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예보 : 경량문명의 시대> 를 읽고,
PT 선생님과 '시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소님 저는 요즘 건강한 음식을 먹고 술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어릴 때처럼 죽어라 마시지 않아요. 가계부를 쓰고 돈 관리를 하고 있어요. 어릴 때는 금액을 보지 않고 신용카드 마구 긁었는데, 전에 생활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방향으로 제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그런데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지금 그럴 때인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안했는데요. 요즘은 그 무엇보다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좋아요. 가끔 선생님처럼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 했으면 서울대 갔을 텐데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 제가 지금처럼 공부 했으면 지금의 제가 되어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때 공부 했던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이렇게 공부 해서 뭐가 되려고 하지? 마음보다 미래의 제가 기대가 되어요.”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 보면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긴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 없이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선생님이 때가 늦었다고 생각하면 늦은 거겠지만 적어도 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거 하나만 느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선생님과의 대화 후, <시대 예보: 경량문명의 시대>를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아홉 명의 여성이 있어도
한 달 만에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
경량문명은 모든 것을 빠르고 가볍게, 그리고 병렬화하여 처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처럼 어떤 일들은 결코 병렬화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멀티버스가 아니기에 한 번에 하나씩 스스로 해결해내야 하는 직렬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생애 주기마다 문제와 번민은 누구에게나 차례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이 비슷한 시기에 한 번에 겹쳐서 해결할 수 없는, 순차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직렬의 시간으로 오는 것들입니다. 이 문제들은 미리 풀거나 나중으로 미룰 수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PT 선생님이 지금 건강과 경제 관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내가 지금 공부가 좋아진 것도, 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때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까요? 아마도 그랬다면 지금의 깊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속도와 성장이 지배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사회가 다시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긴 시간 동안 숙성이 필요한 와인과 위스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생산 후 잘 보관한 향 좋은 찻잎에 높은 가격이 매겨집니다. 신선한, 새로운 것의 매력보다 땅과 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생산물들의 가치가 인정되는 시대입니다. 시간이 생산의 소중한 자원으로 쓰이는 결과물들. 이것들은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그 존재가치를 유지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 축 속에서 자기다움으로 능력을 성숙시킨다면,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설령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시대 예보: 경량문명의 시대> 중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생의 때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지내다 보니 나는 때가 있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경험을 기반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줍니다. 경량문명 시대에도 병렬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직렬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에는 때가 있다고 말입니다.
PT 선생님에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때가 늦었다고 생각하면 늦은 것이겠지만, 적어도 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