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어려운 건 미술사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전시 기획에서 배운 기획의 본질

by 이소 시각


결국.. 도록을 샀다.

지난 12월, 도쿄도 미술관에서 고흐 전시를 관람했다.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고흐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생겼다. 고흐 그림을 정물화, 풍경화 기준으로 나눈 게 아니라 전시 제목 <고흐의 집>에 맞게 고흐가 지냈던 지역을 기준으로 그때 그렸던 그림들을 세션으로 나눴다. 그래서 고흐가 그 장소에 있을 때 어떤 감정과 어떤 사물에 집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흐 전시에 감탄하고 옆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 전시를 갔다. 전시가 편안했다. 그림과 그림 사이의 거리, 그림 크기별로 잘 정리된 세션, 그림에 방해되지 않는 조명들, 자연스러운 동선마저도. 제목을 번역하니 '인상주의 실내화(실내 풍경)' 전시회였다. 이 제목 한 줄로 모든 그림과 세션이 이해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보았던 국내 전시들은 유독 아쉬움이 컸다.



'이번 전시는 12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하는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전시 도슨트의 설명이었다. 천장도 낮고 구불구불한 장소에 12개 세션이라니. 세션의 구분은 자연, 여자, 농부 등 그림을 보면 연상되는 단어 키워드로 나눠 놓았다. 오히려 나는 이 가문이 왜 이 그림을 컬렉팅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를 보여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시에서 가장 유명한 '클림트 여인의 초상'은 맨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도, 그렇다고 처음부터 시선을 끌지도 않는 애매한 곳에 있었다. 이 그림이 왜 비싸고 귀한지에 대한 설명은 넘쳐났지만, 정작 전해지는 '한 줄'은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벽보 서문에서는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인상주의, 초기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전시를 시작하고 나서 벽보에는 '목욕하는 여인', '인물화' 등 제목과 연결되지 않는 세션 구분이 있었다. 더불어 인물화 세션에는 인상주의 시작 '마네'가 쓰여 있었지만, 그 세션에는 마네의 그림은 없었다.



81점이라는 엄청 많은 그림이 있었지만 세션을 너무 세분화하기도 했고 제목과 연결되지 않아서 그림을 기억하기 어려웠다. 특히 중간쯤에 노란색 벽지로 꾸며진 '에두아르 뷔야르' 작품으로만 전시된 방이 있었는데, 벽보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에두아르 뷔야르'는 나비파 화가로서 나비파는 1888년부터 1900년까지, 딱 세기말의 약 12년 동안 짧고 굵게 활동했던 그룹이었다. 미술사 흐름상 후기 인상주의의 끝자락에서 20세기 현대 미술(야수파, 추상 미술)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였다.



제목대로 미술 사조 기준으로 했다면 적어도 이 사조에서는 이런 화풍이 이어졌구나 하는 큰 맥락으로라도 이해했을 텐데, 좋은 작품들의 충분한 감상보다 '왜 이렇게 했지?'라는 물음표만 남은 전시였다.




일본 전시는 제목 한 줄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이 전시는 이것을 보여주려 합니다'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고, 모든 세션 구분과 작품 배치가 그 메시지를 뒷받침했다. 반면 국내 전시들은 좋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만 남았다.


일을 하면서도 기획을 많이 하게 되는데, 항상 내가 말했던 건 '기획은 한 줄'이야 라고 말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좋은 기획은 기획자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획이다. 그 한 줄이 모든 선택을 관통하고, 경험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을 때, 그게 좋은 기획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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