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대신 보그

브랜드 물 한 잔 Brand A Cup of Water

by 전해리

보그 코리아와 컬렉션 북 Vogue Korea Magazine & Collection Book _ 브랜드 물 한 잔 Brand A Cup of Water


저녁 대신 보그


20세기 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때론 저녁 대신 ‘보그’를 산다고 했다. 그녀는 이유로 ‘보그’가 자신을 더 배부르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녀의 말에 때때로 동의한다. 특히 컬렉션 북을 부록으로 준다면 보그를 더더욱 거부할 수 없다. 시대가 너무 좋아져서 이젠 집안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내가 좋아하는 컬렉션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굳이 컬렉션 북을 사야 하는 까닭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난 ‘잊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답하겠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저장을 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난 매 컬렉션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창조물’이 시대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그 창조물의 기록물인 컬렉션북을 구매함으로써 그들이 그때 무얼 창조했는가 기억하고자 한다. 이번 컬렉션 북이 소개한 첫 쇼는 칼 라거펠트가 남긴 샤넬의 유작이었다. 난 애석하게도 칼 라거펠트가 왜 ‘소중’한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컬렉션북에서 설원을 재현한 쇼장의 트위드 코트를 꼼꼼히 살피면서 칼 라거펠트의 ‘지금이 끝나면 바로 내일을 생각’하던 열정를 떠올린다. 이번 컬렉션북은 그 열정을 다른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내가 패션의 뭘 안다고 감히 비평을 쓰겠는가. 다만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이유로든 ‘기어코’ 또 옷, 스타일링, 소재, 디자인, 그리고 패션을 탄생시키고 마는 그들의 열정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탄할 뿐이다. 이번 컬렉션북은 온통 ‘내일’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날에 이 컬렉션북을 책장에서 꺼내 읽으면 난 칼 라거펠트와 ‘내일’을 또 상기시키지 않을까. 아, 그리고 이번 보그 5월호는 컬렉션 북 속 디자이너와 컬렉션을 이해하기에 훌륭한 레퍼런스, 그러니까 참조 문헌이었다. 또 그것과 별개로, 기형도의 시를 활용한 아카이브는 보그가 아니면 어느 잡지가 할 수 있을까. 때론 보그가 너무 ‘보그’스러워 거부감이 들 때가 있지만,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남기는 기록물에 그 어떤 수식보다 ‘버버리스럽다’, ‘르메르답다’, ‘보테가 베네타같다’는 브랜드 이름으로 표현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것처럼 이번에도 보그는 ‘보그’스럽게 시대의 기록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손으로 넘기며 확인했다. 오늘만큼은 저녁보다 열정과 내일을 넘어 ‘나’다움으로 날 채웠다. ‘캐리’의 말은 21세기에도 유효했다.


사진 : 필자
소중하고 감사한 추억

2019.04.27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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