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물 한 잔 Brand & a cup of water
데이즈드 코리아 Dazed Korea _ 브랜드 물 한 잔 Brand & a cup of water
젊음과 데이즈드
데이즈드(코리아)는 보면 항상 지쳐 있다. 내가 편집장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을 마음에 담아두는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데이즈드를 읽다 보면 불이 활활 타오르고 남은 잿더미가 눈에 선하다. ‘데이즈드니까 유가 브랜드 말고 입고 싶은 것 입어도 상관없죠?’라는 말을 듣는 잡지를 만드는 행위를 매달 반복하다니, 그 원동력은 ‘젊음’으로부터 온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그렇다, 데이즈드는 젊다. 데이즈드는 온통 젊음이다. 젊음이란 전에 없었던 신선함, 생경함, 낯섦이다. 익숙함과 친숙함의 반대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즈드의 표지는 언제나 신박하다. 그렇지 않아도 뭐하고 사나 궁금했던 모델 한느 가비 오딜르가 몇 달 전 표지 모델이었고, 몇 해 전엔 배우 윤여정이 특유의 표정으로 아기자기한 분홍색 바탕 속에 앉아 있는 표지가 있었다. 이번 표지에는 여름인데 빨간 코트를 입은 배우 전도연이 초연하게 서 있다. 빨간 소나무 같다. 또 다른 표지에선 웬 사이버틱한 물가에 그녀가 뱀파이어처럼 우뚝 서 있다. 이 두 표지만 봤을 때 그녀가 입은 옷이 발렌시아가의 것이라고 누가 알아챌까? 표지엔 그저 데이즈드의 표현법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배우 전도연뿐이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잡지 화보를 진행했을까? 영화가 개봉하나? 열어보니 그게 아니라, 단지 발렌시아가가 좋고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단다. 좋다, 이 시국에 순수한 목적이라니.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변질되어서는 안되는 본질이다. 이 본질은 표지에서 드러나 화보와 인터뷰로 이어진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라면 다 ‘전도연’이고 싶을 거란 데이즈드의 발언에 무릎을 탁 쳤고, 타협하지 않고 성실하게, 그리고 남들보다 앞서가지 않아도 그냥 날 벗어나지 않았다는 배우 전도연의 소신에 소란스레 시끄럽던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래, 젊음의 특권은 ‘되고 싶은 내가 마음껏 되어보는 거’다. 열정부터 불질러 보고 그걸로 세상과 협정을 보려는 태도는 젊지 않고서야 가능할까. 젊음은 나이가 아니다. 데이즈드(코리아)도 작년에 10살을 넘겼는 걸. 젊음은 마음이다.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걸 시도하고, 고정 인식을 넘어서 새로운 주체의식을 내놓고, 가치관을 행동으로 실현하는 태도는 젊음의 자랑이다. 데이즈드는 젊고 그래서 ‘~는 이래야 해’가 없다. 다른 잡지가 메이저 혹은 럭셔리 브랜드에 대해 전달할 때, 데이즈드는 자기 친구를 소개하듯이 신생 브랜드를 독자와 이어준다. ‘핫’한 걸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핫’해질 필요가 있는 걸 소개한다. 동지애 같기도 하다. 세상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 친구들이 여기도 있어요. 그러고 보면 거대한 패션 하우스나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화보를 내놓지 않는다. 느와르 영화 같았던 배우 김태리의 제이에스티나 화보, 루이비통의 미래주의를 상기시키는 모델 배윤영의 디올 뷰티 커버 등, 저 브랜드의 것, 저 사람을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배웠다. 우리가 알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마치 반항하듯이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움을 끄집어낸다. 새로움을 얘기하자니 이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독립잡지도 아닌데 한 독자를 표지 모델로 내세운 건 정말 용감했다. 으레 잡지 표지 모델은 잘 알려진 분, 곧 뜰 것 같은 분, 곧 개봉되는 영화나 방영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분이다. 여성 잡지 표지에 최초로 남자 배우가, 개그우먼이, 남성 잡지 표지에 이례적으로 여자 배우가 표지 모델로 나왔다는 걸 신선하게 여기고, 결국 ‘스타’가 상업 잡지의 표지를 차지하기 일쑤인 모습이 아직도 지금이다. 하지만 누가 표지 모델인 것보다 중요한 건 그 표지로써 말하고자 하는 소신이거늘. 이렇듯 데이즈드는 관습을 따르지 않고 제 길을 걷는다. 게다가 젊음과 상관없을 것 같은 멋쟁이 노부인과 노신사와의 옷차림에 관련한 인터뷰에서도 그들의 의도가 드러난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젊음은 노쇠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 멋있는 잡지에도 다른 잡지처럼 현실적 한계가 여럿 보인다. 또 사견이지만, 인터뷰 글 외에 글적 재미에 대해선 타 잡지에 비해 다소 아리송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한계란 늘상 존재하기 마련이며 예술과 젊음에 있어 완성도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겠나. 남들 눈엔 꼭 목숨 걸고 하는 것 같아도 그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 필리페 페팃(Philippe Petit)처럼 데이즈드는 늘 선구자적 젊음과 함께 하기에 다 함께 데이즈드의 줄타기 공연을 감상하자. 이 지치는 시대에 ‘데이즈드’라는 불꽃의 다음 달 재를 기다린다. 다음 달의 이전 달인 이번 달, 데이즈드의 젊음을 기린다. 데이즈드가 앞으로도 계속 젊었으면 좋겠다. 젊음의 반대말은 늙음이 아니라 젊지 않음일 뿐이다. 그래, 이것저것 재지 말고 젊어 버리자. 아휴 그냥, 오래오래 젊고 말자. 어? 약간 혁오 노래 가사 같다.
데이즈드가 늘 ‘패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질문하는 것처럼 나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잡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작금까지의 청춘의 표상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비틀즈, 퀸, 이유 없는 반항, 죽은 시인의 사회, 데이빗 보위, 히스 레저, 월플라워 그리고 데이즈드, 적어도 나에겐.
2019.07.31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