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크로키 Brand Croquis
샤넬 샹스 CHANCE from Chanel _ 브랜드 크로키 Brand Croquis
노력과 기회 _ 샤넬 샹스
샤넬의 샤넬은 겉치레가 아니다. 샤넬은 언제나 지금이고, 그래서 당당하다. 이때 샤넬은 마드모아젤 ‘샤넬’도 되고 브랜드 ‘샤넬’도 된다.
샤넬이 선망의 대상이 아닌 적이 있었나. 소유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샤넬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혹은 알파벳 ‘c’처럼 생긴 ‘c’ 모양을 좌우반대로 겹쳐 놓은 것 같은 로고를 보기만 해도 지금으로선 샤넬에 다가가긴 어려워도 언젠가 반드시 손에 넣고 말리라는 다짐이 마음에 새겨진다. 만약 샤넬 외에 샤넬 같은 브랜드를 꼭 집어 얘기하라면 사실 약간 난감하다. 마땅치 않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나 가치 및 가격을 생각하면 까르띠에, 에르메스 정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 ‘고가’ 브랜드들은 ‘어느정도’의 재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샤넬과 견주기 애매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는 크루아상과 커피를 손에 들고 때론 음미하며 유리 진열장 너머의 티파니 주얼리를 응시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걸 볼 수 있어도 가질 수는 없다. 티파니의 주얼리가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봤자 티파니에는 절대로 내려앉지 않는 굳건한 가격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샤넬은 바로 앞서 언급한 브랜드와 달리 막연한 동경까지는 아니다. 어떤 브랜드는 모두가 가질 수 없어 가치가 있다지만 샤넬은 모두가 가질 수 있어 가치가 있다.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에 실린 크리스틴 다구셰(Dagousset) 샤넬 향수 화장품 총괄 사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샤넬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건 지금 시대를 이끌어갈 모든 여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마드모아젤 샤넬의 정신 중 하나이며 마드모아젤 샤넬이 단순히 브랜드 샤넬의 창립자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브랜드 샤넬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선보이는 모든 것에서 생생하게 묻어난다. 따라서 샤넬을 갖는다는 건 괜한 허영이 아니다. 노력이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지금껏 비일비재하게 쓰였지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더 자주 쓰이길 바라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자’라는 표현이 몹시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21세기에도 자식의 삶이 부모나 조부모의 재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수저론’이 만연한데, 신분과 계급이 엄연히 존재했던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에겐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흔히들 일컫는 나이대에 부모의 재정적 및 정서적 영향력이 없었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조금 커서는 낮에는 바느질을 배우고 밤에는 가수로서 노래를 불렀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즉 자신의 재능을 찾고 이로부터 비롯된 능력을 갈고 닦아 경제적 및 사회적 자립을 도모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정직하게 가다듬은 자질과 실력은 세심하고 날카로운 그녀 특유의 관찰력을 만나 날개를 단다. 마드모아젤 샤넬에 대한 영화 ‘코코샤넬(Coco Before Chanel)’을 보면 그녀가 어떻게 옷을 만들었는지 어느 정도 참고가 된다. 그녀는 그 누구의 눈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안과 밖을 억지로 치장하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기존의 것들에 의문을 던졌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눈을 반짝였고, 그녀 자신이 입기에 편안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것이 그녀의 노력이다. 우선 당시 사교계 여성이 입던 풍성하고 과장된 모자와 드레스에 의구심을 갖고 여성의 스타일에서 필요 없는 장식을 뺐다. 빼기의 미학이다. 화려한 레이스와 코르셋을 배제하고 간결한 선과 분명한 색의 모자와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 다음,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닷가로 ‘보이(아서 카펠)’와 휴가를 즐기고 온 후, 그녀는 세일러 스트라이프, 즉 선원의 옷에 쓰였던 디자인인 줄무늬를 긴 소매 셔츠로 만들어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남성복의 전유물을 여성복으로 가져왔다. 보이가 입은 옷의 소재를 보고 저지(jersey) 자켓을 만들어 입었고,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재킷의 소재를 보고 트위드 재킷을 만들어 입었다. 다른 귀부인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얌전을 뺄 때, 그녀는 대담하게 바지를 입고 남자들과 동등하게 승마를 즐겼다. 바지를 입은 여자의 탄생이다. 이는 곧 주체적인 현대 여성의 시초다. 부차적인 요소를 완전히 뺀 정수나 다름없는 우아함을 여전히 간직한 채 활동성과 편안함이 가장 우선이 된 옷은 사회의 중심이었던 남성과 대등하게, 그리고 아무런 제약 없이도 사회 생활을 즐기고 자신의 일을 갖게 하는 출발이었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이렇게 감정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성공하겠다는 욕망과 주어진 현실을 예리하게 활용할 줄 아는 감각을 노력으로 삼아 샤넬을 창조했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아티스트가 일반적으로 창작에 사용할 법한 부모의 부재, 사랑, 인생의 굴곡으로부터 비롯된 부정적 감정에서 디자인에 관한 발상을 얻지 않았다. 그녀의 창조물엔 과거에 자신이 어땠건 지금과 상관없다는 태도가 드러나 있으며, 따라서 그녀의 창조물은 지극히 현실 반영이다. 신분이 주도하던 사교계,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극복과 여성의 정신과 활동을 지배했던 장식적 요소를 삭제하고 쟁취한 자유 말이다. 그러므로 샤넬은 실력과 자질이 빚어낸 노력의 결과였다.
디자이너로서의, 아니 샤넬로서의 샤넬은 이에 멈추지 않았다.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의미를 발굴한 데 그치지 않고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그 어떤 고정된 여성상도 창출하지 않는 대신 스타일을 남겼다. 자켓에 주머니를 달고, LBD라 불리는 리틀 블랙 드레스, 메탈 체인과 가죽끈을 꼰 스트랩과 사각 잠금 장치를 단 퀼팅백인 2.55백, N°5 향수를 만들었다. 이는 단지 옷, 가방, 향수가 아니다.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각오의 실현이다. 실용성을 갖춘 트위드 자켓을 입은 여성에게 유연한 행동이 보장되었고 그 주머니엔 넣고 싶은 걸 넣을 수 있었다. 2.55백은 손에 자유를 부여함과 동시에 당당함을 선사한 립스틱을 나만의 무기로 감출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LBD는 낮과 밤 상관없이 입을 수 있어 경제적이었다. N°5 향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은 아무 것도 단정짓지 않고 그저 이 향수를 뿌리는 어떤 여성상도 포용하며 주위 사람들을 매혹했다. 따라서 샤넬을 입고, 쓰고, 신고, 걸치고, 바르고, 뿌리는 모든 행위는 여성 자신이 되고 싶은 여성이 되겠다는 야심과 다짐의 실체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샤넬로도 이어진다. 칼 라거펠트가 수장이던 샤넬 컬렉션의 핵심은 테마다. 칼 라거펠트는 컬렉션을 통해 샤넬을 입는 여성이 놓일 수 있는 상황의 가짓수를 넓혔다. 먼 훗날 미래에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을 입는다면? 이집트 피라미드 앞이라면? 해변에서 트위드 소재의 옷을 입는 방법은? 폭포 앞에 PVC 소재의 우비를 입은 채라면 샤넬을 어떻게 스타일링 해야 할까? 쿠바에서는? 이런 생각들은 그와 샤넬이 실제처럼 재현한 그랑팔레나 실제 장소에서 완벽히 실현되었다. 그의 컬렉션에서는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게 앞으로 뻗는다. 이는 한편으로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8/19 크루즈 컬렉션은 마드모아젤 샤넬이 사랑했던 여행과 그녀가 친구들과 휴가를 보냈던 ‘라 파우자(La Pausa)’라는 이름의 별장이 정수가 되어 진행되었다. 과거라는 사실이 미래를 위해 쓰였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모자를 사랑한 샤넬을 연상시키는 베레로 정통성을 지키면서, 강렬한 파랑색이 담긴 틴트 선글라스와 지그재그 패턴과 줄무늬의 교차는 칼 라거펠트로부터 기인했다. 과거의 영광은 샤넬에게 그저 그뿐이며, 샤넬은 지금 또 다른 샤넬을 만든다. 남을 위해서 스스로를 억지로 꾸미거나 변장하지 않는 마드모아젤 샤넬의 소신은 샤넬 뷰티에서도 잘 구현되었다. 샤넬 레 베쥬 워터-프레시 틴트나 르 블랑 브라이트닝 쿠션 팩트는 부자연스러운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비완벽함을 내세우며 기존 피부의 혈색을 최대한 살린다. 샤넬의 N°5의 경우, 샤넬 로(L’eau), 샤넬 오 프리미에르(Eau Premiere)는 N°5 향의 변주를 꾀했으며, 트래블 스프레이, 헤어미스트, 바디 로션 등 다양한 형식으로 향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샤넬이 선구자로서 시대를 이끈 감각과 경험은 현재도 유효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남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하거나 시류에 무조건적으로 편승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필요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파악해내 그를 섬세하게 제품에 담아낸다. 따라서 2018년에 선보인 샤넬 남성 화장품인 보이 드 샤넬(BOY de Chanel)은 남자도 자연스러운 화장을 할 수 있는 시대와 수요 혹은 요구를 위한 샤넬만의 대답이다. 샤넬의 확장은 비단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샤넬의 모델과 엠버서더는 샤넬로써 이룰 수 있는 무한한 이미지에 관한 제안이다. 이네스 드 라 프라상쥬, 캐롤린 드 메그레, 수주, 퍼렐 윌리엄스, 릴리 로즈 뎁, 크리스틴 스튜어트, 키이라 나이틀리와 같은 아티스트는 한계를 의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대체불가능한 창조물을 남기는 인상을 전달하는 동시에 샤넬을 손에 쥐려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샤넬은 누구고, 당신의 샤넬은 무엇인가.
샤넬은 언제나 노력이 일궈낸 기회들의 향연이었다. 노력과 기회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평등하지 않은 시대와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지금으로선 샤넬의 제품을 갖기 어려운 이들로 하여금 샤넬 뷰티의 제품으로라도 샤넬을 갖게 한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샤넬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샤넬 뷰티로써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삶에 있어 ‘노력하면 된다’는 걸 경험시킨다. 즉, 당신이 노력했기에 샤넬을 가질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샤넬이 단순히 럭셔리로만 추앙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샹스(기회)가 내게 다가왔고, 난 그걸 잡았죠. (A chance came up, I seized it.)’
마드모아젤 샤넬이 남긴 어떤 말보다 샤넬의 가치와 정수가 완벽하게 표현된 이 문구는 현재 향수 ‘샹스(Chance)’로 태어났다.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사실을 영감으로 삼는 샤넬의 태도가 잘 실체화되었다. 게다가 샤넬이 늘 남들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길을 확장했던 것처럼 이 샹스도 그렇다. 샤넬의 N°5나 가브리엘, 코코 마드모아젤이 공통적으로 지닌 고혹적인 느낌은 이 샹스 라인에선 비교적 덜하다. 대신, 생기와 화사함, 생동감을 가장 기본 요소로 삼고 4개의 향수(샹스 오 땅드르 오 드 퍼퓸, 샹스 오 드 빠르펭, 샹스 오 후레쉬, 샹스 오 비브 오 드 뚜왈렛)마다 각각 발랄함, 온화함, 개운함, 상큼함을 부각시켰다. 샤넬의 다른 향수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풍성한 향은 내 손목에만 머물지 않고 나의 옆에 서 있는 이들에게까지 놀라움과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그리고 편안하다. 이 향수를 뿌리면 내가 이 샤넬을 갖기 위해 행한 노력이 근사하게 여겨진다. 그래, 가치 있는 노력이었어. 잘 사라지지 않는 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노력이 잡을 수 있는 기회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즉, 기회는 누군가의 손에 달린 게 아니다. 기회는 자신의 노력에 따라 점점 형체가 생기다가 마침내 그 모습이 갖춰졌을 때 잡아야 한다. 샤넬은 이를 이미 이를 알고 있고, 샤넬이 그러하듯이 우리 또한 자신만의 샤넬을 탄생시키면 되는 것이다. 고로, 당신의 노력과 기회로 만들어 갈 샤넬은 누구이며, 샤넬은 무엇인가.
2019년 04월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