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르포르타주 Brand Reportage
A.P.C.의 일상과 혁명 ; 스틸북스에서 장 투이투와의 좌담 _ 브랜드 르포르타주 Reportage
아직 직접 파리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배운’ 선에서 파리는 모순을 품고 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이라 할 수 있는 혁명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존중하는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로 대변되는 일상은 파리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두 존재지만 그 둘의 성질은 상충 관계다. 혁명이 일어나면 일상은 흔적없이 깨지고, 일상의 안정성은 혁명에 의해 전복되길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과 일상, 둘 중 하나를 빼면 파리를 완전히 논할 수 없다. 영화 ‘몽상가들(The Dreamers)’ 속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세상의 일부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대사로 대표될 수 있는 파리에서 살고 있는 브랜드 아페쎄(A.P.C.)는 이 모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페쎄의 창립자 장 투이투는 솔직하기를 절대로 주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놀랍게도 실제로도 그랬다. 그가 했던 인터뷰로 미루어 봤을 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능글맞은 태도는 아예 기대하지 않긴 했는데 ‘할 말은 한다’는 식의 날카로운 태도는 확실히 여러 인터뷰어가 그를 두고 펑크 정신이 있다고 말할 만했다. 그에게 질문이 들어오면 에디터가 먼저 관객에게 번역을 하고 그가 대답하는 형식의 좌담은 물음에 얼른 답하고 싶어하는 그의 열정에 못 이겨 거의 매번 허물어졌고 그때마다 모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일반 사람들이 입기엔 아페쎄의 가격대가 낮은 편이 아니지 않냐는 관객의 질문에 그는 안타깝다거나 자신들은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쉽게 말하는 대신, 파리지앵은 그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할 뿐이라는 말이 저절로 연상될 정도로, 아페쎄의 옷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고 옷보다는 그 옷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값이 논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의 답을 하며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꼬집어냈다. 장 투이투의 솔직함은 세상을 직시하는 데 유효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상이라 말할 수도 없고 전혀 아름답지 않다. 우리는 단지 그 너저분함 속에 숨겨진 변함없고 아름다운 진리를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장 투이투는 이 현실을 일말의 꾸밈도 없이 말했고 그래서 굉장히 인상깊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좌절 당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배를 띄우려면 그 안에 무엇을 실을지 타협을 해야 한다”: 그의 발언 어디에서도 가장된 친절함은 없었다, 오직 입바른 소리일 뿐. 그런 장 투이투가 패션의 세계에 속하지만 그 시류에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지 않고 세간으로부터 독자적 세계라 불리우며 옷을 제대로 만들려는 노력을 30년 해 온 브랜드 아페쎄를 여전히 진두지휘한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말이 당찮은 것처럼 ‘옷을 잘 만드는 의류 브랜드’라는 말도 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아페쎄에 이 수식구가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현재 옷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의류 브랜드를 단번에 언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쇼의 판타지까지만 용납되었으면 하는 브랜드의 화려함에 너무 눈이 부셔 옷을 입는 데 있어 뭐가 중요한지 그 근본을 쳐다보지 못 하는 실정이다. 진실을 잃어버렸다고 허망함을 차마 놓칠 수 없었던 요즈음을 보냈던 나는 대화가 정열적으로 오가는 장 투이투, 아이데 투이투, 에디터의 뒤 벽에 아페쎄의 30년 간의 정수를 담은 브랜드 북 트랜스미션(A.P.C. Transmission)의 내실이 찬찬히 화면으로 띄워지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아페쎄의 캠페인 사진에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샤넬, 구찌, 루이비통이 보여주는 영화나 감히 꿈꿔 보기도 벅찬 사치는 없었지만 일상성이 있었다. 상단에 작게 입력된 시기를 애써 눈여겨보지 않고 사진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옷과 그 옷을 입은 모델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어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하지 않는 것처럼 아페쎄의 옷에는 작년에 학교에서 입었어도, 오늘 직장으로 출근할 때 입어도, 내일 파티에서 입으려고 계획해도, 10년 뒤에 어떤 장소에 입을지 몰라도 괜찮을 한결같음이 존재했다. 그건 옷에 특별한 메시지를 담거나 나이나 시대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옷이 옷이기 때문이다. 아페쎄의 옷은, 예를 들면 티셔츠가 티셔츠임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티셔츠, 셔츠, 원피스, 치마, 바지, 코트 외에 부츠컷 바지나 니하이 부츠 같은 부차적인 요소가 될 법한 패션 아이템은 찾기 어려웠다. 필수적인 품목만 갖추고 있으니 그 자체로 낭비될 턱이 있을 리 없었다. 아카이브로 확인했을 때 아페쎄의 옷들은 실루엣에 있어 일관성 있되 그 안을 채우는 패턴이나 색상은 몹시도 다채로웠다. 그 모습이 흡사 우리 삶의 개성과 양식에 있어 다양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탈하지만 세련되었고 체형을 그대로 드러내어 정직했다. 옷을 입은 이에게서 불편함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옷이 지닌 프로포션, 즉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자아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카이브를 봤을 때 먼저 사람이 궁금했고 옷은 그 다음으로 감탄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아카이브 속 모델이 입은 옷이 옷 본연의 사람을 돋보여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이 점이 아페쎄의 미덕이라고 주장하는 바다. 어떤 물건에 있어 실용성이 부재한다는 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즉 존재 가치가 제대로 발현되려면 그 존재가 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진리를 아페쎄는 꽤 오랜 기간 해내고 있던 것이다. 책의 겉표지만 사진으로 찍고 그 안을 전혀 궁금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평범이란 미명 하에 무채색만 강조하고, 분위기란 허울 아래 보기만 해도 납득되지 않은 구조의 옷을 발매하고, 컨셉이란 껍데기 속 실제로 쓰여야 할 제품의 내실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현실은 절정으로 치닫는 반면 아페쎄는 오랜 기간 동안 참 뽐내려 하지 않고 곧았구나 생각했다.
이러한 아페쎄를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여길 법도 하다. 마치 일상을 도돌이표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도돌이표가 아니라 한정된 개수만으로 무한한 음악을 생산해내는 음계에 가깝다. 지켜져야 하는 기본이라는 것이 바로 일상이다. 제때 잠에 들고 잠에서 깨고, 자아 발현이 가능한 일을 하고,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음식을 골고루 챙겨 먹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공부하고, 예술적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 사색하고, 살아가기 위해 사람과 친절하고도 친밀하게 대화해야 한다. 그 기본을 바탕으로 사람은 매일 자신만의 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인간의 게으름, 무지, 이기심, 무관심, 욕심으로 인해 일상은 성실성을 잃고 그러므로 그 가치에 있어 매일 박대 받으며 무너진다. 그저 열심히 산다는 것에 안도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옳지 않아도 대충 수습하려 드는 일상은 다른 이의 것과 부딪쳐 불협화음을 낼 뿐이다. 고로 지금 세상은 얼마나 소란스러운가. 따라서 엉망인 세상에 제대로 살아보려는 노력이라면, 그게 혁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또한 그 혁명을 매일 완수하려는 노력이라면, 그게 일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페쎄의 옷은 그 자체로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야 할 일상이고, 그 옷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옷의 의의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아페쎄로써 옳음의 가치를 알려 사람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킨다. 아페쎄는 옷의 역할을 해내는 옷을 만들며 일상의 일상성을 존중하고 잘못된 세상에 물음을 던지는 혁명을 동시에 해낸다. 세상의 일부임을 인정하지만 그 세상의 그름에 대해 절대로 함구하지 않는다.
귀로는 장 투이투의 말을, 눈으로는 아페쎄의 아카이브를, 마음으로는 열정을, 머리로는 이성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나는 일상과 혁명이라는 모순의 균형을 맞추어 보았다. 삶은 일상과 혁명을 한 일직선의 양 맨 끝에 둔 다음 그걸 들고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각 극단(極端)이 무조건 존재해야 선이 이루어진다. 그걸 균형감 있게 드는 건 인간의 몫이다.
2019년 10월 20일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