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책을 읽고,
코로나가 터지기 전, 아빠와 함께 동물원에 자주 갔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SBS 동물농장 TV 프로를 챙겨 볼 만큼 아빠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동물원에 갈 때마다 “언제 이런 귀한 동물을 또 보겠냐”며 좋아하시면서도, “쟤네들도 오죽 답답할까, 털에 윤기가 없네”라고 안타까워하곤 하셨다.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를 읽으며 비로소 아빠가 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책에는 김해 실내 동물원에서 갈비뼈를 드러낸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갈비사자 바람이’를 구조했던 이야기, 뜬장에서 나고 자란 웅담 채취용 사육곰, 부리가 휘어진 독수리 등 인간의 필요에 의해 고통받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빠가 본 “윤기 없는 털”은 단순히 관리 부족이 아니라, 동물들이 보내는 조용한 신호였던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 참석했던 AI 독서 모임에서 나눴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AI 발전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을 거다. 데이터센터를 짓고 냉각하려면 엄청난 물과 전력이 필요한데, 결국 기후 위기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기 위해 돌아가는 AI가, 역설적으로 바다거북과 산호초를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것은 진보일까 파괴일까?
이 질문이 책 속 웅담곰 이야기와 겹쳐졌다. 1980년대 정부가 소득 증대를 위해 웅담 채취용 곰 수입을 장려하면서 사육곰 산업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그 뉴스 장면이 기억난다. ‘뭐야, 곰 사육 장려 해놓고 이제 와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게 말이 돼?’ 1980년대에는 건강을 회복할 효과적인 방법이 없어 희귀한 동물이나 약초 같은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앞으로는 기술로 노화를 방지하고 질병을 치료할 텐데, 그 과정에서 또 어떤 동물들이 희생될까? 웅담곰처럼 ‘유용하다’는 이유로 사육되고,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동물들이 또 생기는 건 아닐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마 미래에도 인간은 자신의 필요를 먼저 채운다. 산업이 발달할 때마다 동물에 대한 언급은 언제나 맨 나중에 나온다. 기후 위기를 논할 때도, AI 윤리를 논할 때도, 동물의 고통은 ‘여유가 생기면 챙기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왜 그럴까? 인간은 언제나 인간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고민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동물원 같은 동물병원을 만들고 싶다. 동물들이 단순히 치료받는 곳이 아니라, 존중받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