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에스콰이어가 된다

브랜드 물 한 잔 Brand&a cup of water

by 전해리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_ 브랜드 물 한 잔 Brand&a cup of water


그렇게 에스콰이어가 된다.


나아가는 건 지겨워, 다 멈추고 싶어, 다 지긋지긋해, 뭘 가치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만사의 허무를 느낀 난 사실 ‘Don’t settle’이란 말을 좋아했다. 이 문장을 흔히들 ‘안주하지 마라’고 번역한다. 문득 ‘안주하다’의 한자가 궁금해서 찾았다가 놀랬다. 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들어맞았다. 편안할 안(安), 살 주(住). 그대로 옮기면 ‘편안하지 마라’가 아닌가?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데. 난 늘 ‘안주하지 마라’는 말을 ‘계속 나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안주(安住)’의 한자를 보고 경악한 이유다. 한자 그대로 ‘편안하지 마라’는 말이 ‘계속 나아가라’는 뜻이 되면, 왜 전진하는데 마음이 편하면 안 되는가.

에스콰이어 6월호의 신기주 전 편집장님의 글을 읽고 어리둥절했다. 에스콰이어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 아니, 에스콰이어와 더 이상 함께 나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마음과 에스콰이어를 위해 그만 에스콰이어 편집장의 자리를 내려놓고 기자로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차마 알 수 없었다. 실패와 성취의 기준을 차치하더라도 협업과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는지 의아한 마음으로 6월호를 읽었고, 이를 기억한 채 그 다음 달에 7월호를 받아 읽었다. 6월호의 류준열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6월호의 정재영은 이전에 ‘배우로서의 본질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고 이번엔 ‘그냥 앞으로 계속 이 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6월호에서는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새로움을 가미할 줄 아는 루소(Russo) 형제가 마블이라는 열차에 탑승했지만 예술적 다양성의 철도를 개설하는 걸 잊지 않는 저의를 다룬다. 7월호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칼럼이 있다. 7월호에선 신 전 편집장님이 시간이 주는 집념이란 선물을 자선 자전거 달리기 행사 경험을 통해 기술했다. 7월호의 박재범은 건강한 마음이기에 10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난 이 두 권을 읽고 나의 의문을 푼 동시에 에스콰이어의 본질을 이해했다. 에스콰이어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잡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에스콰이어는 보는 재미를 추구하지 않고 독자에게 다음을 보는 통찰력을 전달하는 일을 한다. 분위기가 아닌 세부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화보를 내놓고, 자본주의 시대 속 잡지의 숙명을 무시하지 않지만 인쇄물의 가치를 존중하며, 한 언론이 다룰 수 있는 거의 전 분야에 대한 기사를 썼다. 제품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 앞에서도 심각하진 않고 늘 진중하며 유머와 위트를 갖췄다. 박창진 사무장과의 인터뷰, 17금 섹스 칼럼, 국립해양 문화재 연구소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가수 김종진과의 인터뷰, ‘골목식당’에 대한 칼럼, 박찬일 셰프의 칼럼,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칼럼 등, 내가 아는 한 에스콰이어는 익숙한 시선 바깥의 것에 조명을 비추는 잡지 본연의 일을 했다. 그 와중에 에스콰이어는 ‘에스콰이어 클럽’을 통해 독자와 우정을 쌓았고, ‘에콰티비’로써 디지털 시대를 친구로 삼았다. 본질이 쉽게 잊히는 시대다. 아니, 본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쉽지 않는 시대다. 흐르는 시간에 불과한 트렌드의 힘이 세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거나 멈춘다는 동작에 대한 비유가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인지하고 그를 지키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본질을 지키려는 행위에 구애되는 일엔 미련 두지 않는다. 또한, 자신만의 시간을 세워 시간의 의미를 찾는다. 어떤 성과에도 묵묵하게 제 모습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동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에스콰이어가 변하지 않고 잡지로서 그저 진화하는 이유다. 신 전 편집장님이 이를 알기 때문에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물론 에스콰이어를 위해서, 그리고 편집장이든 아니든 기자로서 동요하지 않기 위해.

나아가지 않겠다,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니, 세속적인 시간이 느껴지지 않고 지긋지긋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행복을 지키는 데 가치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겠다고. 동요하지 않음으로써 편안에 이른다. 그렇게 에스콰이어가 된다.




2019.08.25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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