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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Nov 21. 2019

그깟 주문 좀 틀리면 어때?

실수에 관대한 세상,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꿈꾸는 세상

장면 하나. 당장 오늘만 해도 회사 사람들 모두와 함께 간 중국집에서 메뉴가 잘못 나왔더랬다. "메뉴가 잘못 들어간 것 같아요. 잡채밥 다시 해드릴게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냥 잘못 나온 메뉴를 드시면 좋겠다는 간곡한 부탁인지, 혹은 너무 죄송한 마음에 돌려 말한 낙차 큰 변화구같은 사과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장면 둘. 지난 주 늦은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어떤 아저씨의 고성을 들었다. 잘못 나온 메뉴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성을 내뱉는 듯 보였다. 잔뜩 배고파서 그런건지, 혹은 몸에 화가 많아 그러신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실수를 빌미로 꼭 저렇게까지 해야할까. 식당의 불확실한 주문 처리가 불쾌했다면 그 식당을 다신 찾지 않는 거야말로 최대의 복수가 아닐까. 실수에 조금은 관대한 세상은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 과연.

우연찮게 이 책을 읽기 전 겪었던 일들이 이 책을 더 드라마틱하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요즘 세상에 그랬다간 사람들의 엄청난 집중 포화를 맞게 되지 않을까, 장사의 기본이 안되었다는 둥, 저런 집은 다신 가면 안된다는 둥,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가게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오더라도 당황하거나 심지어 화조차 내지 않는다. 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등장하는 종업원들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주문한 음식이 실수 없이 나오는 것을 더 아쉬워하곤 한다. 음식을 잘못 내와도 방긋 웃는 종업원과 그럼에도 웃으며 먹는 손님들, 이 책의 제목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이 책은 NHK 방송국 PD인 일본인 저자 오구니 시로가 우연히 취재 차 방문하게 된 간병 시설에서 엉뚱한 음식을 먹게 된 후 이를 하나의 짧은 프로젝트로 기획해 낸 결과물을 담아냈다. 범상치 않은 기획에 역시나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읽을 만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하기로 했습니다. '시험적'이라는 표현을 빌린 것은, 이러한 콘셉트의 요리점이 세상 사람들에게 통할지 어떨지 우선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中


책은 이 곳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애초부터 이 말도 안되는 요리점을 기획한 저자 오구니 시로에서부터 이 요리점을 방문했던 손님들은 물론 서빙 일을 하시는 치매 노인 분들의 자세한 사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 곳 '요리점'을 서술하고 있다. 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모두 이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따뜻하며 가슴 뭉클해 지는 책이다. 주문이 틀리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나, 주문이 틀린 줄도 모른채 본인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려는 치매환자분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배려와 이해를 몸에 휘감고 있다. 오직 이 식당에 들어선 순간만큼은 유토피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마치 손님들 모두가 가슴 따뜻할 만반의 작정을 하고 이 가게를 찾는 듯 하다.

이 할머니의 천진난만한 웃음이야말로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책을 완독하고 저자이자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오구니 시로 작가에 감탄하게 됐다. 강팍한 세상이라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인정과 배려의 판을 깔았을 때 이렇게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을 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어찌보면 바로 이런 '판'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이 아닐까 하는 점에서, 작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느낀다. '그깟 실수 좀 하면 어때', 과연 우리부터 실천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게 된다.


실수에 조금은 관대한 세상, 그것마저도 보듬어 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우리 모두. 그것이 전제된다면 펼쳐지게 될 그림의 아주 작은 단초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한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저자 오구니 시로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공유해보며 본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주문을 틀리다니, 이상한 레스토랑이네'

당신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저희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읿니다.

가끔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어떤 메뉴든 이 곳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 맛있는 요리들로만 준비했습니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네. 뭐, 어때'

그런 당신의 한마디가 들리기를.

그리고 그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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