리는 희망이란 서랍 안에 가족이 들어있고, 추억이란 서랍이 그 아래를 지지하고 있다. 서랍들은 서랍장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를 지탱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이 증명하듯, 나 아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상처와 고통을 분석한다는 건 분별없는 짓이다. 따라서 이 서랍을 닫을 용기를 지지한다. 이건 도피가 아니다. 인정이다. 이건 나의 서랍이고 서랍장이니까.

5.

서랍을 닫을 용기를 지지하고, 서랍 속을 정리할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크리스틴도, 앤디도 때가 되어 서랍을 정리한다. 크리스틴은 지금 떠올리면 이불 속에서 발길질할 야단법석과 서툶을 싹 치우고, 앤디는 대학으로 떠나기 전 방을 청소하여 짐을 챙기고 어린 시절부터 애착을 가진 장난감을 모은다. 우리는 서랍 속 내용물을 정리할 때 아니,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깨닫는다: 이게 바로 나를 채웠구나. 앤디는 차마 속시원하게 우디와 친구들을 탁아소에 넘기지 못하고, 크리스틴은 그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떠나는데도 후련하지 않고 오히려 미묘해진다. 우리는 우리를 채운 것들에 알게 모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을 들인다. 내가 죽으라 미워했던 곳, 나의 애정을 쏟았던 것 모두 포함이다. 우리의 감정은 시간을 만든다. 그러니까 단순히 내가 죽으라 미워했던 곳, 나의 애정을 쏟았던 것 이상으로 내가 그곳을 죽어라 미워했던 시간, 내가 그것에 미친 듯 애정을 쏟았던 시간으로 변모한다. 이 장소를 떠나고 물건을 떠나보낸다는 건 곧 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나와 멀어짐을 의미한다. 물론, 간직함으로써 굳이 작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입은 옷을 아낀다고 해서 어른이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간직하기 위해 살지 마라. 성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숙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당신이 사랑하던 어제를 놓아야 내일을 결정할 수 있다. 당신의 어제는 지나갔기에 더 이상 일정 형태로 잡을 수 없지만 그 어제로 인해 당신의 오늘이 존재한다. 크리스틴은 새크라멘토를 떠나고 나서야 자신을 다른 이름이 아닌 크리스틴으로 부르고, 앤디는 장난감을 탁아소의 아이에게 건네며 자신의 장난감과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든다. 옛것이 떠나간 자리에, 크리스틴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끊임없이 전전하는 시간조차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진리를 집어넣고 앤디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만큼 사랑할 존재를 발견할 여정의 시작으로 채운다.

6.

한편, 그저 내용물을 인지하거나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서랍의 형태를 바꿔야 한다. 내가 내 삶을 바꾸는 데 있어 그저 상대나 대상을 교체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방식을 아예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앨리스는 독립적인 자기 자신을 원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지는 않지만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않는 편이다. 혼자 되고 싶어 뉴욕에 왔지만 늘 누군가와 함께 있고, 전 남자친구의 애매모호한 행동에 홀라당 넘어가고 혼자서 원피스 지퍼를 내리지 못할 만큼 의존적이다. 이러한 앨리스에겐 소망이 하나 있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실행하지 않는 건 앨리스의 의지 이상으로 고착된 방식에 기인한다. 앨리스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려고 분투하고, 키스를 거부하지 못하고, 꼬드김을 긍정적으로 금세 착각한다. 그러하니 뭔가 노력은 하는데 삶이 그대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드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을까. 사랑받는 삶을 원한다면 사랑을 받으면 되듯,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면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 앨리스는 마침내 삶의 방식을 변형시킨다. 애인이 필수라는 서랍도 빼고 그 자리에 자신감의 서랍을 넣는다. 운동도 혼자 하고, 책도 혼자 읽고, 원피스 지퍼도 기구의 힘을 빌려 혼자 내린다. 서랍장의 형태를 바꾸니 그 안을 이전과 똑같이 채워도 달라진다. 핵심은 홀로됨과 함께함의 차이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타인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타인과도 할 수 있고, 타인과도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즉 오롯한 나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둘 때 나에게 어떤 서랍장이 맞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서랍장 주변에 놓을 가구, 가구들을 채울 집, 나의 집이 있어야 할 곳까지 결정할 수 있다.

7.

삶에 회의적인 영혼22는 그저 살아감에 불꽃을 느꼈다.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거나, 인정을 받거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가 아니라 나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음식을 발견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웃음이 터질 때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삶을 채우려고 할 때 갈등과 고뇌, 불편과 피곤은 시작된다. 어떻게 해야 휴가를 허투루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자격증 끝내면 어떤 자격증을 딸까, 어떻게 하면 맛집 찾기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쓴다. 일정 목적은 이룰 것이다. 그러나 진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인지는 의아하다. 서랍을 어떤 의미로 채울까 궁리하기 전 선행되어야 했던 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어진 삶이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숨쉬는 그 자체다. 짜증이 나더라도,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실패하거나 주저앉더라도 당신은 서랍장을 타고났다. 우리를 받아줄 삶 말이다. 살면서 서랍을 변형하든, 사용하든, 정리와 보완을 겪든 이 서랍장은 우리를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의 순간과 사랑과 선택을 넣기 위해서 서랍장을 파악해야 한다. 나의 서랍장이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얼마나 큰지,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살아가는 데 달렸다.

8.

그러므로 내 눈에는 탄생 전의 동그란 영혼들이 숫자 0처럼 보인다. 0처럼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 말이다.


비하인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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