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당신과 나 사이, 좁히지 말아야 할 그 간극에 대하여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직장인 1년차였던 시절의 나는 직장에서 'YES맨'으로 통했다. 당일 저녁에 잡히는 회식 참석도 YES, 회사 내 자전거 동호회 가입도 YES, 뭐든지 거절하지 못하고 직장 내에서의 관계에 힘을 쏟곤했다. 문제는 사람들 앞에선 즐거운 척, 재미난 척 연기를 했지만, 정작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겐 스트레스이자 고통이었다는 점이다. 그 땐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연약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이미 몇 번 거절했음에도 나의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있는 힘껏 그 시간들을 즐기는 척 하자고 결심했더랬다. 퇴근 후 허다하게 잡히곤 했던 회식과 회식이 없는 날에 잡히곤 하는 동호인 모임들 덕분에 여가시간은 전무했다. 차라리 업무로 인해 야근을 하길 바란 날들이 더 많았다. 일 때문이라고 하면 차라리 더 마음의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 법 했다.
당시엔 그 모든 게 당연히 감내해야 할 업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며 버텼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부당한 처사였다. 나는 단호히 이야기했어야 했다. "No"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와 회사와의 거리를, 그 간격을 벌렸어야 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의 제목은 <당신과 나 사이>다. 제목에서 보이듯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겉표지에 적혀 있듯,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각 관계 속에서 필요한 그 적정 거리에 대해 저자의 견해와 그 근거를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가족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20cm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cm
회사 사람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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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 中>
책의 저자인 김혜남 작가는 정신분석 전문의로, 전작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작가가 직접 겪었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상처와 아픔을 주고 받는 건, 멀리 있는 타인이 아닌 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곧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이 되어야 비로소 나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각 관계별 적정 거리에 대해 설정하라고 조언한다. 가족과 나의 적정 거리, 연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비롯해서, 친구와 회사 사람들 간에 필요한 거리에 대해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예외없이) 삶 속에서 우리 모두가 안고 가야하는 고민일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은 각자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먼저 서두에서 밝히는 한편,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나 자신의 자존감을 더욱 더 공고히 하거나,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 등을 통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를 위한 여러 방법론을 일러주고 있다. 또한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 이전에, 나 자신부터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한다. 내가 혹시 적정 거리를 넘는 기대 혹은 실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독자들에게 말한다.
각 챕터별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 혹은 그 자신에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들이건만 그 사건들 저변에 깔려있는 관념과 사고에 대해 상세히 풀어서 독자에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다.
모든 행동들엔 다 이유가 존재하기에 그 행동들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읽어낸다. 작가 그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이야기 하기에, 모든 이야기가 생생하다. 마치 나 자신이 겪고 있는 듯 말이다. 사실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존재하겠지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결국 대동소이하다. 작가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다를지언정,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바는 비슷하게 수렴하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 마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면 끝내 싸우고 돌아서게 됩니다.
관계를 끊으면서 서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관계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 또한
관계를 더 어긋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럴 때는 애쓰지 말고 거리를 두십시오.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결코 서운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경험해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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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 中>
사람들에겐 누구나 말 못할 아픈 관계 하나쯤은 있지 않나. 표현을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일이라거나, 또 내가 되려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같은 것 말이다. 그 대상이 친구든 연인이든 또 회사 동료든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그 해결을 위한 힌트쯤은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겐, 사회 초년생이었던 과거의 나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그리고 당시의 회사 사람들 모두에게도 한 권씩 선물해 주고 싶다. 그 분들도 나의 불행을 의도한 건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다만, 단호하게 'No'를 외치지 못하고 모든 걸 감내하려 했던 나의 과오가 여전히 생각난다. 나와 같이 이 책 제목을 보고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관계의 '단절'을 이야기 하기엔 우리 모두는 여전히 젊지 않은가.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살 날이 여전히 많이 있다 해도, 그럼에도 사과와 용서, 화해, 관용과 포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내게도 그러했듯, 어느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그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