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탄생 110주년 특별전 : 쓰다, 이중섭> 다녀온 후
2023년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 이중섭을 처음 만났다. 나는 이중섭의 '황소'를 보기 위해서 갔었다. 하지만 황소 작품은 없었다. 연필화, 엽서화, 은지화,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황소 작품이 없음에 살짝 실망했지만, 아내 마사코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을 보면서 나에게 이중섭은 '화가 이중섭'이 아닌 '사랑꾼 이중섭'으로 마음에 남았다.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은 이중섭이 마사코 여사에게 보낸 첫 번째 엽서이다. 이 엽서화를 시작으로, 이중섭은 1941년 한 해 동안 75장의 엽서화를 보냈다.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이중섭은 이듬해부터 1955년 12월 중순까지 꾸준히 아내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이 편지들 속에는 자신의 애칭이었던 '아고리', 아내의 애칭이었던 '천사' 같은 애정 어린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특히 아내 마사코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마음이 60년이 지난 시간에도 사랑이 담긴 글과 그림을 통해 전해졌다. 나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라는 말을 되새겼다.
그래서 2026년 1월 30일부터 시작한 아트조선스페이스의 <이중섭 탄생 110주년 특별전: 쓰다, 이중섭>에 다녀왔다. 전시회 벽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이중섭'이라는 소개 글로 시작한다. 사실 나는 이중섭을 사랑한다거나 최애 작가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중섭 전시를 찾는 이유는 배움 때문이다.
나는 세잔의 그림처럼 논리적이거나, 고흐 그림처럼 색이 다채롭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또는 모네의 그림처럼 질문을 유도하는 그림을 좋아한다. '만약 내가 저기에 다른 색을 썼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중섭 작품은 나에게 이런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디테일하지도,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지도, 질문을 유도하지 않는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동안 생각했다, 내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중섭 작가의 그림을 보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그의 그림에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많이 다녔지만 감정을 느꼈던 작품은 손에 꼽힌다. 감정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해석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림 그 자체만을 감상하게 만들어 준다.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만났던 뭉크의 '눈 치우는 노동자들' 그림을 보면서 무서웠고, 겨울의 노동자들이 추위에서 얻는 고통, 힘듦, 악착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중섭의 작품들은 일제강점시대의 고통, 전쟁의 아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이 같은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잘 담은 작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중섭 탄생 110주년 특별전: 쓰다, 이중섭>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쓰다'이다. 이중섭이 '쓴' 편지와 엽서를 중심으로, 새롭게 발굴해 공개하는 걸작 은지화 두 점을 비롯해 이중섭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화, 편지화, 은지화 등 80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이중섭의 인간적이고 다정한 면모에 주목한다. 그 다정함이 엿보이는 매체가 바로 엽서와 편지이다.
그는 마사코에게 사랑의 시를 들려주는 사랑꾼이었다. 일필휘지의 과감하고 거친 붓질로 예술혼을 불사르면서도 사랑스러운 삽화를 그려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정한 편지를 보냈다. 이중섭은 붓을 든 화가인 동시에 진심을 담아 '쓰는' 사람이었다.
인공지능의 범람으로 아날로그 향이 옅어져 가고, 사랑도 이별도 금세 휘발하는 감정의 인스턴트 시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이 아닌 '사랑꾼 이중섭'을,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이중섭을 만날 수 있었다. 전쟁의 아픔이 서린 격동의 시대에 그의 손으로 사각사각 쓴 애절한 그리움,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다정한지 이중섭이 '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전시에서 사랑꾼 이중섭을 발견했다면, 2026년 전시에서는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깊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중섭은 여전히 나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래서 계속 찾게 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