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옷이나 입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이상한 눈초리로 볼 옷차림인가 싶다. 화영 언니와 계단 끝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 갈 때도, 싱가폴로 떠나기 전 마음을 다잡을 때도, 생일을 자축하며 스테이크를 썰 때도 인주는 ‘샤랄라’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치마를 입은 인주를 화영 언니는 귀엽다는 듯, 도일은 ‘왜 이러나’ 싶은 듯 쳐다 보았다. 그 둘은 아니, 세상 사람들은 알까? 옷으로라도 이뤄 보고 싶은 잃어버린 삶을 과연 알까?
옷은 때때로 그 옷을 입는 삶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비싼 삶은 비싼 옷을 요구하였다. 오해를 덜기 위해 구체적으로 형언하자면, 더 나은 삶은 더 나은 옷을 요구하였고 다른 삶은 다른 옷을 요구하였다. 걸스카우트 옷은 걸스카우트 옷을 입는 삶을, 아람단 옷은 아람단 옷을 입는 삶을, 태권도복은 태권도복을 입는 삶을, 그리고 무용복은 무용복을 입는 삶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거꾸로, 그 옷이 없으면 그 삶은 불러가지 않는다. 다르게 말해, 갖고 태어나지 않은 옷을 입고 싶은 삶은 살짝 비참하다. 갖고 태어나지 옷은 어째 항상 나의 집안 경제가 감당하기엔 비쌌다.
“그거 꼭 해야 해?”
부모님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어린 심장에 명중되었다. 물론, 걸스카우트와 아람단보다 경제적인 동아리는 차고 넘쳤으며, 태권도복이 필요하지 않은 실용적인 운동은 참 많았고, 무용복처럼 예쁘고 부담되는 조건은 굳이 필수는 아니고 사치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도 왜 박탈감을 느꼈을까? 이거 별것 아닌 것과 같은 이유로 이거 참 별것도 아닌데 못한다는 게 너무 서럽다. 꼭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먹고사는 것도 좋은데 그것보다 약간의 여유를 누릴 정도까지 살았다면 걸스카우트, 아람단, 태권도복, 무용복 중 하나는 입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지만 그 욕망이 내가 아닌 주변 환경으로 이뤄지지 않을 때 좌절되는 자아는 겪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고통이다.
발레 치마를 처음 보았을 때 마음에 불이 이는 듯했다. 햇살을 곱게 겹쳐 놓은 것 같기도, 꽃잎을 살포시 포개 놓은 것 같은 치마는 누가 입어도 고스란히 그 어여쁨이 유지되어서 내가 입으면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발레를 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발레 치마를 입지 못했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누구보다 예뻐 보일 옷을 입고 반장으로 사회를 보며 어깨가 우쭐해도, 발레 치마를 입고 간단한 발레 동작을 선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어깨가 조금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옷을 하도 잘 입고 다녀 엄마가 나에게 ‘여한은 없지 않냐’고 말할 정도지만, 그게 맞다고 동의하지만서두, 그런데도 아직도 튀튀 스커트를 보면 어릴 적 나는 왜 발레를 할 수 없었는지, 하운드투스 체크 재킷과 치마 세트, 캉캉 치마, 털토시 등 별의별 걸 입고 걸쳤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못 입은 옷이 있다면 그게 왜 발레 치마였는지 모르겠다.
결여는 자꾸만 변상을 바라게 만든다. 그때 못 했으니 이제라도! 어린 마음에는 영영 생생할 상흔이 남아서 사람을 평생에 걸쳐 착각에 빠뜨린다. 그때 못 입은 그 옷을 지금이라도 입으면 꼭 한이 풀리는 것만 같고, 인주가 좋은 곳에 갈 때면 발레 치마 같은 치마를 입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릴 적 못 해본 피자 가게에서의 생일 파티, 그 파티의 주인공은 필시 잘 사는 집 딸이었을 것이다. 생일 파티에서 여 보란 듯 주인공이 되고, 방과 후엔 발레를 하러 가고, 연말 학예회에서는 플루트를 서툴게 불 것 같은 여자 아이 말이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모자람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일의 돈과 보일러와 쌀에 대해 걱정 한 번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여자 아이. 친구들을 부른 생일 파티에서 삶은 계란을 대접하는 집에서 자라고 대학에서 인문이 아닌 회계를 전공해 빨리 졸업해서 취직해야 했을 인주는 화영 언니와의 부자 놀이에서, 도일을 초대한 생일상에서 그때 그 여자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튀튀 스커트를 입는 순간만큼은 세상물정 몰라도 행복한 추억만 있는 여자 아이가 커서 되었을 만한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주가 어릴 적 입지 못한 발레 치마를 입어서 당당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주의 자신감은 환경이 입혀주는 발레 치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입혀주는 발레 치마에 있기 때문이다.
가난이 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방해라면, 인주는 그 가난을 제대로 겪었다. 기자인 동생 인경이처럼 똑똑하지 않고, 화가가 되고 싶은 동생 인혜처럼 미술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인주는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무엇을 잘 하고 싶은지를 떠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깨달을 기회마저 갖지 못했다. 특출나거나 특별하지 못해 평균에 미치도록 자라기라도 해야 했을 인주는 얼른 졸업해 취업하고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까 결혼까지 했다. 즉 똑똑하지 않고 탁월한 재능도 없는 인주도 노력한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라도. 비록 취직한 회사에서 별 볼 일 없는 대우와 왕따를 당하고 결국 이혼했음에도, 끊임없이 가난해지는 삶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는 다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가난도 해칠 수 없는 인간의 태생적 권리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주는 그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본인 자체를 수단으로 쓸 만큼 상황 개선에 필사적일 정도로 인간적이다. 금전 기근과 능력 미비에 상관없이 인주는 인정(人情)과 인간 간의 신의를 믿었다. 그게 바로 인주가 최선을 다하는 법이고 거대한 돈과 빈틈없는 시스템에 대항하여 살아남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습적 돈과 소수에게 유리한 시스템, 대물림되는 가난과 꽉 막힌 조직 속에서도 인주는 끝끝내 사회의 불공평한 소명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소망을 이룬다. 그러니 인주는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발레 치마를 입는다, ‘자신감 있게’.
나는 못 배운 발레를 배우는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 못 입은 발레 치마를 입기 위해서, 나의 생을 완전하게 메우기 위해서.
환경이 심은 한을 스스로 풀 줄 아는 인주는 좋은 날 아무 옷이나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